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55일 째에 소주 1.5잔을 마셔버렸다.
한 방울의 술도 입에 대지 않은 지 26일 정도 됐다.
이번이 처음으로 술을 끊은 건 아니다. 거의 딱 1년 전, 어떤 별 이유 없이 술을 100일 정도 끊고 싶었다. 2달 정도 한 입도 대지 않다가, 별생각 없이 나간 술자리에서 생맥주에 입을 대면서 다시 마시기 시작했다.
술을 처음 마신 건 중학교 3학년 때였던 거 같다. 당시 친구 중에 조금 노는(?) 친구들이 있었고, 그 친구들은 그 나이에 벌써 동네 주변 단골 호프집이 몇개씩 있었다. 호프 사장님들은 친구들이 중학생인걸 당연히 알았겠지. 하지만 거의 매일 드나드는 단골 손님들이였기에 에라 모르겠다 하고 장사를 한 것 같다. 그때 친구들은 어린 마음에 소주를 순위 경쟁하듯 마셔댔다. 기억에 당시 3병 마시던 친구도 있었다. 나는 두잔 정도 하고 나면 맛이 없어서 더 마시질 못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술을 왜 마시나 했다.
본격적(?)으로 술을 마시기 시작한건 미국에서였다. 2006년, 고등학교 1학년 1학기만 마치고 교환학생으로 미국 오하이오주로 갔다. 어느 날 어머니가 ‘미국에 교환학생으로 가볼 생각 있어?’라고 물어보셨고, 방과 후에 축구를 마음 껏 할 수 있다는 것을 듣고 별다른 고민 없이 바로 ‘오 갈게요.’라고 했다.
처음에 말이 잘 안 통했는데, 축구로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다. 그러고 보니 공항에서 바로 축구 경기장으로 갔었다. 프리시즌(본 시즌을 준비하는 기간)이어서, 주변 학교랑 시합이 있었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하면서 첫 경기를 했었고, 서양 애들의 피지컬에 혀를 내둘렀다. 그날 밤 그냥 침대에서 세상이 모르게 잠에 들었고, 그렇게 미국 생활을 시작했었다.
얘기가 축구로 가는데, 축구를 하는 친구들이 파티도 좋아했다. 학교 시작한 지 얼마 안돼서, 주말마다 축구팀 친구들과 파티들을 다니면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어울리려면, 술을 마셔야 할 것 같았다. 맛이 없어도 그냥 마셨다. 취하면 말이 잘 통하지 않아도 친구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적게는 8캔, 많게는 12캔 까지 마시면서 거의 맛탱이가 갈 때까지 마셨다.
술 마신 다음 날에는 풀밭 마당에서 축구 연습 하면서 땀을 내면서 숙취를 했다. 그때는 확실히 내 간이 살아 있었다. 재밌는 건, 이러한 1년 교환학생 생활 끝에 ‘술 똥배'가 나와 있었다는 것. 그리고 신검 받았을 때, 간이 안 좋다고 2급을 받았다는 것...
어쨋든, 지금으로 돌아와서.
26일 전에 술을 마시고 나서 다음 날은 거의 종일 침대에만 있었다 (해독 시간이 너무 길어졌다 ㅜ).
그러다가 밤에야 조금 몸에서 술 독기가 빠져나가서 가볍게 조깅을 하고 좀 사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때 갑자기 뭔가 깨달은 건 아니다. 그냥 갑자기 이해가 되었다. 나와 술의 관계가 예전 같질 않다는 걸.
더 이상 술에 의존해서 별로 통하지 않은 사람들과 친한 척 하거나 친한 기분을 느끼고 싶지도 않다.
