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1 도시
야경을 좋아한다.
외출을 자주 하는 편은 아니지만 부모님 집에 다녀오는 날이면 늦게 움직일 때가 있는데 서울의 야경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한강 변으로 주르륵 늘어선 가로등과 건물의 불빛이 일렁이는 물결 위에 비치고 어두컴컴한 한강 위에 서울이 그려지면 비로소 내가 이 도시에 산다는 느낌을 받는다.
한국 제1의 도시로, 한국의 산업화와 동시에 급성장을 이뤘고 경제적, 문화적으로 대한민국의 타 어떤 도시를 비교해 봐도 견줄 수 없는 규모이다.
많은 사람이 살고 있고 다양한 바람과 이유와 삶이 뒤섞여 거대한 흐름을 만든다.
옛날부터 서울에 정착한 사람들도 있지만 직장 문제나 꿈 때문에 상경해서 새로 터전을 잡는 중인 사람들도 있다.
밤에 보는 도시의 빛은 땅 위에 흩뿌린 별의 부스러기처럼 각자의 꿈과 희망으로 반짝이는 것이다.
서울에 상경하고 가장 낯설었던 느낌은 동네와 이웃 사람들이었다.
청주에 살 땐 동네에 아는 사람이 있거나 아는 사람을 마주치는 것이 당연했다.
직접 아는 사람은 아닐지라도 오래 산 동네라면, 특히 학교를 나온 동네라면, 당연히 동창이나 지인쯤은 길거리에 돌아다니다 마주치기 마련이다.
특히 시골 살 때는 더 심했는데 아파트 한 동이 전체 다 아는 사람이고 시내에 나가봤자 아빠 친구, 엄마 친구분들이어서 다 합치면 동네에 거의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집에 문을 열어놓거나 현관문 열쇠가 없어 동동거릴 때 이웃집에 가서 저녁까지 얻어먹고 천연덕스럽게 놀다가 집에 돌아오는 일도 다분했다.
당연히 안전을 염려하는 일이나 낯선 사람을 경계해야 하는 일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새로 이사 온 동네에는 내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근방에서 학교를 나온 것도 아니고 어릴 때부터 알던 이웃이 사는 것도 아니다.
말 그대로 어디 아프거나 사건 사고가 생겨도 소식을 전하고 기댈 곳이 전혀 없는 것이다.
대부분 근거지를 두고 오래 살다 보면 일가친척이나 피붙이가 아니더라도 친분 있는 이들이 생겨 무리를 이룬다.
그러면 일을 소개받거나 걱정과 염려를 얻거나 일정 영향력 안에 들어가 알게 모르게 자동 보호 기능의 혜택을 받는다.
낯선 도시에 자리 잡고 처음 느낀 생경한 느낌의 사실은 이제 나는 앞으로 내 영향력이 닿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가깝지는 않아도 같은 도시 내에 동생이 있지만 기혼자와 미혼자의 차이는 어쩔 수가 없다.
직장에서 영역이 넓어졌으면 좋으련만 같이 일하시는 분들도 모두 현재 거주 지역 분들이 아니었고 정작 거주 지역에 사시는 분들과는 같이 일하지 않았다.
팀장님이 종교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교회로 사람을 알아가는 것도 괜찮다고 말씀해 주셨지만, 나는 강경 무교자이고 이미 수차례 시도로 종교인과 성향이 달라 섞이기 어렵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떠나고 나서야 나를 지탱하고 있던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그 정체를 알게 된 것이다.
한 사람이 나고 자라면서 적당히 대충 사는 것 같아 보여도 시간이 켜켜이 쌓이며 네트워크를 형성한다는 아주 간단하고 사소한 사실조차 모르고 살았던 것이다.
살던 거주지를 떠나 새로운 곳에 정착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 정성과 시간을 쏟아부어 삶의 탑을 세우는지 막상 피부로 직접 겪으니, 한겨울의 매서운 추위처럼 날카롭다.
아마 어릴 때 타지로 학교를 진학한 사람들은 이미 어린 시절에 겪으며 나름대로 네트워크를 형성했기 때문에 내 나이쯤에는 겪지 않을 만한 일일 것이다.
어릴 때 시간 낭비하지 말고 열심히 놀기라도 하라고 젊은 친구들을 보면 늘 같은 이야기를 꼭 해주고 싶다.
삶은 어떤 식으로든 흔적을 남기고 켜켜이 쌓아서 한 사람의 시간을 연속성에 놓는다.
나는 인생의 소중한 시간 동안 3번 이상의 단절을 겪었고 그때마다 잃었던 게 무엇이었는지 몰랐다.
이제야 그 매서움을 깨달으니 어리석고 또 어리석어서 부모님이 나만 보면 왜 걱정이 한짐인지 절실히 알게 됐다.
이 거대한 도시 서울에서, 나는 앞으로 내 꿈을 지팡이 삼아 삶을 켜켜이 쌓아갈 것이다.
무덤 뚜껑 닫을 때 아주 맛깔난 팬케이크 같은 인생을 살았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