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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틈 Sep 19. 2024

과자 속 노래하는 벌레

손이 가요 손이 가~

(사진-김틈 : chat GPT이미지, '귀벌레를 이미지화 해줘'.. 근데 왠 서양남자인가...?)

심리 과학자들이 찾아낸 마음속 귀벌레

 

  왜 노래는 이렇게 오래 살까? 소리의 생명력은 끈질기다. 문자와 미디어가 발전되지 않은 곳의 유희나 관습은 외우고 전하기 쉬운 노래가 핵심이다. '구전'이라고 일컫는 이런 방식의 노래는 우리 아리랑처럼 생각보다 긴 '서사'를 전달하기도 한다. 일부러 보고 외워도 기도문 하나 외우기가 힘든데 노래는 저절로 들어가서 저절로 재생되는 신비로움을 가진 듯하다. 왜일까? 인간의 두뇌가 눈으로 읽는 문자, Text보다는 귀로 듣고 감정적으로 기억하는 소리, Sound가 더 익숙하고 편하다고 느끼기 때문 아닐까? 엄마의 양수 속에서 웅크리던 아이 시절부터 소리는 소통의 통로였으니까. 


 일상 속에서도 이런 소리의, 노래의 생명력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 있다. 바로 출근길 우연히 듣게 된 노래로 된 소리들이 하루 종일 귓가를 맴도는 점심을 먹다가도, 업무에 집중하다가도, 퇴근 준비를 하다가도 계속 반복되는 심지어는 가사를 잘 몰라도 모르는 채로 반복되는 그 노래들! 신기한 건 실제로 들리지 않는데(노래가 재생되지 않는데!) 계속 들리는 듯한 느낌을 준다는 것.


  한 번씩은 경험한 이런 현상을 '귀벌레 효과, 귀벌레 증후군(earworm syndrom)'이라고 부른다. 독일과 미국의 대학에서 연구를 통해 쉽고 단순하고 경쾌한 반복적 노래, 사운드가 더 이런 현상을 유발한다고 밝혀지기도 했다. 아침 출근길에 우연히 본 간판이나 글자, 사람의 얼굴은 이른바 '눈벌레 효과'를 일으키지 않는데 소리는 왜 이런 현상을 만들어낼까?


머리에 저장된 것, 마음에 저장된 것


  지식과 지혜를 구분할 때, 머리인가 가슴인가를 묻는 경우가 많다. 故 김수환 추기경의 명언 중에는 '머리에서 가슴까지 여행하는데 70년이 걸렸다.'라는 내용이 있다. 아는 것과 느끼는 것의 차이이기도 하다. 야식을 하지 말고 절제된 생활을 하면서 이웃을 돕는데 궁색함이 없는 것. 모두가 알고 있지만 절실하게 느끼지 못하니 실천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단순하게 구조를 만들어서 이해해 보면 결국 사람의 감각과 실천을 움직이는 것은 마음(가슴)이지 머리(지식)가 아니라는 뜻. 그래서일까? 노래와 소리로 된 의미들은 단순한 지식으로 들어가기보다는 더 쉽게 마음의 영역으로 접근한다. 


  예를 들면, 월요일 아침 침대로 다가와서 때로는 애절하게, 때로는 간절하게 일어나라고 하는 엄마의 목소리를 흰 종이에 글자로 써서 본다면 그냥 당위적인 '아는 것'에 그친다. 하지만 그 소리를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어머니의 목소리로 듣는다면 전해진 언어보다 더 큰 맥락과 의미가 전달된다. '느끼는 것'으로 확장된다는 것. 결국 머리가 아니라 마음, 가슴에 닿고 저장되는 것이 '소리'의 특징일 것 같다. 


마음의 공간은 변화무쌍한 텅 빈 방


  다만 아직 인간 누구도 마음의 저장공간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상상을 더해보자면 그곳은 크기가 수시로 바뀌는 빈 방이 하나 있지 않을까? 그 방의 재질과 성격도 수시로 바뀐다. 그걸 '마음의 공간'이라고 가정해 보면 내가 그 마음의 빈 방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그리고 그 마음의 빈 방이 어떤 상태이냐에 따라 옳은 이야기도 미워질 때가 있고, 싫은 이야기도 공감될 때가 있다. 혹은 지루하고 텅 빈 방이 무언가 감성과 감정의 배고픔을 느낄 때 유독 매끄럽고 단단한 빈 방에 습도도 적당해서 어떤 소리든 통통 튕기며 그 마음의 공간이 있음을 개구쟁이처럼 알려내는 것. 그게 '귀벌레 신드롬' 아닐까?


