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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틈 Sep 24. 2024

빛과 소리의 3인칭

간접 소리와 직접 소리, 소통의 넛지(nudge) 이론

부담스러운 직접조명, 부드러운 간접조명


# 영화의 한 장면 1.

 긴장되고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앉아있는 피투성이 얼굴에 강한 조명이 눈부시게 비친다. 


# 영화의 한 장면 2.

  여유롭고 행복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얼굴에 따뜻한 조명이 은은하게 비친다. 


 장면 1은 취조실에서 고문받는 사람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고, 조명 밖의 사람은 그림자처럼 검게 보일 것이다. 장면 2는 따뜻한 거실에서 가족의 얼굴을 바라보는 사람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고, 조명 밖의 사람도 그 얼굴과 윤곽이 같은 밝기로 보일 것이다. 


 물론 무대 위의 조명이라면 주인공은 환하게 비춰주고, 객석이나 주변은 어둡게 비추기도 한다. 배우의 공포가 아니라 집중을 필요로 하기 때문. 하지만 요즘은 객석과 무대의 경계를 허물고 마치 '마당놀이'처럼 실험적으로 진행되는 무대도 많다. 그때 조명은 객석 관객의 얼굴까지 환하게 비춰준다. 


  자연의 햇빛도 그렇다. 환하게 내리는 직사광선과 은은한 빛의 노을도 그렇다. 강렬한 태양빛은 환하고 밝지만 오래 볼 수 없다. 눈으로 직접 바라보는 건 괴로움을 유발한다. 노을과 달빛은 맨눈으로 오래 봐도 아프지 않다. 빛은 소리와 비슷한 운명을 가졌다. 소리 역시 마찬가지. 


(사진-김틈 : 2023년 서울-제주 간 항공기에서 찍은 태양과 구름 모습)


 소리도 조명이다.


  소리도 직접소리와 간접소리가 있다. 상대의 눈동자 동공 안으로 날카롭게 질러 넣는 소리가 있는가 하면 멀리서 두런두런 거려도 마음엔 더 선명한 소리도 있다. 빛을 직접 바라보면 눈이 아프다. 말소리도 마찬가지. 상대를 향해 직선적으로 전하는 말은 옳고 필요한 말이어도 상처를 준다. 사춘기 아이에게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걸 이불을 열고 귀에 대고 따갑게 말하면 일찍 일어나야 하는 이유보다는 괴로움이라는 기분만 잔뜩 안고서 잠을 깬다. 


  하지만 간접소리는 다르다. 사춘기 청소년 기상미션의 사례로 보자면... 먼저 문을 절반 정도 열어둔다. 그날의 아침에 어울리는 너무 고루하거나 무겁지 않은 음악을 장르에 관계없이 틀어둔다. 밝고 경쾌한 소리로 먼저 일어난 가족들이 대화와 날씨, 아침식사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문 앞에 서서 열린 문틈으로 좋은 아침이니 좀 피곤해도 일찍 일어나서 미리 준비하면 여유롭게 쉴 수 있을 거라며 다독이고 독려한다. 물론 그래도 눈을 뜨지 않으면 간접의 비율과 직접의 비율을 조정해서 문을 활짝 열어두고 다시 문 앞에서 이야길 한다. 


  이렇게 간접적으로 일상과 음악과 분위기에 굴절 반사되어 들어간 잔소리는 훨씬 부드럽고 아이의 마음에도 즐거운 기억을 반복하게 해 줄지도 모른다. 최소한 아픈 통증은 유발하지 않았을 것. 사춘기 아이를 깨우는 일뿐 아니라 직장에서 학교에서 서로에게 건네는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상대에게 원하는 것, 혹은 내가 바라는 내 마음을 전달할 땐 더더욱이 환경과 조건과 맥락을 잘 이해하고 거기에 반사되고 굴절된 방식으로 내 마음이 전달된다면 훨씬 쉽게 부드럽게 잘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중요한 계약, 지식의 전달인 수업, 명확하게 잘잘못을 따져야 하는 일들은 예외이지만 그런 경우에도 필요에 따라선 직접 소리가 아니라 간접 소리 형태로도 상대의 '감정'을 먼저 건드리지 않으면서 충분한 '이해'를 구해낼 수 있다. 


(사진-김틈 : 2023년 가을, 한강 행주대교 노을, 은은한 간접의 빛은 아름다움과 변화를 품고 있다.)



