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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재 Oct 23. 2021

쉽게 끝나지 않는 마지막 밤

2018. 11. 7. 열일곱째 날

 새벽 3시쯤, 화장실에 가기 위해 어두운 방 안에서 더듬거리다가 실수로 핸드폰을 침대 밑으로 떨어뜨렸다. 느지막이 겨우 잠이 든 희재가 시끄럽다고 중얼거리다가 다시 조용해졌고, 화장실에 다녀온 나도 곧 다시 잠이 들었다. 오래 잤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눈을 뜬 시간은 새벽 5시였다. 또 자려 노력했으나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아서, 산책하러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이번에는 희재가 깨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조용히 집을 나섰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동네는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동네 이면도로 양쪽으로 야트막한 연립주택이 일렬로 서 있었다. 가로수로 심긴 플라타너스 아래에는 늦가을 비를 맞고 떨어진 낙엽이 지저분하게 쌓여 있었다. 치우는 이는 없었다. 새벽의 풍광을 구경하며 큰길까지 나가서 걷다가 마을 입구의 상점에서 생수를 한 병 샀다. 주인은 50대 정도 되어 보이는 한국인 남성이었는데, 얼굴에 고단한 기색이 가득해서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타지에서 이만큼 자리 잡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지를 상상해 보니 따뜻한 단어를 최대한 모아서 들려주며 등을 다독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조심스럽게 방으로 돌아오니 희재는 여전히 꿈나라였다. 나는 이 틈을 타서 집 안 구석구석을 찬찬히 살펴보기로 했다. 이곳에 온 첫날부터 왠지 모르게 독특한 집의 분위기에 흥미를 느꼈으나 피곤해서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기는 3층 집으로, 1층과 2층은 주인이 사용하고 맨 아래 반지하에서 민박을 친다. 우리가 머무는 장소는 길쭉한 직사각형 모양인데, 햇볕이 잘 들지 않아서 어두운 편이다. 현관으로부터 7m쯤 되는 복도에 침실과 욕실이 나란히 붙어 있고, 복도 끝에서부터 민박집 주인의 서재 겸 사무공간이 시작된다. 서재가 끝나는 지점에는 큰 유리문과 유리창으로 된 벽이 있으며, 그 뒤로 이어진 작은 정원에는 다양한 종류의 나무와 화초가 정성스레 심겨 있다. 위층은 집주인이 사용하는 공간이라 올라가 보지 못했지만, 이곳의 분위기로 보아 사적인 공간도 보기 좋게 꾸며놓았을 것 같았다.


 얼핏  사진 속에서 나보다 조금 어려 보이던 민박집 주인의 직업은 사진작가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침실 방과 복도에는 각종 유화와 사진이 빼곡히 걸려 있었다. 독특한 발상으로 그려진, 제법 수준이 높아 보이는 작품들이었다.



 집 구경을 마치고 나서도 한참 후에서야 잠에서 깨어난 희재는 나름대로 부지런히 외출 준비를 서둘렀으나, 생각보다 오래 걸려서 기다리기가 조금 지루했다.


“너는 외출할 때마다 힘들게 화장을 해야 하니 얼마나 불편하냐? 난 여자로 안 태어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시큰둥한 표정으로 얼굴을 두드리며) 아빠, 저를 비롯한 대다수의 여자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억지로 힘들게 화장을 하는 게 아니라 자기만족을 위한 자발적인 의지로 하는 거거든요? 게다가 요즘에는 남자들도 얼마나 화장을 많이 하는데. 아빠가 여자로 다시 태어나시든지, 남자로 계속 계시든지 아무도 아빠한테 화장하라고 강요 안 하니까 걱정을 하덜덜 마세요."


 아..! 나는 언제나 찰지게 응수하는 딸에게 번번이 당하면서도 실없는 말을 건네는 버릇을 아직도 못 고쳤다.


