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2 맺음글
사회에서 보는 나는 분명 누군가에게 인생을 논할 만한 사람은 아니다.
한 가지 장점이 있다면 꿈을 잃지 않고 산다는 것이다.
지금은 누구나 당연하게 하는 이야기지만 실제 마음속에 이상을 담고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본다.
현실은 거칠고 잔인하며 냉정하기 때문에 직시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어른들의 충고를 많이 들었다.
꿈은 곧 사라질 환상에 불과하고 인생을 좀먹는 헛된 망상일 뿐이라고들 했다.
돈이 없고 현실이 괴로운데 꿈이 밥먹여 주지는 않지 않냐는 뻔하디 뻔한 이야기.
사실 사회에 망령처럼 맴도는 자조적인 이야기는 거울과 같다.
사람은 은연중에 자신의 모습을 타인에게 반영한다.
타인의 행동으로 자신을 떠올리고 스스로에게 차마 하지 못한 비난을 타인에게 돌린다.
내가 그러하다고 인정하는 것보다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타인을 향해 쉽게 내뱉은 말이 돌림노래처럼 돌고 돌아 자신의 뒤로 돌아오듯이 좌절과 패배가 메아리로 돌아온다.
시간이 흘러 꿈이 생기고 후회가 들어도 이미 시작한 메아리는 쉽게 멈추기 힘들다.
사람은 이성적인 것만으로 돌아가는 생물이 아니라 기운과 에너지가 중요하다.
해내지 못할 일도 때론 기세로 몰아서 순식간에 해치우고는 한다.
어떨 땐 충분히 해내고도 남을 일을 타인의 말을 듣고 기가 죽어 간단한 일도 실패하곤 한다.
사회에 도는 메아리는 사람들을 자꾸 주저앉히고 제 분수를 알라는 말을 곡해하여 보이지 않는 밧줄로 꽁꽁 묶어 버린다.
어른들의 패배감이 아이들에게 영향을 주고 아이들은 꿈이라는 개념을 익히기도 전에 패배감을 맛본다.
사회는 그렇게 천천히 수면 아래로 침전하고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천천히, 아주 느리게 익사하는 것이다.
꿈은 손으로 만질 수 없고 잡을 수 없으며 존재를 확인하기 어렵다.
가볍고 어디에나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가라앉는 현실을 끌어올릴 만한 힘이 있다.
비현실적이고 비논리적이고 허무맹랑하더라도 꿈에는 꿈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미 초등학교 6년을 다니면서 사회에 폐가 되고 타인을 괴롭히며 살면 안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누군가의 꿈이 범죄이거나 사회에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면 꼭 반대할 이유가 하등 없다.
그 꿈으로 누군가가 계속 살아갈 이유가 있다면 그에게 그 꿈은 생명이나 다름없다.
20년 전 유튜브 같은 시스템에서 좋아하는 걸 하며 돈을 벌거라는 생각을 한 사람이 있을까.
하물며 우주여행을 계획한 억만장자가 실제 우주 시대를 연다면 혁신적인 시대가 시작될 뿐 다를 것은 없다.
사회에는 현실적이고 필요한 개념도 있어야 하지만 불필요하고 비생산적인 무언가도 필요하다.
사람은 늘 필요한 일만 하고 사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