직접 내게 건네어지지 않아도 들리고 가슴에 적셔지는 소리들


  무서워 잠 못 들던 어린 날의 밤, 한 방에 누운 네 식구의 숨소리 사이로 아버지와 어머니의 두런 거리는 대화가 자장가처럼 들린다. 어린 불면증의 불안한 밤에 부모님의 따뜻한 목소리는 은은하게 켜진 수면등 보다도 포근하고 마음 속은 밝아진다. 물론 잠도 잘 온다.


   그 어린 날의 불면의 밤으로부터 한 참이 지난 지금, 알수 없는 사람의 일들이  무서워 잠 못 드는 늙은 날의 밤도 그렇다. 그런 불안한 불면의 밤, 방문을 열어두면 한낮의 발랄함이 코골이로 재방송되는 초등학생 꼬맹이 녀석들의 숨소리 잠소리가 들리면 위로의 자장가로 들린다.그 작고 따뜻하고 고소하고 귀여운 소리는 복잡한 고민을 어둠으로 치워두고 잠이 잘 오게 한다. 


소리의 1인칭, 2인칭, 3인칭


  소리에도 인칭이 있다. 학교 수업 시간, 주간 회의 탁자, 주문을 요구하거나 요구받는 자리, 내 주장을 순도 높게 집어삼키길 바라는 논쟁들의 상황에서 혹은 자신의 힘든 일을 끝없이 들어주기만 해 달라며 내게 쏟아내는 하소연에서 그 직접 듣기의 날카롭고 긴장된 소리들의 각도에서는 나는 1인칭 이거나 2인칭일 수밖에 없어서 힘들다. 


  그 소리가 빛이라면 너무나도 눈동자를 피곤하게 해 눈물이 빚어진다. 그래서 소통하는 소리의 인칭이 1, 2인칭일 땐 너무 길어지면 안 된다. 조명으로 치면 주인공에게 쏘아지는 핀 조명(spot light)만 계속되면 조명아래의 배우도 관객도 눈에 피로를 느낀다. 길게 오래 서로를 들려주고 함께 하려면 3인칭을 찾아내야 한다. 그 3인칭의 소리가 간접 소리이고, 노을도 조명도 마찬가지인것 처럼. 



소변기에 그려진 파리 이미지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넛지 이론(nudge)도 따지고 보면 간접, 혹은 3인칭의 시점, 청점이 느껴지는 이론처럼 다가온다. 이 넛지(nudge)는 원래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 ‘주의를 환기시키다’라는 뜻. 미국의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세일러(Richard H. Thaler)의 이론이다. 흔한 사례로 알려진 건 남자 화장실 소변기 이야기. 소변기 앞에 청결을 절대 유지하세요!라는 말이나 소변을 보는 중에 주변에 흘리지 마시오!라고 직접 지시어를 쓰기보다는 소변기 한가운데 지점에 파리 그림을 그려놓으면 효과적으로 위생이 지켜진다. 


  넛지는 부드럽게 행동을 유도하는 이론으로 소개되고 있지만. 교육이나 토론 업무에서는 수행을 하는 당사자의 '자율성', '자기 주도성'을 강하게 이끌어내는 방식으로도 이해된다. 필자도 자주 적용하는 방식인데 누군가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누군가(리더포함)와 함께 정한 목표에서 수행을 하는 당사자의 목표를 은근히 제시하고 다시 그 수행 당사자의 제시를 긍정해 줌으로써 자신이 주도한 일로서 책임감 있게 완수하게 만드는 것. 물론 일종의 '설계'가 필요하지만 충분히 간접적으로 직접적인 것 이상의 효과를 만들어낸다. 


(사진-김틈 : 일산 정발산 성당 성모당 앞의 촛불들, 돌아가신 부모님과 살아계신 부모님, 자녀들을 위한 초 하나씩)


  3인칭의 소리, 간접의 소리는 명령이나 대립이 아닌 '우리'라는 '맥락'을 함께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소통법이다. 그중 가장 대표적이고 아름다운 3인칭의 소리, 3인칭의 간접 소통은 기도 아닐까? 신에게 건네는 대화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죽음과 삶을 함께 긍정하는 종교의 거룩함을 바탕으로 사랑하는 이에게 건네는 대화. 


   가끔 팔순 노모가 카톡으로 보내오는 기도들을 볼 때마다. 신께(그분은 예수그리스도에게 기도하신다.) 보내는 그 이야기가 신의 귀와 가슴과 입술을 통해 내 가슴에 간접적으로 전해지는 걸 느낀다. 어쩌면 어머니의 간절하고 소중한 마음에 함께 반사된, 맥락화된 신의 성스럽고 위대한 입김도 내게 전해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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