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쿨해도 너무 쿨한 남녀 관계

결혼보다는 동거를 선호하는 실용주의자들의 사랑법

by moka

스웨덴 에어비앤비 숙소의 호스트는 리한나를 떠올리게 만드는 키가 크고 늘씬한 흑인 여자였다. 그녀에게 짤막한 설명을 듣고 짐을 푸는데, 어딘지 모르게 브래드 피트를 닮은 것도 같은 금발 단발머리의 사각턱 얼굴을 한 호스트의 애 아빠가 딸을 돌보러 거기에 왔다.


그가 인사를 하자 나는 처음에 이 곳이 여럿이 묵을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 형식인 줄 몰랐기에, 특히 그때까지 거기에 남자도 묵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못했기 때문에 속으로 조금 당황스럽고 불편했다. 그러나 어쩌겠나? 어차피 그는 자기 딸을 돌보러 온 사람이고 나와는 별로 부딪힐 일이 없었다. 거기다 그곳에는 그 사람 외에도 크로아티아에서 왔다는 나와 동갑내기의 여자애들과 프랑스에서 온 부부도 있었기에 곧 그러려니 하게 됐다.


북유럽은 이혼율이 높고, 이혼하는 비용이 굉장히 비싸기 때문에 동거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무리 이혼율이 높다지만 이혼하는데 비용이 많이 들어서 결혼을 안 한다니, 뭔가 이혼을 염두에 둔 관계 같이 느껴져서 설명을 들으면서 기분이 이상했다. 한편 이들은 이혼을 하게 된다고 해도 ‘사랑과 전쟁’ 같은 상황보다는 갈등이 생길 것 같으면 갈등이 깊어지기 전에 이혼을 한다고 그래서 그거를 듣고 놀랬던 기억이 난다. (물론 100% 그런 것은 아니고 싸우면서도 아이들이 다 클 때까지 아이들 때문에 이혼을 안 하고 버티는 경우도 상당수 있는 듯하다.)


하지만 나를 가장 놀라게 했던 것은 덴마크 시청 투어를 하다가 나를 일대일로 가이드해주던 시청 직원에게서 들은 것이었다. 그녀의 아파트에 사는 한 여자는 애가 셋인데 애 아빠가 다 다르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그 세 아빠들이 다 공동육아의 책임을 지기 때문에 다 그 근처에 산다는 것이었다.


성에 대해 다소 개방적인 인식을 가진 북유럽 사람들에 비해 내가 상대적으로 다소 보수적으로 자라서 그런지 몰라도 내게 이 일화는 문화충격 그 자체였다. 그러나 얼마 후에 이 이야기를 현지에서 사귄 덴마크 친구에게 말했더니 그도 충격을 받은 듯 깜짝 놀라는 걸 보면 아무리 자유로워도 이게 흔한 경우는 아닌 모양이다. 비록 그 친구의 가족 중에도 결혼은 안 하고 동거만 하는 상태에서 아이가 있는 사람이 있었지만.


북유럽 사람들은 굉장히 신중하다고 한다. 그래서 섣불리 관계에 대해서 선언하지 않는다. 결혼 역시 살아보고 맞는지 결정한다는 측면에서 결혼 전에 대부분 동거를 하는 편이라고 한다. 혹은 집값이 비싸니 어차피 나중에 결혼을 할 거라는 생각으로 같이 사는 경우도 흔하다고 한다. '결혼'이라고 하지 않아도 평생 함께 할 파트너로서 생각하며 그대로 아이를 낳아 키우기도 한다. 한 독일 친구는 동거를 하다가 아이가 생겨서 결혼식을 올렸는데, 반면 10년 동안 사귀던 남자 친구가 있던 핀란드 친구는 어느 날 그냥 임신 사실을 알리며 '결혼' 없이 바로 가정을 꾸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들에게 '결혼'이란 그저 '제도'에 불과하다고 말을 하곤 한다.