 희재의 화장이 끝나고 난 후, 어제저녁에 먹다 남은 피자와 음료수로 아침을 대충 때우고 나서 9시쯤 집을 나섰다. 가장 먼저 그라피티(Graffiti)가 그려진 마을에 간다고 했다. 그라피티는 일종의 낙서 미술로, 스트리트 아트(Street Art) 또는 어번 아트(Urban Art)라고도 불린다. 뉴욕에서는 1960년대부터 시작되었고, 1980년대에 보편화 되면서 거리를 물들였다. 분무 페인트가 시중에 나오면서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했는데, 요즘은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어 공공 기물을 훼손한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우버 택시를 타고 그라피티 마을로 향했다. 얼마쯤 가다가 차창 밖을 보니 3차선 도로에서 유치원생들이 특이한 모습으로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여자 선생님 둘이서 6m 정도 되어 보이는 끈을 앞뒤로 잡고 있고, 아이들 일고여덟 명이 왼손으로 그 끈을 꼭 잡고선 길을 건너고 있는 것이다. 그 광경이 생소해서 희재에게 '저거 봐라, 아이들이 깜찍하고 웃긴다'고 하니,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희재가 나한테 조용히 하라고 했다. 함께 타고 있던 2명의 승객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기 위해서 그런 것 같았으나, 아무 말도 못 하게 하는 딸이 조금은 야속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합승객들 인상도 별로 안 좋아 보이고, 위험한 동네로 가는 길에 괜한 해코지를 당할까 봐 그랬다고 한다. 늘 이렇게 마음 졸이고 살았을 딸을 생각하니 아까의 서운함이 눈 녹듯 사라졌다.


 30분쯤 달려서 목적지에 도착했다. 동네 어귀에 들어서자, 아스팔트 공사를 할 때 나는 콜타르 냄새(어쩌면 디젤 냄새 같기도 한)가 코끝을 살짝 맴돌았다. 순식간에 사라져 버려서 진짜 존재했던 냄새인지, 아니면 페인트가 뒤덮인 마을에 들어섰다는 심리적인 이유로 생긴 가상의 냄새인지 헷갈렸다.


 이곳은 뉴욕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은 외곽에 있는 ‘부시윅(Bushwick)’이라는 동네다. 예전에는 우범지대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전혀 누추하거나 위험해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의 건물이 낮아서 고층 빌딩이 빼곡한 맨해튼보다 더 넓고 파랗게 보이는 하늘이 포근하게 마을을 감쌌다. 거리는 조용했고 지나다니는 행인도 없었다. 가끔 공장에서 들려오는 기계 소리만이 적막을 깨뜨릴 뿐이었다.


 집과 상점, 공장 건물 등의 벽과 담장에는 커다란 그라피티가 한가득 그려져 있어서 마치 마을 전체가 거대한 미술 전시회장 같았다. 수백여 점의 그림 모두 훌륭했다. 인물화가 많았고, 표현 기법은 다양했다. 만화 캐릭터나 그래픽 패턴을 그린 것이 많았으며 가끔 극사실 기법으로 그린 것도 있었다. 공통점이 있다면 각기 다른 작가들만의 개성이 마음껏 드러나 있다는 것일 테다.


 이쪽저쪽 둘러보며 사진을 찍으면서 1시간 넘게 돌아다니다가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려는 찰나, 길 건너편에서 영화 촬영팀으로 보이는 무리가 나타났다. 극사실화로 그려진 자애로운 어머니 그림 아래에서 여배우가 열연을 펼치고 있었다. 아무렇게나 셔터를 눌러도 작품 사진이 나올만한 좋은 배경지가 많은 곳이라 촬영진이 몰려들 만하다고 생각했다.



 다음 행선지는 브루클린 다리였다. 우버 택시에 몸을 싣고 달리다가 브루클린 다리 바로 옆에 있는 푸른빛의 맨해튼 철교 아래에서 내렸다. 이 철교는 전철 운행을 목적으로 세워졌기 때문에 다리 위를 지나다니는 이 하나 없이 조용했다. 마침 점심때가 되어서 근처의 식당을 탐색하다가 어느 분홍색 네온 빛깔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젊은이들이 주로 오는 식당 같아 보였는데, 맛도 좋고 셀프서비스라 팁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입구 쪽에는 1.5평 정도를 할애하여 열대 우림같이 아름답게 꾸민 휴식 공간이 있었다. 식사를 마친 손님이 쉬어갈 수 있도록 배려한 식당 주인의 여유 있는 마음씨가 느껴졌다. 희재는 그 공간이 마음에 들었는지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브루클린 다리와 맨해튼 철교 사이에는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넓은 광장과 카페가 여럿 있었다. 광장에 서서 브루클린 다리를 받치고 있는 교각을 아래에서 올려다보니, 그 웅장하고 어마어마한 크기의 규모에 압도되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완공된 지가 130년 이상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시멘트에 금이 가 있거나 손상된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마치 500년 이상, 1,000년이 넘게 지나도 끄떡없을 것 같이 튼튼해 보였다. 14년이나 걸렸다는 공사 기간이 납득되는 순간이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15개 한강 다리의 대부분이 3년 안팎에 지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보면 미국인의 인내심에 감탄하게 된다. 1994년 10월, 힘없이 내려앉아 많은 이들에게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입힌 성수대교는 불과 2년 반 만에 지어졌다고 한다. 이 사고로 희재는 초등학교 2학년 담임 선생님을 잃었다. 한동안 말을 잃고 눈이 퉁퉁 부어서 다니던 모습이 떠오른다. 대한민국에 만연한 ‘빨리빨리’ 문화가 생명과 직결되는 건축물에는 적용되지 말아야 할 텐데..


