독일에서는 이 곳의 주도를(酒度)를 따라야 한다.
다양한 맥주의 종류만큼이나 독일에서는 맥주를 마시는 방법이 있고, 그 문화도 한국의 그것과는 조금 다르기도 하다. 한국인이 매일 밥을 먹듯이 독일인들의 일상에는 맥주와 맥주 관련 문화가 깊숙하게 침투해있다.
Prost-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를
친구가 한국에서 유럽으로 놀러를 와서 함께 여행을 할 때가 있었는데, 그때 친구가 나에게 물어봤다. 왜 자꾸 그렇게 건배를 하냐고. 독일에서는 첫 잔이든 두 번째 잔이든 무조건 술을 마시기 전에 건배를 하는데 그게 버릇이 된 것 같다. 시도 때도 없이 건배를 하는데 독일어로 건배는 Prost(프로스트! 이태원에 있는 큰 펍의 이름과 같다)라고 하며 중요한 것은 눈동자를 마주쳐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의 미신 중 하나인데, 건배할 때 눈동자를 마주치지 않으면 그것은 7년간의 아주 나쁜 잠자리... 를 뜻한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혼자 술을 술잔에 따라 마시면 재수가 없다고 했나 아무튼 그런 미신이 있었던 것 같다. 규칙을 아주 잘 지키는 독일인답게 이 규칙을 정말 잘 따른다. 10명이 넘는 큰 그룹으로 건배를 할 때도 한 사람 한 사람씩 다 눈을 마주쳐야 한다.
주문하지 않아도 끝없이 맥주를 가져다준다
독일의 유명 양조장에 가보면 그들의 불친절한 서비스에 한 번 놀라고, 끝없이 가져다주는 맥주에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맥주를 서빙해주는 분들은 대개 나이가 지긋하신 독일 남성인데 무뚝뚝한 표정으로 내 잔이 비는 것이 무섭게 어느 순간 달려와서 새 맥주를 가져다준다. 거절하고 할 새도 없이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인데, 맥주를 더 이상 마시고 싶지 않다고 하는 표시로 컵 받침대로 컵 위를 막아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끝없이 맥주를 마셔야 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손님이 항상 많고 바쁜 양조장들이라 메뉴 주문을 받을 틈도 없기 때문에 그냥 가져다주는 것 같다는 것이 나의 추측이다.
몇 잔을 마셨는지 세는 방법은 따로 있다. 각자의 컵 받침대에 맥주 하나를 가져올 때마다 연필로 줄을 하나씩 그어다 주는데 다 마시고 계산할 때 그 줄들을 세어본 후 계산하게 된다. 친구들끼리 갔을 때는 한 잔씩 서로 사주기도 하는데 각자 돌아가서 술을 살 때는 다섯 잔 등을 한꺼번에 주문한 후 본인의 컵 받침대에 그어달라고 말을 하면 된다.
여름의 공식 = 비어가르텐
일조량이 많은 독일의 남부지방에 특히나 많은데 해가 뜨는 여름날이면 비어가르텐 (Biergarten=맥주를 마시는 야외 공간)은 만석이다. 독일 전통 음식점뿐 아니라 가게 뒤편의 작은 야외 공간을 가지고 있는 레스토랑이나 펍은 여름에 이 공간을 열어두는데, 이 곳에서 마시는 맥주 한 잔은 정말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가 없다. 월드컵이나 유러피안 챔피언쉽이 열리는 기간에는 대형 스크린을 설치해두고 경기를 볼 수도 있다. 여름이면 해가 저녁 9시가 넘어도 지지 않기 때문에 퇴근 후에 친구들과 함께 비어가르텐에 가서 맥주 한두 잔을 마시고 집에 오기도 한다.
맥주 관련 용어
맥주와 관련된 용어들이 여러 개가 있다. 독일어의 특성 중 하나는 여러 개의 단어를 다 가져다 붙여서 한 가지 단어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일과를 마치고 나서 맞이하는 저녁을 Feierabend라고 하는데, 그때 마시는 맥주는 Feierabendbier다. 기차로 이동하거나 걸어갈 때 이동을 뜻하는 단어는 weg이며, 이때 마시는 맥주는 Wegbier다. 사실 지하철에서 맥주를 마시면 안 되는데, 파티를 하러 가는 사람들은 지하철에서도 술을 마시고 길을 걸어가면서도 맥주를 마신다. 그 외에도 다른 술을 마시는 중간에 마시는 맥주는 Zwischenbier이고.. 뭐 기타 등등 맥주 관련해서 여러 가지 말을 갖다 붙이는데 그만큼 맥주가 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증거 같다.
맥주 관련 행사가 아주 많다
독일 하면 금방 떠오른 것이 옥토버페스트인데 독일인들 중에서도 이 행사는 호불호가 갈린다. 일 년에 딱 한 번 술을 마시고 흐트러져도 된다는 암묵적 동의가 있어서인지, 옥토버페스트에서는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아주아주 술 취한 독일인들을 많이 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 축제 기간에는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몰려오기 때문에 숙박비가 평소의 세 배 이상으로 뛰고 맥주 한 잔에도 10 유로가 넘었던 것 같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이 곳에 갈 수가 없기에 옥토버페스트 기간에는 각 지역에서도 소규모로 맥주 텐트를 설치해서 그 나름의 옥토버페스트가 열린다. 생맥주 축제도 있고, 어떤 형태의 축제가 열리더라도 맥주 텐트는 거의 필수사항으로 설치되기 때문에 양질의 생맥주를 언제 어디서든 많이 마실 수 있다.
맥주는 무조건 병맥주로. 초대를 받았다면 맥주는 한 박스로
한국에서는 캔맥주를 많이 마셨었는데 독일에서는 대부분 병으로 마신다. 병맥주의 종류가 훨씬 다양하고, 독일에 아직 존재하는 병/플라스틱 환급 보조금 때문에 캔맥주가 더 비싸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독일에서 만난 신기했던 풍경 중 하나는 금요일이나 토요일 저녁시간 즈음 맥주를 한 박스.. (한 박스는 20병이다)를 사가는 젊은이들의 모습이었다. 친구 집에 초대를 받아서 갈 경우 술은 본인이 챙겨가는 편인데, 나는 맥주를 즐겨마시지만 여러 병을 사게 되면 무거워져서 대체로 와인을 한 병씩 사갔었다. 독일인들은 맥주 한 박스가 기본이다. 얼마 전 친구 집에 생일파티를 초대받아서 갔는데 스무 명이 넘게 초대된 파티였고, 맥주 박스는 7박스 정도가 있었던 것 같다. 또 하나 재밌는 점은 독일인들은 그 어떤 도구로도 맥주를 열 수 있다는 사실. 병따개를 들고 다니지 않아도 다른 맥주, 열쇠, 문 틈 등등 세상 그 어떤 도구로도 맥주를 열 수 있기 때문에 독일 친구들과 함께면 언제 어디서든 병맥주를 사게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