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회사와 굳이 한국회사 생활을 비교하자면 굵직한 토대는 다르더라도 비슷한 점이 굉장히 많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하고 있고 국가와 언어가 다르다고 해도 결국에는 사람이 하는 일. 기본적으로 어떤 태도를 갖고 직장생활을 임하느냐는 문화의 차이가 있다 치더라도 국가와 관계없이 비슷하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한국에서나 독일에서나 어떤 태도로 회사생활에 임해야 조금 더 마음 편하게 직장생활을 할 수 있는지 내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해보고 싶다.
문제가 없는 조직은 없다.
비록 긴 시간은 아니지만 독일과 한국에서 다양한 형태의 기업에서 근무해 본 결과 완벽한 조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전제를 마음속에 담아둔다면 조금은 마음 편하게 회사를 다닐 수 있다. 부서 내에 한 명씩 존재하는 불같은 상사가 있을 수 있고, 타 부서와 협조가 되지 않아 곤란을 겪을 수도 있다. 회사가 맡고 있는 사업 자체가 사양사업이라 수익이 크게 나지 않을 수 있고, 본인이 담당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실패할 수도 있다. 만약 완벽한 형태의 조직이 존재할 수가 있다면, 문제가 있는 조직들은 그 조직을 벤치마킹해서 똑같은 구조로 변경하면 되지 않을까? 하지만 실제로 '완벽'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고 외부에서 봤을 때 근사해 보이는 조직이라 할 지라도 그 안 깊숙하게 들어가 보면 문제가 많을 수도 있다. 그래서 힘들게 들어간 직장을 내 발로 걸어 나오기도 하고, 이직이라는 것 자체가 성공하기가 힘든 것이기도 하다. 인터뷰를 보면서 어느 정도 회사에 대해 감을 얻을 수는 있지만 뚜껑을 열어보기 전 까지는 전혀 알 수가 없는 것이 회사생활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 문제에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일까
회사생활에서 마주치는 문제들은 해결책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i) 내 선에서 해결 가능한 것
ii) 상사에게 보고하고 논의하여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는 것
iii) 해결 불가능한 것
i) 내 선에서 어느 정도 해결해볼 수 있는 것은 인간관계에서 오는 갈등 상황 이라던가, 효율적이지 못한 프로세스를 개선한다거나 실수가 있었던 업무를 고치는 것 등으로 볼 수 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혼자서 해결하면 된다. 잘 모르겠다면 타 부서 직원들의 의견을 들어볼 수도 있고 벤치마킹을 할 수도 있다.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지만 혼자서 해결할 수 있다면 그 문제는 쉬운 편에 속한다.
ii) 하지만 어떤 문제들은 내 선에서 해결이 불가능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상사와 논의하여 때로는 상사의 권위를 빌어 문제를 해결하거나 (예를 들어 팀장급, 상무급에서 업무를 추진하면 속도가 날 때가 있다) 내가 몰랐던 점들을 상사의 노하우 등을 통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물론 어떤 일이 발생할 때마다 상사에게 쪼르르 달려가서 물어보면 당연히 안된다. 본인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방법을 동원해 본 다음에도 답을 찾을 수 없다면 상사와 논의하는 것이 그나마 빠른 방법이다. 혼자서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면 회사 조직이 왜 필요하겠는가.
iii) 마지막으로 어떤 문제들은 도저히 혼자서 해결할 수가 없는 경우로, 이때는 그냥 현실을 수긍하거나 아니면 다른 회사로 옮기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너무나 거대한 조직이라 그 조직의 구조 자체를 바꿀 수가 없거나 아니면 업계 자체에 큰 희망이 없어서 도저히 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 카테고리에 속하는 문제 자체를 인식하는 것 만으로도 같은 조직에 있는 사람들보다 한걸음 멀리 나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조직 속에서 생활하다 보면 문제점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고 고인 물속에 갇힌 개구리가 되기 쉽기 때문이다.
불평불만은 누구나 가질 수 있지만, 불평하지 말고 해결책을 제시하라
문제들이 발생했을 때 혹은 내가 문제라고 느끼는 것, 특히 본인의 업무와 관련하여 저지르기 쉬운 실수 중 하나는 끝없이 불평만을 늘어놓는 것이다.
과묵하고 진중한 독일인들도 사실 불평불만을 잘한다. IT팀에 근무하는 동료 중 한 명은 아래 내용과 비슷한 그림을 인쇄하여 책상 머리맡에 붙여놓은 것을 본 적도 있다. 업무 특성상 사람들은 업무용 휴대전화나 노트북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동료를 방문하기 때문에 평소에 하는 불평불만의 곱절을 고스란히 들어야 했을 것이다. 그 소리가 얼마나 듣기 싫었을까 어렴풋이나마 상상이 된다.
고백하건대 나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불평불만을 가끔 늘어놓곤 했다. 내가 맡고 있는 업무 특성상 불평을 많이 들을 수도 있고,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도 잘 성과가 보이지 않고 오히려 아주 작은 실수라도 발생하면 그 점만 고스란히 부각되기 때문이다. 지금 일하고 있는 부서는 굉장히 소규모라 직속 상사와 일대일로 이야기할 시간이 많은데, 감정적이지 않으려 많이 노력은 하지만 가끔은 줄줄줄 불만을 입 밖으로 내고 있는 내 모습에 깜짝 놀라기도 했다. 매니저도 사람이고, 불평불만을 한다고 해서 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닌데. 듣기 싫은 소리를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불만을 실컷 늘어놓은 후 나 스스로에게도 물어보았다. '그래서 어쩌라는 거지?'
한 가지 예로 현재 맡고 있는 업무는 백프로 자동화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자료 취합이나 생성 시 수작업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 말이 수작업이지 가끔은 내가 이런 일을 하려고 석사까지 했나 (정말 위험한 마음가짐이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하는 자괴감까지 [...] 들기도 했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업무에 마음이 하루에도 몇 번씩 왔다 갔다 했지만 정작 그 문제의 근본은 들여다보지 못하고, 매니저와의 면담시간마다 이 부분을 불평했었다.
부조리하거나 과중한 업무가 부과되면 그 점은 분명히 지적해야 하는 것이 맞다. 즐겨 찾는 구문이지만 '가만히 있으면 정말 가마니가 되는 것'이 해외 직장생활이다. 하지만 내 불평불만의 끝에는 해결책이 없었고, 몇 번이나 그 대화를 들어주던 매니저도 '네가 힘든 것은 충분히 이해하나 그래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는 보이지 않는다. 어떤 솔루션이든 네가 가져오는 것을 검토해 볼 테니 해결책을 알려달라'라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내가 제시했던 방안은 i) 단순 수작업, 누구나 할 수 있는 부분은 학생 아르바이트를 통해 도움을 얻고 ii) 전체적인 부분은 진행 중인 시스템 통합 프로그램을 이용해보자 라는 것이었다. 물론 이 방법을 통해 모든 문제들이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아주 작은 문제에도 잎새에 나부끼는 바람에도 괴로워 바들바들 떨던 날들은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
조직생활에서 어느 정도 내 역할을 부각시켜야 하는 것은 맞다. 나의 힘든 점은 어느 누가 먼저와서 알아주지 않으니까. 하지만 불평을 한 번 하고 난다면 그 다음번에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 지를 제시할 수 있는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내일 있을 면담에서 사실 불평불만 거리 하나 더 있었는데, 어떻게 해결해야 할 지를 좀 더 고민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