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해도 괜찮아, 지금 있는 그대로도 멋지니까.

명품백이 없으면 뭐 어때? 명품이 없어도 그 사람 자체가 명품이면 돼

by moka

북유럽 패션이라고 하면 검은 옷 외에도 에코백을 주로 떠올릴 수 있다. 1인당 GDP가 평균 5만 달러를 넘는 (2017년 4월 IMF 발표 기준) 북유럽을 여행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그 흔하디 흔한 명품백을 든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살인적인 물가에서 사람들은 명품을 소비하기보다 오히려 수수해 보이는 검소한 생활을 즐긴다. 오래된 자동차를 끌고 허름하다 싶을 정도의 수수한 옷차림으로 다니던 이웃이 실은 교통부 차관이었다는 것, 폭스바겐 똥차를 몰고 다니던 볼품없어 보이는 이웃의 할아버지가 알고 보니 노르웨이 부자 5000명 중 하나였다는 이야기 등은 이들의 검소한 삶을 보여주는 유명한 일화들이다.


북유럽 사람들은 명품에 대해서 돈이 있다고 해도 너무 비싸서 사지 않는다고 하며 명품에 그다지 관심도 없다. 그들은 실용성과 기능을 중시하며, 명품으로 치장하는 것에 대해서 사치라고 생각한다.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기보다 인간 본연의 가치를 존중하는 문화이다.


한국 사람들을 보면 놀라울 정도로 외양에 집착한다. 지하철과 거리를 지나다니다 보면 온통 명품과 성형수술 광고로 도배가 되어 있다. 명품을 들지 않으면 무언가 모자란다고 생각하는 듯이 그것이 진품이 아니라 모조품이라도 산다. 나 역시 명품백을 산 적이 있었지만 실생활에서는 자주 들고 다니지 않게 되었다. 무겁고 괜히 들고 다녔다가 문제가 생길까 봐 걱정도 되어 잘 안 들고 다니게 되었다. 그런데 결혼식이나 아니면 사람들에게 외양으로 평가를 당하는 것처럼 느낄 때는 들고나가게 된다.


사람들이 명품을 사려고 하는 이유의 저변에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사회적 존재인 인간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배척당하고 싶지 않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와 자신의 외모에 불만을 품게 되는데 소비를 이용하여 자기 자신을 부풀리고자 한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특히 이상적인 자신의 모습과 현실의 자신의 모습의 간극이 큰 사람이라고 한다.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 소비를 더 많이 하게 된다.


런던대 펀햄 교수에 의하면 소비란 감정, 그중에서도 사람들이 불안할 때, 우울할 때, 화가 났을 때 발생한다고 했다. 불안은 특히 낮은 자존감을 공격한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소비가 '불안'에서 시작한다고 한다. 백화점 등을 방문해보면 화장품 코너 같은 곳에서는 판매원이 고객이 생각지도 못한 것을 단점으로 지적하곤 한다. 결과적으로 고객의 약점을 지적하는 것은 소비를 이끌어내는 데 핵심이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능한 자신의 약점을 감추고 싶어 하고 없애고 싶어 한다. 그렇기에 겉으로 드러나기 쉬운 외양을 잘 갖춤으로써 공격받지 않으려는 건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자존감을 낮추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자존감은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받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 때, 본인의 성격적인 면에서 타인과 관계가 적절한 대접을 못 받는 사람들이 애정적인 불균형 등으로 인해 낮아진다고 할 수 있다. 겉으로 평가하는 면이 많아질수록 사람들은 겉모습에 많이 좌우되고 자연스레 그 영향을 받아 본인도 자기 자신을 겉모습에 비중을 두고 평가하게 되기 쉽다.


작년 봄, 그러니까 2018년 3월 프랑스 문화원에서 주최한 프랑스 작가들을 초청한 강연회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중 한 명인 엘리자 수아 뒤사팽이라는 작가는 한국인 어머니와 프랑스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청소년기에 처음으로 어머니의 나라인 한국을 방문하고 외모에 집착하는 한국 사회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본인의 만족을 위해 성형수술을 한다거나 꾸미는 거에 대해서는 뭐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남을 외양으로 판단함으로써 그 사람의 자존감을 낮추고, 상처 입히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수수하게 하고 간 사람을 보고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다.


