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속도로 사는 불안감이 들 때 기억할 것; 모두의 삶은 다 다르다
처음 북유럽으로 여행을 떠난 것은 한국 나이로 서른이 되던 해였다. 주위에서는 많은 친구 및 지인들이 서른 전후로 결혼을 하고 있었고 아니면 결혼을 계획 중이었다. 사람들은 서른이 넘으면 세상이 바뀌기라도 할 듯이 스물아홉에 김광석의 노래를 듣고 불러댄다. 나 역시 그랬고, 하지만 서른이 되어도 그리고 서른을 넘긴 지금까지도 나는 결혼에 대한 계획이 없다. 결혼을 위해 많은 것이 준비되어야 하고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으면 결혼을 위해 사람을 만나는 것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결혼은 애초에 사랑하는 사람과 계속 함께 있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었던가?
그즈음에 우리 집도 한창 결혼이 성화였다. 하나둘씩 결혼해서 신혼여행을 가는 친구들과 달리 혼자 여행을 떠나며 이래도 되는 걸까 괜히 눈치가 보이기도 했다. 그러다 여행 중 스웨덴에서 만난 나와 동갑내기 크로아티아 여자애들이 말했다.
“아시아는 여자들이 일찍 결혼하는 편이지?”
그 말에 나는 우리 집도 나보고 결혼하라고 난리라고 대답을 했다. 그중 하나는 결혼은 안 했지만 이미 몇 해전 사고(?) 쳐서 아이가 있는 싱글맘이었고 다른 하나는 나처럼 그냥 싱글이었다.
“나는 남동생이 싱글대디인데 엄마가 나보고 ‘너는 이러다 남들 다 갔다가 온 다음에 한 번 다녀온 남자랑 만날 수도 있겠다’고 그래.”
나처럼 싱글인 친구가 나에게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걱정하지 않았다.
“빠른 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왠지 그 나이의 과제를 척척 해나가고 있는 듯한 다른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뒤쳐지는 게 아닐까 조금은 조급해지곤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편해졌다. 괜히 조급해하다가 실수할 필요는 없지. 생각해보면 남들 사는 것 따라 사느라 정말 원하는 게 뭔지 모르는 채로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대학을 갈 때 진짜 원하는 전공보다는 성적에 맞춰 가기 일쑤고, 그래서 대학에 가서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아 힘들어하는 친구도 여럿 봤다.
북유럽 사람들은 고등학교 졸업 후 갭이어(Gap year)라고 학업을 병행하거나 잠시 중단하고 봉사, 여행, 진로 탐색, 교육, 인턴, 창업 등 다양한 활동을 직접 체험하고 향후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설정하는 시간이 있다. 알랭 드 보통이 세운 ‘인생학교’ 비슷한 덴마크 시민대학에 진학하는 경우도 있는데 여기에 가는 경우는 10~30% 정도로 그리 많지는 않다고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무조건 시간에 쫓겨 생각 없이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들보다 늦게 학교를 가건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살다 보면 생각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많다. 많은 정도가 아니라 계획대로 안 되는 일 투성이다. 나도 남들 못지않게 계획은 잘 세워뒀는데 내 인생은 왜 이렇게 된 걸까 자괴감에 빠지곤 한다. 지망했던 대학에 떨어지기도 하고, 갑자기 뜻하지 않은 병에 걸리기도 하고, 평생 붙어 다닐 거라고 믿은 단짝 친구와 절교를 하거나 가까운 사람들과 이유 없이 멀어지는 것은 흔한 일이다. 가장 의지했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세상을 떠나기도 하고 결혼할 거라고 생각했던 애인과 헤어지기도 하고, 어렵사리 들어간 직장이 안 맞아 뛰쳐나오기도 하고, 전도유망했던 일은 시작하고 시간이 지나면 흐름이 바뀌어 영 아닌 게 되기도 한다. 살다 보면 한때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게 나중에 최선이 아닌 것으로 변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어쩌겠나, 이번 생은 처음인 걸!