 광장 옆에는 5~6층 정도 되어 보이는 붉은 벽돌 건물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이 건물 또한 지어진 지 최소 100년은 넘어 보였다. 리모델링해서 1층은 카페나 갤러리, 기념품 상점으로 사용하고 있었고 2층 이상은 사무실로 쓰는 것 같았다. 첼시 마켓도 그렇고, 여기도 그렇고, 뉴욕 사람들은 오래된 건물이라고 해서 마구 부숴버리지 않고 최대한 재활용해서 사용하는 점이 인상적이다. 도시 곳곳에 배어있는 미국의 실용주의 철학이 여기서도 돋보였다.


 주변을 둘러보며 천천히 걸어서 두 다리 사이의 너른 골목으로 갔다. 희재 말에 따르면 반드시 기념촬영을 해야 하는 주요 지점이라고 했다. 한국에서 온 청년을 만나 서로 사진도 찍어주고 몇 마디 대화를 나눈 뒤, 맨해튼 철교 좌측에 있는 브루클린 다리로 이동했다. 보통 교량이라 하면 가운데에 차가 다니고, 좌우 양옆으로 사람이 다니는 것이 일반적인데, 브루클린 다리는 1층은 차가 다니고 2층은 사람이나 자전거 등이 다니도록 설계한 점이 특이했다.



 우리는 브루클린에서 맨해튼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강바람이 꽤 세차게 부는 초겨울 날씨임에도 많은 인파가 몰려서, 다리를 건넌다기보단 사람에 휩쓸려 파도처럼 떠밀려가는 것 같았다. 걸어서 이동하는 행인도 많았지만 거센 바람을 헤치며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의외로 많았다. 다리 중간마다 브루클린 다리를 그린 그림을 파는 행상들이 있었다. 꽤 잘 그린 그림이 많아서 유심히 보니, 직접 그린 것이 아니라 종이에 인쇄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다리 중간쯤 이르러 우뚝 솟은 거대한 석재 탑을 배경으로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다. 내 평생 찍힐 사진 중 한 80%는 뉴욕에 와서 찍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희재는 쉬지 않고 셔터를 눌러댔다. 나중에는 양쪽 입꼬리에 쥐가 날 지경이었지만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희재의 비위(?)를 맞춰주었다.



 다리를 다 건너는 데는 약 1시간쯤 걸렸다. 희재는 지하철을 탈지, 우버 택시를 탈지 잠시 고민하더니 세찬 바람과 계속되는 촬영에 지친 내 모습을 보고 결심한 듯 우버 택시를 불렀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편안하게 자동차 뒷좌석에 앉아서 오늘의 두 번째 목적지인 휘트니 미술관으로 향했다.


 우리는 미술관 가까이에 있는 마을에서 일단 하차한 후 그곳에 있는 MARC JACOBS 서점에 들어갔다. 이 서점은 현대 미술에 관한 책이나 문구류, 액세서리를 파는 가게로, 그 종류가 다양했다. 희재가 지인들에게 선물할 열쇠고리, 지갑 등을 고르고 있을 때 쇼핑에 별 흥미가 없는 나는 서가에 진열된 책들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특히 사진집에 관심을 두고 보았는데, 극적으로 연출한 상황보다는 평범한 장면을 찍은 작품이 많아서 미국인의 일상과 정서를 엿볼 수 있었다.


 책방 맞은편에는 작은 제과점이 있었다. 쇼핑을 끝낸 희재는 그곳이 맛있는 컵케이크를 파는 유명한 빵집이라며 신이 나서 케이크를 사러 갔다. 30분을 기다린 끝에 빨간 컵케이크를 사서 가게 앞 벤치에 앉아 사이좋게 나눠 먹었다.


 남은 케이크를 싸 들고 휘트니 미술관까지 걸어갔다. 희재는 입장권을 구매하기 위해 매표소로 갔고 나는 미술관의 외관을 살펴봤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 고풍스럽게 지어졌다면 이곳은 기능을 살려 단순하고 현대적으로 지어졌다. 책을 보고 차도 마실 수 있는 1층의 문화 공간을 포함하여, 미술관은 총 8층으로 이루어졌다.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맨 위로 올라간 뒤 한 층씩 아래로 내려오면서 관람하기로 했다.


