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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재 Oct 19. 2021

추억 소환 코스

2018. 11. 2. 열두째 날

 맨해튼 중심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뉴욕 최대의 공원, 센트럴 파크와 차이나타운이 오늘의 목적지다. 다른 날보다 비교적 일정이 여유 있어서, 딸이 만들어준 베이글 샌드위치로 아침 식사를 천천히 하고 오전 11시경 센트럴 파크로 향했다.


 날씨도 쾌청하고, 센트럴 파크를 걸어서 한 바퀴 돌려면 2시간 이상 걸리므로, 빠르고 상쾌하게 공원을 돌아보기 위해 자전거를 이용하기로 했다. 공원에서 약 500미터쯤 떨어진 대여소에서 자전거를 빌려 타고 공원으로 향했다.


 입구에 도착하니 횡대로 나란히 늘어서서 탑승객을 기다리는 자전거 인력거 수십 대가 눈에 띄었다. 안쪽으로 들어가니 아스팔트 도로가 3차선으로 포장되어 있었다. 1차선은 마차나 자동차가 다니는 길이고, 2차선은 자전거, 3차선은 사람이 다리는 인도였다. 안전을 위해 곳곳에 신호등이 설치되어 있었다. 공원 내에 이러한 신호등을 여러 개 설치한 것은 또 처음 봤다. 얼마나 공원이 크고 여러 가지 탈것이 다니면 신호등까지 설치했을까?


 세계적인 도시 뉴욕에서도 특히 맨해튼은 금싸라기 땅이다. 비싼 땅값을 자랑하는 이곳에, 도시의 허파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남에서 북까지 4km, 동에서 서까지 0.8km의 거대한 공원을 조성한 것이다. 도심 속 녹지 공간의 비율이 시민의 행복 지수를 좌우한다던데, 진짜로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공원을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유난히 밝아 보였다.


 산책하는 사람, 조깅하는 사람, 나무 밑에 앉아 독서를 하는 사람, 여러 마리의 반려견을 운동시키는 사람, 옛날식 관광 마차를 타고 즐거워하는 가족, 우리 같은 관광객 등 다양한 사람들이 보였다. 모두가 무채색의 빌딩 숲 중앙에서 푸르게 숨 쉬는 자연을 만끽하고 있었다.


 우리는 센트럴 파크 한가운데에 있는 거대한 호수를 끼고 크게 한 바퀴 돌며 자전거를 탔다. 크게 힘들진 않았지만, 언덕을 오를 때는 힘에 부치기도 했다. 중간중간 쉬면서 사진도 찍고 미리 준비해 온 음료와 간식도 먹었다. 잔디밭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있으니 희재와 어릴 때 동네 뒷산으로 소풍을 다니던 때가 생각났다. 벌써 25년도 더 된 일이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내 눈에는 희재가 똑같이 어려 보인다는 걸 아마 희재는 모를 것이다. 부모 눈에 자식은 언제나 물가에 내어놓은 어린 아이 같다.



 공원을 나와서 자전거를 반납했다. 사용 시간이 약간 초과하였는데도 대여점 주인이 추가 요금을 받지 않아서 고마웠다. 대여점을 나온 희재는 이제 쉴 타이밍이 되었다면서, 근방의 Pret a Manger라는 모던한 분위기의 카페로 나를 데리고 들어갔다. 창가에 앉아서 잠시 쉬며 화장실도 다녀오고, 커피와 과일을 먹으면서 체력을 회복했다. 이제는 희재가 내 컨디션을 제법 알아서 잘 챙긴다.


 오후 5시 반쯤, 지하철을 타고 차이나타운으로 향했다. 뉴욕의 차이나타운은 철도 공사를 하기 위해 온 중국 노동자들이 1860년대부터 이곳에 정착하면서 형성되었다. 중국인들은 뉴욕에 거주하면서도 그들만의 고유한 문화를 면면히 유지하며 마을을 이루고 살아왔다. 최근에 동남아인들이 이곳에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옛날의 모습이 조금 변했다고 하던데, 나는 처음 와본지라 그 차이를 느끼기는 힘들었다.