언젠가 한석규 배우님이 무릎팍 도사인가에 나와서 나이가 50세인데도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셨던 적이 있었다. 맙소사 그걸 보고 나는 정말 기겁을 했다. 50세에도 어떻게 살지 모른다니 도대체 언제가 되어야 안정을 얻을 수 있을까?! 그러고 나서 윤여정 선생님이 70년을 살아도 매해 겪어보지 않았던 터라 매번 새롭다고 말씀하셨다.
생각해보면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끊임없이 터져 좌절을 거듭하게 되는 게 인생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해보지 않으면, 겪어보지 않으면 미리 알 수가 없는 게 인생사라 해보기 전까지는 뜻대로 되지 않을지 알 수가 없다.
생각했던 대로 되지 않을 때, 물론 속은 상하겠지만 끝은 아니다. 무언가 잘 안 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인생의 끝은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경험일 뿐, 100세 시대에 당신에게는 앞으로 창창한 날들이 남아있다. 마음이 쓰리고 아프겠지만, 그것에도 나름의 교훈과 가르침이 있다. 너무 빨리 괜찮아지려 하기보다 시간이 걸려도 마음을 잘 추스르고 자기를 믿고 독려해주길 바란다. 그리고 다시 털고 일어나면 된다. 잠시 멈춰서 숨을 고르고 다시 방향과 목표를 설정하면 된다. 길을 잃으면 지도와 나침반을 보고 다시 길을 찾듯이 우리 인생도 그때마다 다시 수정하면 된다.
오랜 경쟁에 시달리다 보면, 자기 방향을 곧잘 잃어버리곤 한다. 대학 입학만을 목표로 하고 달려온 사람에게는 대학 입학 후에 목표의 상실로 인한 혼란이 온다. 삶에서는 항상 단계별로 새로운 목표의 설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모두의 삶이 똑같을 수 없기에, 모두의 목표 설정 역시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자꾸만 우리는 주변과 비교하게 된다. 자기가 하고 싶었던 게 아닌데도 비슷한 걸 비슷한 시기에 하지 않으면 불안에 시달린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비교와 평가를 내재화한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를 타자화하여 마음의 감옥에서 괴로워한다.
북유럽 사회와 사람들을 들여다보면서 느낀 게, 타인과 비교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북유럽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면 비싸고 좋은 거를 산다고 하면 속으로 매우 질투하고 싫어하고 욕한다고 하니 속으로는 비교 자체를 안 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북유럽 얀테에 법칙도 질투를 유발하지 않게 비교 자체를 금지하는 차원에서 만들어진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질투 자체를 안 하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가?! 물론 속으로 비교하는 것까지는 내가 알 수 없겠지만, 극도로 경쟁을 자제하면서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덜하다는 것이다. 사회 전반적으로 통합을 목표로 하다 보니 공동의 목표를 위해 협력을 강조하는 게 많다. 통합에 가장 치명적인 걸림돌은 상대방을 경쟁상대로 여기고 적대시하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비교만 하지 않아도 사는 게 훨씬 덜 힘들지 않나 싶다.
상황이 변하는 것처럼, 인간도 죽을 때까지 계속 성장하는 존재다. 주변과 비교하지 말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자기만의 속도로 걸어가면 된다. 결국엔 묵묵히 자기의 길을 걷다 보면 도달하기 마련이다. 삶은 여정이라는 말처럼, 어딘가에 빨리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도달하는 과정 그 자체이니까 말이다. 그러니 쉬이 좌절하지 말자. 길게 보고 담담하게 스스로를 다독이고 응원해주며 걸어가자. 잘 안 되면 돌아가면 된다. 꽃도 피는 계절이 다 다르다는데,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자신의 꽃을 피우는데 집중하자. 자기 자신에게 시간을 주고 인내하자, 당신의 꽃이 피는 계절이 반드시 오리니!
* 북유럽인들의 질투(?)에 관해서는 덴마크인이 덴마크가 최고로 행복한 나라라는 사실이 아니며 덴마크가 싫다고 써놓은 글에서 참조함. (city-data라는 사이트에 'Why Denmark sucks'라는 글(2008)에 따르면 덴마크 사람한테 가서 비싼 집이나 좋은 거를 사거나 산다고 한다면 그들은 당신을 질투한 나머지 싫어할 것이라고 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