쳇지피트, 맥주의 미래를 예측하다.
누가 나에게 맥주의 미래를 물어본다면 대답은 뻔하다.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바로 다시 질문할 것이다. ‘그런데 그게 왜 궁금하신지요?’
오늘도 수많은 매체들과 사람들이 미래를 예측한다. 방금 일어난 일들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끊임없이 떠든다. 미래는 현재를 움직이는 힘이다. 우리는 경제, 정치, 외교, 전쟁 같은 무거운 이슈부터 연예인, 스포츠, 케이 팝, 영화 같은 문화까지 미래를 예측하며 세상을 이해한다.
수만 가지 미래 이슈 중 식음료는 사람들의 흥미가 떨어지는 분야다. 물론 그 산업에 종사하는 몇몇 사람들은 관심을 갖겠지만 IT나 인공지능(AI) 분야처럼 분주한 모습은 찾기 힘들다. 다른 이유는 없다. 식음료는 ‘먹는 것’에 대한 생물학적 본능이 환경과 문화라는 보이지 않는 벽 속에서 오랫동안 천천히 형성된 분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변화가 힘들고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술은 더 보수적이다. 철저히 취향과 규제의 영역 안에 존재한다. 통념에 벗어난 맥주는 잠시 유행일 수 있으나 일 년 내내 냉장고를 채우지는 못한다. 게다가 유통과 판매도 사회가 정한 장벽을 마음대로 넘기 어렵다. 이렇게 변화가 더디고 속도가 느린 맥주 산업의 미래에 관심을 가질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솔직히 털어놓는다. 쳇지피티(Chat GPT)에게 맥주의 미래를 물어본 까닭은 사실 인공지능의 능력이 궁금해서였다. 맥주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요즘 쳇 지피티에게 기대 이상의 도움을 받고 있다. 불과 1~2년 전만 해도 팩트와 자료를 찾기 위해 많은 시간을 들였다. 지금은 원서를 뒤지거나 검색엔진 속 출처가 불분명한 글들과 싸우는 대신 궁금한 사실을 질문하고 팩트만 체크하는 편이다.
쳇지피티를 이용하다 불현듯 맥주의 미래를 물어보고 싶었다. 딱히 물어볼 ‘인간’도 없었다. 아마 이런 주제를 궁금해할 사람도 나 밖에 없지 않을까. 본격적인 질문에 앞서 인공지능이지만 반갑다는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오해하지 말자. 질문은 반말로 하고 가끔 틀린 정보를 알려주면 따끔하게 혼내고 있으니.
질문은 단순했다. '맥주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1초도 안 돼 주르륵 써 내려간 답은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내용들로 가득했다. ‘다양성과 개인화’, ‘기술 기반 혁신’, ‘지속 가능성과 혁신’, ‘글로벌화와 현지화’, ‘건강 지향 맥주’ 그리고 ‘디지털화된 소비 경험’까지 쳇 지피티는 맥주의 미래를 크게 6개의 키워드로 정리했다.
이렇게까지 자세하다고? 눈을 크게 뜨고 이 녀석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들여다봤다. 꽤 의미 있고 인사이트를 전해주는 대목들이 보였다.
먼저 ‘다양성과 개인화‘, 쳇 지피티는 개인의 취향에 맞춘 맥주를 첫 주제로 언급했다. 데이터 분석을 통해 개별 고객의 취향에 맞는 맥주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이 소량 생산 플랫폼 또는 맞춤형 배치 시스템으로 가능하며, 자연스럽게 로컬 크래프트 양조장 또한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기술 기반 혁신‘은 AI 기반 자동 스마트 양조를 의미했다. 스마트 폰을 통한 원격 양조 기술이 등장하며 수율과 품질이 이전보다 안정화될 수 있다고 바라본 것이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부분은 3D 컴퓨터를 이용한 고객 맞춤 맥주용기였다. 맥주의 가치를 높이고 고객 충성심을 높일 수 있는 훌륭한 마케팅이었다. 당장 소형 양조장이나 브루펍에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똑똑한 녀석!