그리고,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과 술을 마시면서 회포를 푸는 것 만큼 가슴이 시원해지는 것도 없지만, 그런 감정과 기분, 분위기를 위해 내가 지불하는 것들의 크기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는 느낌을 받는다. ‘남자라면' 이라는 생각으로 술을 계속 마셔 온 것도 있는 걸 인정하게 됐다. 체질적으로 술을 잘 해독하지 못하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렇게 술을 마셔보지 않기로 했다. 이건 힘이 들 때 술을 찾는 나를 인정한 것도 술을 끊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일이 힘들거나 마음안에 무엇인가 바로 풀어지지 않는 감정의 고리가 생기면, 시간을 주면 되는데. 그걸 참지 못하고, 친구에게 전화해서 맥주나 한잔하자고 바로 해버리는 나를 알아차렸다.
술을 마시는 순간에는 그러한 생활의 힘듦을 망각하게 되나, 해결 되는 것도 없고 다음날에 더 힘만 든다. 아인슈타인이 ‘똑같은 행위를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예상하는 것'이 ‘정신 이상' 증상이라고 했는데, 술과의 관계에서 나는 항상 정신 이상자였다. 그걸 계속 의식적으로 무시해 왔는데, 이제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도, 죽을 때까지 술을 마시지 않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러기에 나는 이미 아름다운 술의 맛을 너무 많이 경험했다. Russian River Brewing에서 신이 만들었다고 해도 믿을 만한 맥주(Consecration!!)들을 마시며 생전 처음으로 알코올을 만들어 내는 효모들과 미생물들을 진심으로 찬양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음식점에서 굿즈를 샀다. Russian River Brewing이 박힌 모자를 샀다. 그만큼 맛있었다). 나파벨리에서 2008년산 Cab을 마시면서 왜 와인에 미친 사람들이 많은지 깨달았었다. 아아, 정말 2008년산 나파벨리 Cabernet Sauvignon은 신이 준 선물이다 (너무 맛있어서 $60짜리를 한국에 사왔었다. 그런데 아뿔싸, 온도 변화에 민감한 와인은 나파벨리에서의 그 맛이 아니였다. 생맥 같이, 와인에도 생와인이 있었다). 소주는 기분에 따라 사이다보다 달고, 복분자는 언제나 사랑한다 (어렸을 때 부터 단거를 좋아했고 술도 단거를 좋아한다). 신시어 사장님의 비앤비는 언제든 마시고 싶다. 아. 이 글을 내가 왜 쓴 거지? 분명 술을 끊었다는 것을 이야기하면서, 왜 술을 끊었는지 다짐을 이야기하려 했는데. 지금, 새벽 1시에 술을 찾고 있다.
아무튼, 그래도, 26일 동안 술을 끊어보니, 내가 하고자 하는 것에 집중하기가 더 쉬워졌다. 달리기를 위한 훈련과 생활에 좀 더 집중하고 있다. 전문적인 훈련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술로 몸의 상태를 망가트리고, 내 소화기관, 내장기관들을 고생시키는 것을 덜 하고 있다.
일단, 내년 3월 말까지는 안 마셔볼 참이다. 16살 때부터, 2달 이상 술을 안먹고 산 적이 없는 건 큰 충격이다. 대충 7개월 정도 안 마시면, 뭔가 재밌는 변화를 관찰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
위의 글은 9월 9일에 썼었어요. 안타깝게도, 55일 (10월 8일) 이 되던 날, 오랫만에 본 학교 선배와 소주 1.5잔을 마셔버렸습니다. '오랫만에 봤으니까', 하면서 마셔버린거죠.
그렇게 저의 ‘술 끊기'는 멈췄고, 그 이후에는 가볍게 조금씩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확실히 전보다는 술을 훨씬 덜 먹고 있고, 만취한 적이 한번도 없네요.
다음 글에는 술을 덜 먹으면서 느끼게 된 몸과 마음, 감정에서의 변화에 대해 적어 볼게요.
여기서 술 드시는 분들께 질문: 가장 오랫동안 술을 끊어본 기간이 어느 정도인가요? 그리고 왜 끊기에 성공하지 못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