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소서. 대한민국의 의료진들이여. 마시소서. 대한민국의 구세주들이여
액체빵(Liquid bread), 맥주에 이보다 더 어울리는 별명이 있을까? 민간 구전어처럼 보이 이 단어는 사실 기독교의 ‘사순절’(Lent)과 관련이 깊다. 사순절은 부활절 전 40일 동안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기억하는 기간이다. 수도사들은 사순절에 기도, 회개, 절재 그리고 금식을 하며 예수의 고귀한 희생을 기렸다.
금식기간에 수도사들은 하루에 한번 고체로 된 간단한 식사 외에 ‘흐르는 것’만 섭취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수도사들이라 할지라도 배고픔은 어쩔 수 없었나 보다. 몇몇 수도사들은 맥주가 액체라는 사실에 착안해 금식기간에 마셔도 되지 않을까라는 발칙한 생각을 했다. 그 시작은 17세기 독일 바이에른의 성 파올라(St. Paola) 수도원이었다.
성 파올라 수도원은 ‘파올라의 프란시스’(Francis of Paola, 1436~1507)의 계명을 따르는 수도사들이 1627년 바이에른 뮌헨에 세운 수도원이었다. 이 수도사들은 자신을 파올라의 수도사, 파울라너(Paulaner)라고 불렀다.
6세기 브리타니아(지금의 영국)에서 수도사들이 맥주를 만들기 시작한 이 후, 맥주는 수도원과 불가분의 관계였다. 평민들과 달리 수도사들은 글을 읽고 쓸 수 있었기 때문에 좋은 맥주를 만드는 방법을 전수할 수 있었다. 또한 생계에 매달리지 않았으며 ‘기도하고 일하라’는 계명 하에 하루 일정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수도원 맥주는 일반 맥주보다 품질이 우수했다. 맥주는 수도원의 재정에 큰 도움을 주는 수익원이기도 했으나 수도원 방문객들이나 빈민들을 위한 음료이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영주와 귀족에게는 알코올 도수가 가장 높고 품질이 좋은 맥주가, 일반 순례객들과 수도사 자신들을 위해서는 중간 품질의 맥주가, 그리고 하층민에게는 알코올 도수가 낮고 묽은 맥주가 제공되었다.
성 파올라 수도사들 또한 수도원에서 맥주를 만들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수도원에서 소비하는 이외의 맥주를 모두 가난한 이들을 위해 나눠주었다. 일례로 1634년 2월 24일, 뮌헨 정부에 한 불만이 접수되었다. 시민 양조자들(civilian brewers)이 파올라 수도사들이 나눠주는 맥주가 자신들에게 위협이 된다고 청원을 한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맥주보다 품질이 좋은 수도원 맥주를 부담이자 위협으로 느꼈다.
이 에피소드는 당시 파올라 수도원의 맥주의 품질이 얼마나 우수했는지 반증하는 흔적이기도 하다. 현재 뮌헨의 대표적인 브루어리인 파울라너(Paulaner)는 이런 이유로 1634년을 자신들의 기원으로 정하고 있다.
성 프란시스 파올라는 비건(vegan, 엄격한 채식주의자)이었다. 평생 육식을 금하고 소식을 했다고 전해진다. 뮌헨의 파울라너도 이 계율을 엄격하게 따랐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사순절에 맥주 음용에 대한 아이디어가 이곳에서 나왔다.
사실 사순절에 맥주를 마시는 것은 어떤 계율에도 어긋나지 않았다. 맥주는 고기로 만들어지지도 않고 고체도 아니었다. 또한 성경 어느 구절에도 술에 대한 금기는 찾을 수 없었다. 더구나 현실적으로 맥주를 마시면 물과 달리 한나절을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겼으니, 파올라 수도사들에게 ‘맥주는 흐르는 물과 같으니 사순절 기간 마셔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 것은 꼭 불경한 마음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금욕으로 몸과 정신을 깨끗하게 해야 하는 시기에 맥주로 몸과 마음이 흐트러지는 게 양심에 걸렸던 것 같다. 고민을 하던 파올라 수도사들은 결국 이에 대한 답을 로마 교황에게 직접 구하기로 했다. 이들은 사순절에 맥주 음용이 가능한지 여부를 위해 로마 교황에게 서신과 함께 맥주를 보냈다. 로마로 가는 맥주는 재료를 많이 넣어 알코올 도수가 높았고 오랜 기간 정성스럽게 양조해 품질이 매우 우수했다. 이렇게 좋은 맥주라면 교황께서 허락해주시지 않을까 하는 간절한 마음도 함께 보내지 않았을까?
당시 뮌헨에서 로마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안타깝게도 맥주는 교황에게 도착했을 때 이미 마시기 힘든 상태로 변해 있었다. 그러나 맛없는 맥주와 서신을 받아 든 교황은 의외의 결정을 한다. 사순절 금식기간 중 맥주 음용을 허락한 것이다. 교황은 금식의 고통을 이렇게 맛없는 맥주로 해소해보려는 수도사들을 안타까웠나 보다. 또한 맥주의 알코올 도수가 높다고 해도 와인보다 한참 낮았기에 심신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이렇게 우여곡절을 통해 공식적으로 맥주는 금식기간에 섭취할 수 있는 음료가 되었고, ‘흐르는 빵’ 즉 ‘액체빵’이라는 별칭을 갖게 되었다.
이후 파올라 수도원의 맥주는 라틴어로 ‘장크트 바터 비어’(Sankt Vater bier), 영어로 ‘Holy Father Beer’, 즉, ‘성스러운 하나님의 맥주‘로 불렸다. 그리고 점차 독일어로 구세주를 뜻하는 살바토르(Salvator)라는 이름으로 굳어지게 된다.
