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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로해피 Apr 24. 2024

키 작은 사람들의 연대

2019년 우울한 코로나의 시대에 소외된 노인들을 위한 무대를 취재한 적이 있었다. 아프고 거동이 불편한 마을 노인들을 위해 화전동 경로당 마당에서 음악회를 열었다. 이런 낮은 곳에서의 연대는 주로 지자체에서 지원하고 지역 예술인과 지역 주민이 주체가 된다. 고양시 도시재생 공모사업인 이 공연은 화전동 주민자치위원회에서 주관했다. 화전동 8통과 9통 경로당 앞마당에서 2회에 거쳐 개최했다. 8통과 9통은 아주 가까운 거리지만 노인들의 거동이 어려웠기 때문에 따로따로 2회 공연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화전동은 낙후된 마을이다. 아니 아직 옛 정서의 순수함과 자연의 생태계를 잃지 않은 따뜻한 마을이다. 그 옛 정서가 그리워 가끔 사람들은 화전동 벽화마을의 느린 시간을 걸으며 어릴 적 골목길을 추억한다. 그러나 실제로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낭만이나 추억과는 거리가 멀다. 당연 문화활동에서도 소외되어 있다. 그 공백을 촘촘히 메꾸고 있는 것이 마을 활동가이며 지역 예술인들인 것이다. 나는 지역시민을 위해 낮은 곳에서  애쓰는 그들을 ‘키작은 사람들’이라 부른다.

공연은 어르신들이 직접 요청한 것이라 했다. 8통에 사는 이원완 할머님은 직장암 수술을 하셨고 다른 다섯 분의 할머님도 거동이 불편하여 지팡이를 의지해야 했다. 공연은 이 여섯 분의 할머니를 위해 시작된 것이다.

음악회가 끝나고 이원완 할머니는 무대 위 한쪽에 떡 한 덩이를 살며시 놓고 가셨다. 음악회 관람 후 지팡이를 의지하며 당신의 집으로 향하는 할머님들의 뒷모습에 애잔함이 느껴졌다. 음악회를 위해 한달음에 달려와 준 공연자들이 고마웠다. 

나는 공연이 다 끝이 난 뒤에도 그곳을 쉽게 떠날 수 없었다. 휠체어와 서로를 의지하며 느리고 기울어진 듯 걷는 노인들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 따라가 보았다. 그들은 집들이 촘촘히 붙은 골목 앞 평상에서 잔치 떡을 나누어 먹었다. 나는 경로당 앞마당 음악회도 축제로 체감하는 화전동 노인들이 하도 애잔하여 초라한 내 카메라에 그분들의 고달픈 웃음을 거룩하게 담았다. 

지자체 소셜기자는 시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일정 범위 내에서 자유로운 취재가 가능하다. 나의 소셜기자 활동의 첫 시작은 고양시의 세계적인 학회인 도시포럼과 지식포럼, 5.18 민주화 운동 기념행사 등의 고양시 정책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평일 근무를 하고 있어 백수로서 소셜기자 일에 임할 때와는 다른 포지션을 취해야 했다. 주로 주말에 이루어지는 지역 예술인들이 진행하는 공연이나 행사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평소에도 관심이 많았던 문화∙예술 분야라서 그에 대한 매력이 짙었다. 

그러면서 아주 중요한 가치와 의미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소셜기자인 나와도 긴밀하게 연결된 부분이다. 그 연결성은 우리는 낮은 곳에서 연대하는 ‘키 작은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코로나19 첫해엔 모든 사회가 경직되었다. 온 사회가 멈춰버린 코로나19의 여파가 이들의 발목을 거세게 붙잡았다. 문화와 예술은 모이고 만나야 빛을 발할 수 있다. 대중의 공감의 환희 속에서 문화와 예술이 탄생된다. 이처럼 무대에서 작품이 완성되는 지역 예술인들은 이 모이기 힘든 시기를 어떻게 극복하고 있었을까. 

일반적인 공연은 관객이 공연자의 무대를 찾아간다. 그러나 특별한 경우도 있다. 시민을 직접 찾아가는 지역 예술인들의 공연이다. 거리예술 공연을 비롯해서 마을 행사나 축제, 고양 문화다리, 찾아가는 문화 활동, 퇴근길 음악회 등 지자체에서 주관하고 지역 예술인들이 주최하는 방식의 작은 공연들 말이다. 

이와 같은 지역 공연은 ‘지역 주민들에 의한 지역 주민들을 위한 것’이다. 시민의 일상의 품격을 높이기 위한 발로이며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문화적 돌봄 서비스이다. 그러나 자본의 계층에 따라 문화와 예술도 격차가 벌어졌다. 이 문화적 격차를 줄이기 위해 사회는 고민한다. 그 고민 속에서 자발적 개인의 활동들이 사회에 점차 스며 들었다. 소규모의 콘서트나 강연 등 지역 서점에서 멍석을 깔았다. 개인들이 모인 소호활동의 결과물로 전시회나 공연도 열렸다. 이 시대적 흐름을 타고 ‘관’의 행정이 움직였다. 지역 예술인들에게는 무대를, 문화와 예술에 소외된 채 살아가는 지역 시민들에게는 작은 문화활동이라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려 노력했다. ‘민'과 ‘관'의 연대로 마을 속으로 문화와 예술을 침투시키고 있다. 이렇듯 우리는 점차 자본의 경쟁심리로 따분해지고 삭막해진 일상이 축제인 사회를 꿈꿀 수 있게 된것이다.

이처럼 지역 사회는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에 입각한 다양한 지원사업으로 코로나19 환경에 적극 대응했다. 덕분에 코로나 위기 속에서도 지역 예술인들은 지역 시민들을 위해 공연을 펼칠수있었고 소외계층일수록 문화적 돌봄 서비스를 더 많이 받을 수 있었다. 대면 공연을 할 수 없었으므로 음악회를 스튜디오에서 영상으로 촬영하여 외부와 차단된 요양병원이나 양로원에 제공했다. 시민들이 오고가는 야외 무대에서도 공연을 했다. 집에서 생생한 라이브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아파트 발코니 음악회를 열기도 했다. 오히려 코로나19의 위기가 문화∙예술이 마을 곳곳에 직접 찾아가는 약자를 위한 문화적 돌봄 서비스로 성행할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중요한것은 우리 사회는 약자가 약자를 돌본다는 사실이다. 이른바 ‘키 작은 사람들’이 연대하며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다. 나는 돌봄 노동자로서 매일 약자를 돌보는 약자를 마주한다. 보호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장애 아이들을 치료하는 청년 치료사 선생님들과 돌봄 노동자 그리고 지쳐가는 장애 아이들의 엄마(여성)들, 소위 사회의 약자 ‘키 작은 사람들’이 서로를 돌보며 연대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매일 보고 있다. 

그러나 돌봄에 있어 무임 승차권을 얻은 남성과 자본가와 삶의 상위계층에 있는 사람들은 이 낮은 지대에서 잘 볼 수 없다. 우리 사회에서 약자를 친밀하게 돌보고 있는 자는 낮은 곳에서 서 있는 약자들의 몫인 것이다. 문화예술의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문화예술의 가장 낮은 곳에 서 있는 거리예술인들이 약자들의 문화생활을 책임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나는 약자가 약자를 돕는 이 사회에서 행정의 돌봄 시스템이 더욱 절실하고 가치있게 보였다. 

내가 만약 잘 나가는 언론사 기자였다면 ‘키 작은 사람들’의 이와 같은 연대의 가치를 어떻게 알아볼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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