 타임스퀘어를 자주 다녀서 그런지는 몰라도 차이나타운의 건물과 가게는 지금껏 봐온 것들에 비해 작고 허름해 보였다. 거리는 온통 붉은색이었다. 대부분의 간판이 빨간 바탕에 흰색 또는 노란색으로 적힌 중국어로 되어있거나 또는 그 반대로 되어 있었고, 가끔 보이는 영어 간판에도 아래쪽이나 옆쪽에 한자로 상호가 작게 표기되어 있어 중국의 자존심을 지키는 듯했다.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패스트 푸드점인 맥도날드 간판에도 예외 없이 그러한 법칙이 적용되어 있었다. 붉은색 바탕에 M자를 노랗게 쓰고, 그 아래에 麥當勞(맥당로) 라는 한자를 붙여 놓는 식이다. 차이나타운 전반에 걸쳐 이러한 가차자(假借字: 음이 같거나 비슷한 자를 빌려 쓴 것)가 자주 보였다.


 

 동파육으로 유명한 식당에 가려 했으나 희재가 상호를 떠올리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다른 곳으로 갔다. 녹명춘(鹿鳴春)이라는 식당이었다. 이곳은 소룡포라고 하는 만두 요리로 알려진 명소이다. 입구에 도착하니, 이미 많은 인파가 몰려서 각자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대기표 37번을 받고 한참을 기다린 후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한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중국집 같은 분위기였다.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 전 세계에서 온 손님들로 바글거렸다.


 소룡포는 만두피 속에 육즙이 있어서, 국물이 새지 않도록 만두를 숟가락 위에 올려놓고 젓가락을 콕 찔러 고깃국물을 먼저 내어 마신 뒤에 덩어리를 먹는다. 이러한 형태의 만두는 여기서 처음 먹어 봤는데 꽤 맛있었다. 이 식당의 종업원이 절대로 친절하다거나 실내 디자인이 세련되진 않았지만, 세계적인 명소로 이름을 날릴 수 있는 이유는 아마도 독특하고 풍미 깊은 음식 덕분일 것이다. 아무리 위치가 좋고 인테리어가 훌륭해도 음식이 맛없으면 오래 가지 못하듯이, 식당이 잘되려면 음식이 맛있어야 한다. 성공하려면 모름지기 본질에 충실해야 한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이곳 녹명춘에서 말해주고 있었다.   


 배를 적당히 채우고 창밖을 내다보니 대기 손님이 너무 많아서 쫓기듯이 식당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기다리는 손님이 없었어도 오래 앉아있을 분위기는 아니었다. 내부가 시끄럽고 복잡했으며, 의자가 작고 좌석 간 간격이 좁아서 옆 사람이 일어날 때마다 나도 같이 일어나서 자리를 비켜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밖으로 나온 우리는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천천히 지하철 쪽으로 걸어갔다. 이미 어둠에 잦아든 차이나타운의 밤거리는 그리 현란하진 않았지만, 공중을 가득 메운 중국어 때문인지 꽤 이국적이었다.


"옛날 가요 중에 ‘아메리카 차이나타운’이라는 노래 들어본 적 있냐?"

"처음 들어보는데요. 그게 언제적 노래에요?

"1954년. '백설희'라는 가수가 불렀어."

"내가 태어나기 30년쯤 전에 나온 노래네! 제가 알 리가 없죠."

"그 노래가 곡조도 화려하고, 가사 중에 불빛이 깜빡깜빡한다는 표현이 자주 나오거든. 그래서 나는 차이나타운을 홍콩의 밤거리쯤으로 상상했어. 그 정도로 화려하진 않지만 뉴욕시 한복판에 중국어로 된 간판이 한가득 모여 있는 모습이 재밌네."

"에이, 그 정도는 아니죠. 그래도 맨해튼에 있는 외국인 타운 중에서 차이나타운이 가장 클걸요? 코리아타운은 골목 하나밖에 안 되잖아. 더 중심지에 있긴 하지만."

"깜빡~ 깜빡, 깜빡깜빡~ 라이 라이~ 호궁이 운다~"

"아빠가 딱 좋아하는 가요무대 스타일이구먼."


 커다란 공원에서 학생 때처럼 혼신의 힘을 다해 자전거도 타고, 시끌벅적한 중국인 마을에서 어릴 때 듣던 노래를 떠올리니 젊은 시절로 잠시 돌아간 듯한 느낌이었다. 밥을 굶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던 그때, 미군에게 '기브 미 쪼꼬렛'을 외치고 집에 수도가 없어 물지게를 지고 물을 나르던 시절이 나의 어린 시절이었다. 희재에게 이런 말을 하면 호랑이 담배 피우던 때 얘기 좀 그만하라고 성화를 한다. 나 때는 더 힘들었으니 지금 네가 힘든것 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의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단지, 내가 처음부터 이렇게 늙은 할아버지로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가끔 상기하려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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