어렸을 때부터 같이 살았던 외할머니께서는 상당히 멋쟁이셨다. 할머니께서는 나에게 늘 옷을 잘 입고 다녀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그때는 그게 무슨 소리인지 잘 몰랐는데 나중에야 그게 무슨 뜻인지 알게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의 행색을 보고 판단하기 때문에 추레한 행색으로 있으면 얕잡아보고 막 대하기 십상이다.


한국에서, 특히 서울처럼 천만 명이 사는 대도시에서는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다. 따라서 어떤 사람을 알아가는 데에 많은 시간을 들이기 힘들기에 순간적인 이미지가 제공하는 정보에 기댈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기는 하다. 반면에 북유럽 사람들은 적은 인구가 계속 한 마을에서 살다 보니 순간적인 이미지의 판단 외에도 오랫동안 지켜보며 다양한 정보를 취득하게 된다.


물론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으로 일종의 본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나도 아름다운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우리의 감각이 오로지 겉으로만 향할 때,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곤 한다. 허황된 겉모습에 현혹될 때, 우리 삶에는 개츠비 같은 인물들이 생겨나고 사람들은 종종 사기를 당하기도 한다. 겉모습에 대해서 아예 신경을 안 쓰자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며 스스로와 남을 판단하는 것은 진화한 인류로서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종종 행색이 초라하다는 이유로 사람을 쉬이 얕잡아보거나 평가하곤 한다. 멋있게 잘 꾸민 사람들 보면 좋아 보이는 건 당연한 거지만, 그게 곧 그 사람의 사람됨을 알려주는 척도는 아니라는 것을 잊어버리곤 한다. 우리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 신경 쓰고 꾸미느라 마음과 같이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부분을 가꾸는 것은 놓치고 있지 않나 싶다. 늙으면 외모는 변한다. 그리고 젊음이나 아름다움 등을 영원히 붙잡고 살 수 없다. 변하는 것을 변하지 않게 하며 불행해지는 것보다 인품과 같이 남는 것에 신경 쓰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로 사람 자체의 인품이 좋을 때 명품이나 다른 어떤 것으로 꾸민 것보다 더 멋있다고 생각한다.


오스카 와일드는 이를 그의 저서인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서 꼬집고 있다. 아름다운 미모로 칭송받는 ‘도리언 그레이’는 그의 절친한 친구인 화가 ‘바질’로부터 초상화를 선물 받는다. 세월이 흘러도 모습이 변치 않을 자신의 초상화에 부러움을 느낀 그는 자기의 외모는 그대로 있고, 차라리 그림이 대신 늙고 추하게 변했으면 좋겠다고 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바람대로 그의 모습은 그가 늙든, 죄를 지어 마음이 추하게 변하든 그대로지만 초상화는 그 대신에 그의 그런 추하고 악한 마음을 반영하여 아름다움을 잃고 흉하게 변한다. 만약 우리에게도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처럼 사람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 있다면 사람들은 과연 겉모습만으로 사람을 평가할 수 있을까?


타인을 겉모습만으로 판단하고 생각하지 않을 때, 자기 자신도 그런 생각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 행색이 초라해도 사람들이 나를 멸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을 때, 그런 환경이라면 스스로를 존중하는 자아존중감, 즉 자존감 역시 높아지고 좀 더 쉽게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어떠한 모습이더라도 다른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고, 그 자체로 괜찮은, 필요한 사람이니까 말이다.





담장 옆의 소박하게 핀 꽃들도 향기는 여느 꽃과 다를 바가 없다.


*자존감과 명품 소비에 관한 부분은 EBS 다큐 프라임 '자본주의' 제2부 '소비는 감정이다'(20120925) , '누가 내 지갑을 조종하는가; 그들이 말하지 않은 소비의 진살'(마틴 린드스트롬, 2012) 참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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