‘지속 가능성과 환경’ 대목은 많은 양조장들이 실천하려고 고민하는 부분이다. 보통 1리터의 맥주를 만들기 위해 6리터의 물이 필요하다. 또한 양조 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는 장기적으로 환경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미 몇몇 양조장들이 자원 재활용과 이산화탄소 배출 최소화를 시도하고 있다. 앞으로는 환경을 생각하는 맥주가 더 많은 고객의 선택을 받을지도 모른다.
제법이었다. 내용을 보고 있자니 쳇 지피티가 제안하는 맥주의 미래가 터무니없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이 녀석의 능력을 확인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물어봤다.
“인공지능(AI) 기술은 맥주 산업의 여러 측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나 같은 AI가 맥주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분야는 다음과 같습니다.”
돌아온 대답은 확신에 차 있었다. 곧 쳇지피티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다음과 같은 키워드를 뽑아냈다. ‘레시피 개발 및 최적화’, ‘품질 관리’, ‘수요 예측’, ‘개인화된 추천’, ‘자동화된 마케팅’, ‘지속 가능성 향상’
‘레시피 개발 및 최적화’는 방대한 자료를 검색해서 소비자 맞춤 레시피를 추천하는 것을 의미한다. 어쩌면 지금 당장이라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능이었다. AI에게 기존 맥주의 재료, 온도, 시간 등을 학습하게 한 뒤, 소비자에게 받은 결과물을 다시 반영하면 더 적절한 레시피를 받을 수 있다. 또한 소비자의 취향을 반영한 완전히 새로운 레시피도 가능할 것이다.
AI ‘품질 관리’ 기술은 맥주 양조장에 바로 적용할 수 있다. 지금도 loT(사물인터넷) 센서를 통해 스마트 폰에서 공정 관리를 확인하고 조정하는 양조장들이 있다. 실시간 데이터를 분석한 AI는 문제를 수정해 불량을 줄이고 품질의 일관성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또한 AI ‘자동화된 마케팅’을 바탕으로 소셜 미디어와 유튜브, 언론에서 자신의 브랜드를 좋아하는 고객의 평판과 피드백을 분석한 후 마케팅 전략에 사용할 수 있다.
맺음말을 하는 쳇지피티는 계속 자신을 이용하라고 무언의 압박을 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AI는 맥주의 맛, 품질, 유통, 마케팅 등 다양한 영역에서 효율성을 높이고 혁신을 가속화할 수 있습니다."
네가 그렇게 잘났단 말이지? 순간, 오기가 생겼다. 그렇다면 한국 문화와 맥주를 연결하는 질문에도 답을 줄 수 있을까? 그래서 물어봤다.
정동은 조선과 서양 문화가 만나 개화기가 촉발된 곳이다. 덕수궁을 중심으로 최초의 근대 교육 기관인 배제학원, 최초의 여성 교육 기관 이화학당, 아관파천의 흔적이 새겨진 구 러시아 공관, 을사늑약의 아픔이 남아있는 중명전, 김구 선생님이 암살된 경교장, 최초의 감리교 교회 정동 제일 교회 등이 남아있다. 그밖에 영국, 러시아, 캐나다 대사관뿐만 아니라 정동극장과 서울시립미술관 같은 예술 공간도 곳곳에 찾아볼 수 있다.
대한제국의 아픔과 개화기의 문화가 공존하는 정동은 크래프트 맥주와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쳇지피티의 답을 본 후, 난 이 녀석을 더 이상 얕잡아 보지 않기로 했다. 답도 답이지만 몇 초 안에 지역과 맥주를 매조 짓는 통찰력에 말을 잊고 말았다. 첫 대답부터 흥미로웠다.
“서울 정동과 크래프트 맥주를 연결하는 것은 독창적이고 흥미로운 접근입니다. 정동은 한국 근대사와 외교의 중심지였던 만큼, 그 역사적 배경과 문화적 유산을 활용해 크래프트 맥주에 이야기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근대사와 외교라는 역사와 문화적 유산을 크래프트 맥주에 활용한다는 발상은 이미 이해하고 있었다. 솔직히 어느 정도 답을 알고 던진 질문이었다. 놀라운 건, 이후 올려주는 세부적인 내용에 있었다.
