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치새가 사는 숲, 장진영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어떤 관심(사랑)을 받지 못하는 한 소녀는 뜻밖의 관심을 받게 되고, 그것이 얼마나 비뚤어진 것인지 미처 깨닫지 못한다. 그 관심이 사랑이라고 생각한 소녀의 처절한 생존의 현장을 느닷없이 목격한 나는,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치치새가 사는 숲, 장진영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43)
소전서림(素磚書林, ‘흰 벽돌로 둘러싸인 책의 숲’이라는 뜻을 가진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이달의 소설 선발대'에 참여하며 매달 선정된 신작 장편소설 10~20여 종 중 읽고 싶은 작품을 고른다. 짧은 감상평과 함께 주제나 구성, 문체, 해석의 다양성 등의 평가 기준에 점수를 매겨 미래에 고전이 될 것인지 그 척도를 가늠한다.
소설을 쓰는 일은 실로 위대하다. 주제 선정에서부터 다양한 인물 설정, 이야기 전개, 감정 묘사까지. 소설가는 어떻게 이 모든 일을 해낼 수 있을까. 이 글이 과연 창조만으로 가능한 걸까. 아니면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쓰게 되는 걸까. 나는 이 책의 탄생이 후자이지 않기를 바라며 책을 읽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이미 이보다 더한 일이 일어났음을 알고 있다.
한 아이가 태어나 살아가기(살아남기) 위해서는 타인의 절대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생명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입히고(의) 먹이고(식) 재워주어야(주)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가장 작은 사회의 단위인 가정에서, 그다음 단위인 학교에서 아이가 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사랑을, 안전한 울타리를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치치새가 사는 숲'의 주인공 치치림은 철저히 방치되어 있었다. 부모의 무관심, 학교 폭력의 일상화, 그루밍 성범죄. 그저 아이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적이다.
세상은 인과로 이루어져 있지 않아요.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 원인이 무엇인지 찾아가다 보면 결론은 희한하게 '자신'에게로 당도한다. 말도 안 되게.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다행히 아이는 살아 있다. 살아서 2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되었다. 여전히 그때의 일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그리고 가려움증 때문에 찾아간 병원에서 의사는 말한다. "세상은 인과로 이루어져 있지 않아요."
나는 저 문장을 오래 기억할 것 같다. 그리고 어떤 상황 속에 있는 누군가가 저 말을 기억하고 그의 삶을 구원하기를 바란다. 당신에게 어떤 원인도 존재하지 않아. 이건 너의 탓이 아니야. 그러니 스스로 구덩이에 밀어 넣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