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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틈 Sep 12. 2024

다행스러운... 죽음

(사진-캡처 : 세계일보 2024년 9월 10일 자 기사, 양다훈 기자)


스무 살 

지하철 스크린 도어를 고치던 청년이 죽었다.

들어오는 열차와 문에 끼어 몸이 부서져 죽었다. 

작은 기쁨과 성실한 꿈도 죽었다. 

누군가를 만나 수줍게 시작할 사랑도 죽었다.

그 꿈을 미안해하며 응원하던 엄마의 웃음도 죽었다.

끝내 열리지 않고 뜨거워지지 못한 컵라면처럼

세상도 

죽었다.

다행이다. 내 차례가 아니어서, 내 가족이 아니어서 



스물네 살

발전소 석탄과 기계를 보던 청년이 죽었다.

몸이 갈려 죽고도 네 시간을 그대로 방치되었다. 

죽어라 노동하던 엄마는 

노동하다 죽어간 아들을

죽었다고 말할 수 없어서 함께 죽었다. 

죽은 엄마가 더는 죽지 말아야 할 아들들을 찾아다닌다.

더 이상 죽이지 말라고 소리치는 목소리가 

무시로

죽었다.

다행이다. 내 차례가 아니어서, 내 가족이 아니어서


스물몇 살

대기업 빵공장에서 샌드위치 소스를 배합하던 청년이 죽었다.

어떤 간식을 좋아했을까? 첫 월급으로 뭘 샀고, 엄마에겐 뭘 해드렸을까

물어볼 수 없게 처참하게 소스배합기에 말려들어가 죽었다.

사람들은 빵과 샌드위치를 씹으며 죽음도 함께 씹어 삼켰다.

같은 기계에서 

어떤 

50대 엄마가

똑같이 

죽었다.

다행이다. 내 차례가 아니어서, 내 가족이 아니어서


스물일곱 살

에어컨 설치일을 배워 일하던 청년이 죽었다.

쓰러지고도 뙤약볕에 한 시간을 누워있다가 

영원히 일어나지 못했다. 

가난해도 먹고살 수 있을 거라는 말은

거짓말이 되었다. 참말들이 농약 먹은 참새 때처럼 죽었다.

덥다고 재난 문자는 요란하게 울리는데 

차갑게 식은 청년의 입은

눈물도 한 방울도 없이 메말라

죽었다. 

다행이다. 내 차례가 아니어서, 내 가족이 아니어서


스물세 살

건설현장이라도 좋다며 땀 흘려 일하던 청년이 죽었다.

고장 난 크레인 전원을 끄러 올라가서는 감전사했다.

안전을 위한 최첨단 CCTV를 자랑하던 회사는

그 죽음을 40분 동안 훔쳐봤다. 사람을 본 게 아니라.

죽음을 봤다. 

그 자리에 올라가서 전원 버튼을 눌러보는 상상을 하던 

수많은 사람들도 같이 죽었다.

고압전류에 꽁꽁 묶여서 온몸의 세포를 태우며

40분 동안 죽었다.

다행이다. 내 차례가 아니어서, 내 가족이 아니어서


홀로 아이들을 키우던 50대 배달원 아빠도

야근이 위험하다고 해도 강요에 못 이겨 수십 미터  조선소 현장에 올라간 하청업체 아빠도

아이 학원비 벌어보려고 주말에 총알배송 업체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아빠도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아이들은 남겨졌고

슬픔은 금방 말라버린다. 

다행이다. 내 차례가 아니어서, 내 가족이 아니어서


학원비가 없어 빵공장으로, 건설현장으로 목숨 걸고 일하러 가면서 

공부 열심히 해라! 너는 저런 곳에서 일하면 안 된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가서 

저런 일 시키는 사람이 되라고 

엄마, 아빠는 

저런 일 하러 간다. 

다행이다. 그날 엄마는 아빠는 죽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행이다. 

언젠가는 당신 차례가 오고, 당신 가족이 눈물짓는 날도

공평하게 올지 모른다. 


수리가 제대로 안된 스크린 도어에서

한 밤중의 정전 때문에 어딘가에서

하필 무척 힘든 날 꺼진 에어컨 때문에

어설프게 지어진 아파트에서

총알처럼 받아보던 새벽배달 때문에

어떤 이유에서든 알 수 없는 이유에서든


다행이다. 

눈물조차 없는 당신에게도 

결국은 공평하게 찾아올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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