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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로해피 Feb 18. 2024

우리들의 돌봄 이야기

돌봄은 누가 떠 맡고 있는가.

어쩌다 보니 사회적 돌봄의 선봉대에서 생활한 지 어영부영 만 4, 5년째 접어들었다. 쓸데없이 비장한 마음으로 첫발을 들였고 정말 얼마 못 가서 돌봄 노동의 현실을 체감하고 자존심에 큰 스크레치가 생겼다. 그런 상태로 1년 반 정도를 일하고 자괴감이 들었고 체력의 한계를 느껴서 그만두게 되었다. 그리고 6개월 만에 J를 만나 다시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만 2년째 J를 돌보며 열악한 돌봄 환경에서 젊은 피를 수혈하며 사회적 기여를 톡톡히 해내고 있다.

암 그렇고 말고. 나는 이제 내가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지 너무도 깊게, 너무도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나갔나? 그러나 그동안 현장 실전을 통해 알게 된 분명한 것은 돌봄 노동은 우리 사회에 너무나 중요한 일이며 꼭 필요한 일이라는 사실이다. 그런 생각들이 차곡차곡 쌓이니 나도 내 일에 대해 자긍심은 아닐지라도 부끄러움은 없어졌다. 

여기서 내가 돌봄 노동자로 처음 살게 되면서 느꼈던 감정들(비장한 마음, 마상, 자괴감)을 잠시 설명하고 넘어가겠다.


비장한 마음으로 이 일을 시작했다? 사실 이 일을 시작한 건 경제적 이유가 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 경제활동은 당연한 것이므로. 그럼에도 내 심장 한쪽 구석에선 장애인에 대한, 정확히 말하면 사회약자에 대한 연민이 가득해서 얼마든지 식지 않을 뜨거운 마음으로 이들을 케어할 수 있을 것 같은 비장한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 깨닫게 된 것은 이 일은 보통의 인간애를 가진 사람이 철저한(!) 혹은 가벼운(?) 직업 정신으로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모든 직업을 임하는 자세와 마찬가지로....

자존심에 스크레치가 생겼다? 왠지 이 일을 하는 것이 위축이 되었다. 바보 같지만 그랬다. 이유는 당신이 짐작하시는 그대로가 맞다. ‘좋은 일 하시네요!' 속에 내포된 그 연민과 동정 같은 마음?

의 한계를 느꼈다? 나 자신의 정신과 체력의 한계를 알게 되었다. 나는 고작 이 정도로 비장한 마음을 가졌던 내가 부끄러웠고 엄청난 체력 소모가 되는 이 돌봄 노동을 왜 늙은 여성들이 독박을 써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몇 년 사이 그나마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병원에는 남성 활동지원사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무려 세명이나 계신다….


우리 사회가 유지되는 데에 꼭 필요한, 없어서는 안 될 분야를 필수 노동이라고 한다. 필수노동자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재난 상황에서 국민의 생명 및 안전, 사회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일을 수행하는 노동자'라고 개념화하고 있다. 그러므로 보건의료, 돌봄, 교통, 환경미화원, 건설, 통신 등에 관련된 직종이 이에 해당된다. 이렇듯 필수 노동은 우리의 생존권과 관련된 일들이다.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기본 조건이 된 현대화된 기준이다. 그러므로 시대 상황에 따라 필수 노동 조건은 변화될 수 있다. 시대가 발전할 수록 생존권을 위한 조건들이 더 까다롭게 추가된다고 생각하면 될듯 싶다. 원시시대에는 생존을 위해 통신이나 교통이 꼭 필수 조건은 아니었으므로.

말인즉슨,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시대를 내가 직접 살아보니 대면으로 사람을 밀착해서 돌보는 행위야 말로 인간 생존에 있어 꼭 필요한 일이더란 말이다.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사람 중심의 연대말이다. 정말이지 그런 연대로 간호사와 의사의 희생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난 팬데믹 상황을 잘 극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듯 코로나19는 사람보다는 경제적 부가가치를 중요시하는 이 시대에 돌봄을 화두로 만들어준 아주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또 아주 중요한 물음을 우리에게 남겨준 일이기도 하다. 

'돌봄은 누가 떠맡고 있는가?'에 우리의 시선을 잠시 돌렸던. 그러나 금세 묻혀버린 사건인것이다.

그렇게 전 지구가 코로나 전염의 우려로 사람이 사람을 피하는 것을 독려할 때, 돌봄 노동자는 더 밀착하며 사람을 돌봐야 했다. 모든 공공의 공간이 폐쇄되어 갈 곳을 모두 잃었으니 환자와 돌봄자는 또 다른 폐쇄된 공간에서 더 밀착할 수밖에.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죽음의 최전선에서 이루어진 돌봄 노동을 대부분 코로나에 취약한 노인들이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듯 내게 코로나 19시대는 우리 사회의 돌봄의 구조적 비애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던 기회가 되었다.

예컨대, 우리 사회에서의 돌봄 노동은 '극한의 직업(?) 못 배우고 가난한 사람이 도맡는 것 같은 인식(?) 비용을 지불해서 해결하고 싶다는 심리(?) 모두가 피하고 싶은 소위 3D 직종(?)으로 분류되고 있다. 약자가 약자를 돌보는 사회라고나 할까? 

그러나 우리는 약자 혹은 노인에게 힘든 일을 미루는 지금의 이 사회구조로는 아무도 구원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사람은 없고 자본 독식 계급의 피라미드의 구조를 그리게 될 뿐이다.

나또한 그동안 돌봄을 타인에게 전가하며 살았던건 아닌지 깊게 반성해 본다. 고백하건데, 우리 시어머니도 다른 형제가 돌보고 있음을 다행이라고 여기고 있었으니 내가 돌봄에 대해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 그럼에도 반성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우리 삶에 가장 중요하고 가장 기본이 되는 돌봄이 우리 사회의 중심 어젠다가 되는 세상을 꿈꾸어 본다. 그래야만 내가 우리가 바라는 진정한 사람중심의 세상을 만들 수 있을테니까. 조안 C. 토론토의 주장처럼 말이다. 돌봄이 모든 세상의 중심이 되고 나 자신만을 위한 돌봄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 서로가 서로를 함께 돌보는 ‘우리들의 돌봄 이야기’를 하는 날을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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