1751년 살바토르는 공식적인 수도원의 대표 맥주가 되었다. 이들은 그 해의 첫 살바토르를 오픈할 때 바이에른 영주를 초대하여 증정했는데, 당시 수도사들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하며 살바토르 한 잔을 영주에게 바쳤다.
‘Salve, pater patriae! Bibes, princeps optimae!’
(건강하소서, 이 땅의 아버지여, 마시소서, 이 땅의 최고의 신사여)
현재 파울라너 살바토르의 라벨은 이러한 전통에서 유래한다. 살바토르를 마신 후 취한 영주는 수도사들에게 마음 속에 있는 이야기를 했다고 전해진다. 권력자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이라니. 시민 양조사들의 민원이 먹히지 않은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1780년 마침내 살바토르는 공식적으로 대외 판매 허가를 얻게 된다. 권력자의 마음을 하나님의 맥주로 움직일 수 있다니, 최고의 방법 아닐까?
살바토르는 7.9%의 알코올 도수를 가지며 몰트에서 나오는 기품있는 건포도와 검은 과실의 향 그리고 옅은 초콜렛과 토스트 힌트가 멋드러진 라거(lager) 맥주다. 묵직한 바디감을 가지고 있지만 쓴맛이 낮고, 드라이한 마우스필을 가지고 있어 마시기 편하다.
일정한 레시피 없이 만들어지던 살바토르가 지금의 모습을 갖춘 것은 1773년 바르나바스 수도사(Brother Barnabas)에 의해서 였다. 그는 재료와 양조기술의 혁신을 통해 살바토르의 맛과 품질의 표준을 만들었다.
이렇게 7~11% 알코올 도수에 낮은 쓴맛과 몰트에서 나오는 검은 과실, 건포도, 캬라멜, 초콜렛 향을 가지고 있는 라거를 도펠복(Doppelbock)이라 한다. 도펠(doppel)은 두배(double)이라는 의미이지만 실제로 알코올 도수가 두배라는 의미는 아니다. 6~7% 알코올 도수를 가진 복비어(bock beer)보다 높다는 의미이며 일종의 스타일 명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파울라너 살바토르(Paulaner Salvator)는 도펠복 스타일의 원조맥주라 할 수 있다.
18세기 말 전 유럽을 접수한 나폴레옹은 교회의 재산을 몰수하고 맥주 양조와 같은 수익활동을 금지한다. 한때 500개가 넘었던 수도원 맥주가 이때 거의 사라졌다. 파올라 수도원도 화마를 피해갈 수 없었다. 1799년 파올라 수도원과 양조장은 바이에른의 재산으로 귀속되었으며 ‘구세주 맥주’는 더 이상 양조되지 않았다.
살바토르가 다시 빛을 보게 된 것은 1806년 양조가 프란츠 크사베르 차허(Franz Xaver Zachel)에 의해서다. 그는 껍데기만 남은 파올라 양조장을 임대하여 살바토르의 레시피를 연구하고 실험한 끝에 1811년 마침내 복원에 성공한다. 그리고 1813년 양조장을 완전 인수하여 파울라너(Paulaner) 브루어리라고 이름을 붙였다.
살바토르는 파울라너의 대표 맥주로 큰 인기를 얻었다. 이 후 다른 양조장에서 살바토르를 모방하고 같은 이름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점점 살바토르는 브랜드가 아닌 맥주스타일을 대표하는 일반 명사처럼 변했다. 그러자 1896년 차허의 후임자인 쉬메더러가 살바토르를 파울라너의 상표로 등록시켰다. 희석되는 오리지널리티 대한 대응이자 원조 맥주에 대한 자부심의 발로였다.
현재 독일에서는 200여 종의 도펠복 스타일의 맥주가 있는데, 대부분 이름에 ‘-ator’와 같은 접미사가 붙는다. Ayinger Celebrator(아잉거 셀레브레이터), Spaten Optimator(슈파텐 옵티마토르), Augustiner Maximator(아우구스티너 막시마토르) 등 많은 도펠복이 살바토르에서 시작된 접미사를 이름에 갖고 있다. 살바토르(Salvator)라는 맥주에 대한 오마주로서 그 영향력을 짐작해볼 수 있다.
파올라 수도사들은 맥주를 만든 후, 자신들이 마실 만큼을 제외하고 모두 가난한 이들을 위해 나눠주었다. 1600년대는 30년 전쟁으로 독일 국토가 쑥대밭이 되고 인구의 삼분의 일이 사라진 고통의 시기였다. 가난한 이들은 식량 뿐만 아니라 오염된 식수로 하루하루가 지옥과 같은 고통을 겪고 있었다.
파올라 수도사들의 맥주는 이들에게 단순한 음료를 넘어 생명유지를 위한 유일한 음식이었을지 모른다. 단순한 기도가 아닌, 실천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이들의 모습과 2020년 대한민국 곳곳에서 방호복을 쓰고 있는 의료진들이 겹쳐 보이는 것은 우연일까?
어쩌면 사순절을 위해 만들어지는 맥주는 수도사들의 배고픔을 위한 것이 아닌, 굶고 있는 빈자들을 위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기를 쓰고 로마 교황의 허락을 받으려 한 이유 또한 가난한 자를 위해 맥주를 나누고자 하는 수도사들의 거룩한 마음 때문 아니었을까?
‘구세주 맥주’라는 멋진 이름을 가진 살바토르. 코로나 사선에서 국민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분들에게 바치고 싶다. 다음과 같은 말과 함께.
‘건강하소서. 대한민국의 의료진들이여. 마시소서. 대한민국의 구세주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