쳇지피티가 보여준 첫 키워드는 ‘역사와 맥주의 조화’였다. 정동의 역사적 건물이나 사건을 주제로 맥주를 만들라는 것이었다. ‘대사관 포터’, ‘덕수궁 에일’처럼 지역을 맥주 이름에 부여하라는 구체적인 예시까지 알려줬다.
두 번째 키워드는 ‘정동 문화와의 융합’이었다. 정동 길은 산책하기 좋은 장소라며 정동 길 걷기와 테이스팅을 결합한 ‘정동 크래프트 투어’를 제안했다. 그리고 정동 극장과 협업을 통한 이벤트도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근대적 요소를 반영한 라벨 디자인과 인테리어도 좋을 것 같다는 제안도 했다. 정동의 전신주, 한옥과 서양식 건물이 어우러진 풍경, 근대적 서체와 색감을 이용한다면 정동의 문화적 특성을 맥주에 살릴 수 있다고 첨언했다.
외교라는 부분을 주목하라고도 조언했다. 정동이 서양과 처음 조우한 곳인 만큼 맥주도 최초의 문물이었을 것이라며 ‘정동은 맥주가 한국에 들어왔던 그 시절을 상상하게 하는 공간’이라는 서사를 만들라고 제안했다.
인간이 했다면 며칠 동안 회의와 고민을 한 뒤 내놓을만한 내용을 몇 초 만에 정리하다니. 더구나 서울 정동이라는 장소의 특징을 정확히 파악하고 크래프트 맥주와 연결시키는 지점은 놀라웠다. 크래프트 맥주와 정동의 핵심가치를 이해해야만 가능한 답들이었다. 대미를 장식한 건 마지막 문단이었다.
"이런 방식을 통해 정동이라는 장소적 특수성을 맥주에 녹여내면, 단순한 음료가 아닌 서울의 역사를 느낄 수 있는 독특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동과 맥주의 만남”**은 충분히 매력적인 브랜드 스토리가 될 거예요."
질문이 쉬웠던 것일까? 답을 하기 애매하거나 오류를 낼 수 있는 질문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 끝에 마지막 질문을 채팅창에 넣었다.
전문가에게 이 질문을 던진다면 구체적인 답을 내놓기 꺼려할 것이다.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 비즈니스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쳇 지피티도 크래프트 맥주에서 규모의 경제는 양날의 검이라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견지했다. 답의 길이도 꽤 길었다.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차례로 설명하며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내놓았다. 무엇보다 결론이 인상적이었다. 쳇 지피티는 전문가 이상의 고견을 보여주며 끝을 맺었다.
"규모의 경제는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에 기회와 도전을 동시에 제공합니다....핵심은 효율성과 독창성의 균형을 찾는 데 있습니다. 크래프트 맥주 소비자들은 품질과 이야기를 중요시하므로, **“대량생산의 크래프트”**라는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제품, 품질, 철학에서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성공의 열쇠입니다. 결국, 성장하되 본질을 잃지 않는 것이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의 미래를 밝게 만들 것입니다."
세상에나. 크래프트 맥주 산업의 고민과 핵심을 정확히 짚고 있는 게 아닌가. 크래프트 맥주는 대량 생산과 결코 나란히 할 수 없다. 꿈일 뿐이다. 그럼에도 효율성과 독창성의 균형, 성장하되 본질을 잃지 말라는 조언은 반드시 새겨들어야 한다.
물론 이 대답들이 어떤 책이나 논문에 있는 내용일 수도 있다. 당장 증명할 방법도 없다. 하지만 크래프트 맥주 업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쳇 지피티가 말하는 내용이 정답이고 숙제임을 알 수 있다. 인공지능의 말이어서 자존심이 상한다면 적어도 무시하지는 말자.
사피앤스가 네안데르탈인과 경쟁에서 이긴 원천은 현재를 연결하고 미래를 바라보는 힘에 있었다. 인공지능이 제시한 미래가 정답이 아닐 수도 있고 꼭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개인의 한정된 관점을 넓히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굳이 마다할 필요가 있을까? 맥주를 하는 다른 사람을 대신해 인사를 전한다. 쳇지피티, 졸라 땡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