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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로해피 Mar 10. 2024

누가 돌볼 것인가

 ‘나는 누구를 돌볼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사회

지난번 책모임에서 ‘새벽 세시의 몸들에게’와 ‘돌봄 민주주의’라는 책을 읽고 토론을 한 기회가 있었다. 전자는 질병, 돌봄, 노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후자는 우리 사회의 돌봄이 어느 한 계층의 사람들의 일이 되어서는 아니 되고, ‘함께 돌봄’의 사회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강한 주장의 논문이다. 그러기 위해선 함께 돌봄이 정치적 의제의 중심에 서서 사회를 새롭게 정비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두 토론에서 나온 우리의 의견은 주로 ‘내가 누구를 돌볼 수 있느냐?’를 고민하기보다 ‘나는 누구에게 자신의 존엄을 헤치지 않으면서 돌봄을 받을 수 있느냐?’를 고민하는 내용이 주였다. 보통의 우리들의 걱정일 것이다. 그래서 보통의 우리는 죽어가는 노년에 좋은 돌봄 인력을 만나기를 희망하며 나쁜 돌봄 노동에 대해 비난을 여과 없이 드러내기도 한다. 

이런 주제에 있어, 나도 장애인 활동지원사로 일하기 전엔 나의 노년의 삶과 죽음에 대한 걱정이 전부였다. 우리 사회의 돌봄 시스템을 생각해 볼 여력이 없었다. 아니 관심조차 없었다. 그러나 돌봄 노동자로서 지금의 나는 조금 다른 생각으로 돌봄 문제를 접근하고 있다. 이제 나는 ‘누가 나를 돌볼 것인가?’를 넘어 ‘나는 누구를 돌볼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우리는 죽어가는 나를, 내 가족을 돌봄 노동자에게 맡기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사회가 당연히 내게 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긴다. 나조차도 내 병든 노년의 삶을 위해 간병인 보험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그리고 몸이 불편한 우리 시어머님을 돌볼 자신이 없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심정이다. 그도 그럴 것이 노인이나 환자를 돌본다는 것은 체력전이기때문이다. 때문에 연민의 마음이 있다 해서 잘돌볼 수 있을지 정말 자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우리 모두가 피하고 싶어하는 이 돌봄의 문제를 사회에게 만 바라는 것이 과연 올바르고 합리적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돌봄은 숭고한 그 무엇이라고 치켜 세우며 여성과 사회 낮은 계층에게 희생을 강요하거나 전가시키고 있는 것이 현재의 우리들의 모습이다. 돌봄 노동에 대한 인식은 밑바닥에서 건져 올리지 않은 채 말이다. 돌봄이 가져야 할 가치는 숭고함, 사랑, 희생 뭐 이런 추상적인 개념이 맞는 말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이처럼 돌봄 노동은 희생, 봉사를 하는 그런 숭고한 무엇이 아니다. 어엿한 직업의 한 분야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돌봄 노동자에게 늘 가족 같은 마음을 강조하는 것일까? 우리는 보통 가족 같은 회사란 말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지 않던가? 이 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돌봄 노동은 일로서 책임을 다하는 직업이지 가족이 되어주는 일이 아니다. 다른 직업처럼 직업관에 따라 하는 일이다. 물론 그 직업관에는 인간애가 가장 기본 원칙이 된다는 것이 다른 직업과 조금 다를까?

나와 나의 가족에게 최상의 좋은 돌봄을 제공하고 싶다면 돌봄 노동자에게 좋은 근무환경을 만들어 주면 될 것이다. 일반적인 직업인들처럼 말이다. 그러면 대부분의 우리의 걱정은 사라진다. 돌봄 노동의 처우와 환경은 열악하고 직업에 대한 인식도 후진적인데 돌봄 노동자에게 좋은 돌봄을 원한다는 건 참으로 이율배반적인 모습이다.

여하튼 이처럼 우리는 과거엔 개인이 또는 가족이 책임졌던 돌봄이 사회화가 되는 시대를 살게 되었다. 사회화란 이 일을 사회 일원 누군가의 도움으로 살아가게 되었다는 뜻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 개인플레이로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연대 혹은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견디고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이제 돌봄은 개인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해야 할 우리의 일이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함께 고민하고 함께 해결해야 할 의지를 갖지 않으면 이 돌봄의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 돌봄에 있어서는 누구도 무임승차할 수 없고 남성과 여성, 사회적 계층에 관계없이 모두가 돌봄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나는 어떤 좋은 돌봄 제공자를 만날수 있는가를 걱정하기보다 ‘나는 누구를 돌볼 것인가’를 고민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최근 이 부족한 돌봄 노동 인력을 보충하는 대안으로 해외 노동자를 영입을 결정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많이 아쉬운 부분이다. 이 것은 거시 안 적인 시스템을 만들기보다 구멍을 메우는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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