 층마다 구상, 추상, 설치, 조명, 키네틱 아트 등 다양한 현대 미술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작가들의 풍부한 상상력과 창의력이 부러웠다. 구상 작품 중, 일러스트 같은 느낌이 나면서도 자유분방하게 그려진 뉴욕 풍경화가 눈에 들어왔다. 고전적인 유럽풍의 분위기가 아닌 근대의 미국적인 색채를 짙게 띠는 그림이었다. 미국 성조기를 그린 유화도 있었다. 유독, 이 미술관에 미국인의 자부심이 느껴지는 작품과 미국식 화풍의 개성 있는 작품이 많이 보였다.


 마침 앤디 워홀 특별전을 하고 있었다. 그의 실크스크린 작품들은 300호 정도의 크기로 상상했던 것보다는 훨씬 컸지만,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나 MoMA에서 거장들의 유화 작품을 봤을 때보다는 감동이 덜했다. 실크스크린 기법이라는 것이 현대 인쇄술과 비슷한 점이 있어서 생동감이 느껴지지 않고, 작가의 숨결이 깃든 붓 자국이 없어서 일수도 있겠다. 오히려, 제임스 딘을 추모하여 그린 크로키나 인물 스케치 등, 그동안 대중 매체에 발표되지 않은 그의 육필(肉筆)과 손 그림이 새롭게 다가왔고 마음이 동했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MoMA, 구겐하임 미술관, 휘트니 미술관까지 돌아보니 예술가는 그림을 그려내는 실기 능력도 있어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작가만의 철학이 확실히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즉, 무엇을 그리느냐보다는 어떠한 관점(철학)을 그리는 것인지가 더 큰 화두인 것 같다. 앞으로 나는 또 어떠한 철학을 펼치면서 그림을 그려가야 할지 고민이 더 깊어졌다.


 어느새 문 닫는 시간이 가까워져서 시간에 쫓긴 우리는 최대한 많이 보기 위해 반쯤 뛰어다니다시피 하며 전시회장을 휘젓고 다니다가 거의 맨 마지막으로 나왔다. 미술관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아까 케이크 집에서 사 온 붉은색 컵케이크로 허기를 겨우 면하고, 유명한 햄버거 가게 중 하나라는 Five-guys로 갔다.


 Five-guys는 미국의 전형적인 식당으로, 한국의 김밥집 같은 분위기였다. 매장 안에는 어린 학생과 젊은이가 많았다. 맛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셀프서비스로 운영되고 있었는데, 손님들이 냅킨을 너무 많이 가져가서 낭비하는 모습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여행 초반에 갔던 야외 햄버거 가게에서도 사람들이 케첩과 냅킨, 포크 등을 한 움큼씩 움켜쥐고 가는 모습에 눈살이 찌푸려졌던 것이 떠올랐다. 미국은 자원과 공산품이 풍부해서인지 일회용품을 많이 소비하는 것 같았다. 환경을 위해서는 좋지 못한 일이므로, 후손을 위해서라도 적절한 규제가 필요해 보였다.


 식사를 마치고 난 후, 희재는 뉴욕에서의 마지막 밤이 못내 아쉬웠는지 칵테일을 한잔하고 들어가자고 했다. 피곤해서 쉬고 싶었지만, 딸의 설레는 얼굴을 보니 거부할 수 없어서 제안을 수락했다. 우리는 택시를 타고 큰 호텔 1층에 있는 어두침침한 Bar로 갔다. 사람들은 편안해 보이는 둥근 소파에 끼리끼리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우리도 예쁜 잔에 담긴 술을 한 잔씩 했다. 한쪽 구석에는 사진을 찍는 포토 부스가 있어서 같이 즉석 사진도 찍고, 여유롭게 쉬며 마지막 여흥을 즐겼다.


 그렇게 밤이 깊어가고 희재도 지쳤는지 드디어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우버 택시를 탔다. 퀸즈버러 다리를 건너 강기슭을 따라 멀리서 조망하는 맨해튼 섬의 야경은 그동안 보아온 것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었다. 우리는 택시 기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잠시 차에서 내린 후, 강물에 반짝이는 빌딩 숲을 배경으로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다. 오늘이 마지막 밤이라 그런지 희재는 아무리 사진을 찍어도 부족한 듯 쉽게 발걸음을 돌리지 못했다.


 느지막이 숙소에 도착한 우리는 큰 짐을 대충 정리해서 한쪽에 치워두고 잠자리에 들었다.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하루가 1시간처럼 흘러갔고, 벌써 내일이 집에 가는 날인데도 여행이 끝났다는 사실이 좀처럼 실감 나질 않았다. 아까는 피곤해서 갈지 말지 고민했던 칵테일 바에 들르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밤이 아니었더라면 희재와 언제 또 마주 앉아서 마티니를 마셔 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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