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음표를 잃고 표류하는 아이들을 위한 자습서
배고픈
한 무리의 생각들이 있다.
한 무리의 생각들은
계산한다.
절벽에 매달린
한 아이와
나란히 매달린
그 아이의 아버지
둘 중
누구를 구할 것인가.
1과 1
1과 0
0과 0
0과 1
배고픈 생각들은
쉽게 방전되고
쉽게 뜨거워진다.
아이보다는 어른이
쓸모 있다.
어른을 구하고
아이를 죽이라
계산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아이를 죽이는 것은 참이다.
아이는 쓸 모 없다.
아이는 투표를 할 수도 없다.
생각들이 절벽 끝으로 다가와
아이를 밀어버리고
아버지를 끌어올리려 하자
아버지는
절벽에 매달린 손을 놓고
떨어지는 아이를 끌어안았다.
아이는 살았고
아버지는 죽었다.
계산은 맞았지만 틀렸고
더 이상은 맞지도 틀리지도 않았다.
0과 1은 으깨어졌다.
생각들은
생각을 멈추고
더 뜨거워지고 더 배고파졌다.
아이는 절벽을 기어올라와
허기진 이빨로 잘 구워진 생각들을
하나씩 물어뜯고 씹어 삼켰다.
별자리가 바뀌었고
바람소리가 느려졌다.
아이는 들짐승들을 불러 모아
노래를 가르쳤고
알파(A)가 되었다.
무리 중 갓 태어난 들개 한 마리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정성껏 핥아주었다.
아이는 그리워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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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유행한다.
유행이 다해가면 돈도 재미도 떨어진 실망들이 거리를 배회한다.
AI가 모든 것들의 미래일 수 없고
빛의 속도로 연결된 시대에도
우리는 여전히 외롭다.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심장이 뛰고
피가 돌고
배가 고프면 산 것일까?
태어난 아이가 '무엇(What)'을 배우고
조금 더 자라면 '어떻게(How)'를 배우고
부모를 떠날 만큼 클 땐 '왜(Why)'를 익혀야 한다.
'어떻게(HOW)'의 수준에서 멈춘 아이들은 AI에 열광한다.
속도가 빠를수록 좋아라 하며
잘못된 방향으로 향하는 머리를 돌려세우지 않는다.
AI가 뭘까? 하룻밤에 수십억을 벌어들이는 꿈이 뭘까?
그 꿈이 담긴 그릇이 뭘까. 나는 무엇(What-누구)일까?
물음표를 잃어버린 아이들이 표류하는 세상에서
생물학적 시간이 짧은 진짜 아이들은 질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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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속도가 빠른 건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래서 어디를 왜 빨리 가야 하는 지의 이유를
담고 있어야 합니다.
세상 그 어떤 것도 결국 뚫어낼 세상에서 가장 좁고 날카로운 나노칼이 개발되었다고 하면
그 칼을 쥘 자루도, 담을 칼집도 없어집니다. 그 칼은 무한대로 지구의 중력을 따라
지구를 베고, 뚫고, 죽이며 멈추지 않겠죠.
우리에겐 최고의 칼이 아니라
칼을 들 이유와 쓸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성공과 지식과 기술은 그래서
그래서... 행복할 수 있을까? 가장 행복한 것은 무엇이며 그것은 영원할까의
질문과 물음표 위에서
빛나고 박수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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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아날로그 라디오를 켜고
세작잎을 우려 차를 마십니다.
AI에게 말을 걸어봅니다.
"라디오를 켜고 차를 마시고 향이 가득하니
행복의 의미가 바람처럼 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