그들의 그런 이야기를 듣고 보니 어찌 보면 그들의 논리에 따르면 동거가 나름대로 합리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결혼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들 하나 같이 결혼과 연애는 완전히 다르다고 곧잘 말하곤 한다. 결혼 전에 아무리 오래 사귀었던 커플도 결혼을 하고 나서 꼭 싸운다는데 그 이유는 생활습관이라든가 이런 면에서 서로가 몰랐던 측면들을 결혼을 하고 나서야 생활하면서 비로소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부 남녀들은 결혼 전에 함께 긴 여행을 가본다든지 함께 살아보는 경험 비슷한 것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아 말하곤 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도 동거에 대해서 부정적인 인식이 많다. 그래서인지 결혼 직전에 둘이 같이 살 집을 구해놓고 사정으로 인해 같이 사는 경우는 봤지만, 결혼을 안 하고 동거만 하는 커플은 아직까지도 한국에서는 주위에서 본 적이 거의 없다. 얼마 전 한 기사에서 읽은 바로는 직장에서 애인과 함께 살고 있다고 하자 직장에서 사람들이 수군거려 곤욕을 치렀다고 한다. 이게 현실이니 함께 살고 있어도 자연스레 숨기려 하게 되는 것 같다. 필요는 인정을 한다고 해도 ‘그러다 헤어지면 어떻게 하냐?’는 것이 주된 반대의 이유다. 그러다 안 맞아서 헤어지면 나중에 결혼했다가 이혼할 일을 미리 막고 좋은 것 아닌가? 하지만 막상 새로 사귄 애인이 전에 동거했다고 그러면 모르면 몰랐지 알면 마음이 편치 않으려나.

그러고 보면 결혼을 앞둔 많은 커플들이 결혼을 준비하다 헤어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한국에서 결혼이란 단순히 두 사람의 결합이 아니라 두 가족이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에 그로 인한 문제들도 상당히 복잡하다. 여자의 경우 일단 스드메(스튜디오 사진 촬영, 웨딩드레스, 메이크업)가 기본적으로 준비해야 할 것에 들어가고 날짜는 언제, 식은 어디서 등 결혼식만 생각해도 참 복잡한 게 많다. 주변의 친한 친구 가운데 몇은 결혼을 준비하면서 '결혼식이 하기 싫다'는 말까지 했었다. 고려해야 할 게 한 두 개가 아니다 보니 결혼식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도 다툼이 생기고, 거기서 헤어지는 경우를 보고 있노라면 결혼이란 참 복잡하고 피곤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나 역시 나잇대가 좀 있으신 어른들처럼 동거라든지 그런 면에 대해서 유독 보수적이었다. 지금도 그에 대해 아니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사실 따지고 들어갈수록 뭐가 문제라고 정의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결혼을 하지 않고도 동거만으로도 그만한 게 인정이 된다면, 서로에게 충실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속이지 않고 파트너라고 인정할 수 있다면 괜찮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건 뭐 결혼이나 다를 바가 없나? 아무튼, 그래도 이제는 이에 대해서 색안경을 끼고 무조건 그게 잘못되었다고,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와 생각이 달라도 거기엔 그만의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기에 극단적으로 그것을 폄하하고 반대하지는 않게 되었다. 어쨌거나 각자가 선택한 삶이니 당사자만 괜찮다면 주변에서 이러쿵저러쿵 할 문제는 아니지 않나 싶다.


즐겨 보는 TED 강연에서 한 랍비가 그런 말을 했다. 우리가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만 만날수록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어 우리 사회는 극단적으로 변하게 되고 서로 충돌하게 된단다. 그러나 나와 다르다고 여겨지는 사람들도 막상 만나게 되면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 과정을 통해 사람들은 이전처럼 자기와 다른 이들에 대한 무지로 그들을 겁내거나 혐오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사회는 갈등이 줄어든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편하지 않아도 자기와 다른 사람들을 계속 만나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 같다.




결혼보다 동거를 많이 한다는 얘기를 듣고 문득 길에서 보이는 커플들을 보면 저 사람들은 결혼을 했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동거에 대해 털어놓았다가 직장에서 곤욕을 치렀다는 내용은 '동거한다고 하면 ‘수군수군’…“좋아해서 같이 사는 게 문란한 건가요?”'(아시아 경제, 윤신원, 2018.11.2)를 참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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