  TV광고 CM송 중에 새우로 만든 과자의 CM송은 국민 대부분이 기억한다. 요즘은 광고가 뜸해졌지만 '손이 가요 손이 가~'로 시작되는 노래의 후렴구를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는 건 귀벌레 효과를 광고 마케팅으로 효과적으로 사용한 결과다. Gen-Z 같은 젊은 세대에겐 아마도... '여행 갈 땐 여기~'라고 하면 당연하게 '어때'같은 말이 튀어나올 듯하다. 이런 이유로 많은 마케팅, 광고에서는 소리를 중요하게 여기고 특히 음악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전의 글 '가구 음악'에서도 소개했듯이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틀어주는 음악도 그런 효과를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 하지만 상품 광고도, 정치 광고도 무수한 마케팅의 소리에 적응하고 방어력을 갖춘 인간들은 두꺼운 이어폰으로 중무장한 채 그 소리를 피한다. 내가 원하는 소리를 내 마음의 방에 채워 넣겠다는 전의가 불타오르는 '소리욕구'. 그런데 의외로 좋아하는 노래보다는 뜻하지 않은 플레이 리스트를 헤매다 잠깐 들었던 노래나 SNS에 깔린 '밈'의 노래에 귀를 뺏기고, 마음의 방을 뺏긴다. 하루 종일 '삐끼 삐끼 댄스(야구 치어리더의 춤으로 유명해져서 밈이 확산된 춤과 음악)'의 음악이 귀를 맴돌지도 모른다. 


본능적으로 몸은 마음이 움직인다.


  故 송해 선생님의 상징과도 같은 프로그램 '전국 노래자랑'은 노래뿐 아니라 대회가 열리는 장소 주변의 다양한 볼거리로도 화제가 됐다. 특히 무대와 객석 사이에서 늘 춤을 추시는 분들은 따로 춤을 배우거나, 전문적으로 활동하시는 분들이 아닌데도 상당한 수준의 '그루브(Groove : 음악의 흥, 리듬 혹은 그것에 맡겨 몸을 흔드는 공감상황)'를 보여준다. 경연대회의 무대 위에서 누군가 노래를 부르고 흥이 차오르면 아마도 MBTI성향상 E 쪽에 가까울 것으로 추정되는 몇몇 사람들은 무대는 아니지만 무대와 비슷한 객석 앞으로 나가서 몸을 음악에 맡긴다. 해야 한다는 당위도, 잘해야 한다는 부담도 없다. 그저 몸을 맡긴 것. 소리는 이렇게 우리의 본능을 통한 몸을 움직이는데 큰 역할을 한다. 많은 심리학 실험에서도 그렇고 과학적 증명을 떠나 2002년의 월드컵이나, 최근 유행하는 워터밤쇼 같은 장소에서 대중들이 하나의 음악의 흐름에 동조되어 집단이 하나의 경험을 동시에 겪는 듯한 만족감을 봐도 알 수 있다. 


  소리가 마음을 움직이기 때문에, 귀 벌레는 하루 종일 내 마음을 움직이는데도 영향을 준다. 가벼운 노래가 귀벌레로 자주 채택된다는 미국, 독일의 연구 결과가 있지만 필자는 때론 우울한 노래나 클래식의 한 구절이 귀벌레 증후군을 일으키기도 한다. 유재하의 노래가 '일부러 그랬는지~ 잃어버렸는지~'하고 맴돌거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의 클라이맥스 부분이 계속 머릿속 건반을 쿵쾅대기도 한다. 그 리듬과 음률에 따라 하루의 마음과 리듬이 달라진다. 그럴 때마다 내 마음의 방이, 그 마음의 공간이 오늘은 이런 소리를 채우고 싶었구나 다른 소리를 치우고 싶었구나 하고 이해하려 한다. 


마음을 채우는 소리, 마음을 치우는 소리 


  일부러 귀벌레 효과를 만들긴 어렵지만 시도와 노력은 할 수 있다. 친구들과 기분 좋게 어울리다가 마지막에 노래연습장을 가서 한두 시간 신나게 노래를 부르다가 나오면 집에 오는 길에 한 두곡의 한 두 소절이 귓가에 입가에 맴돈다. 


  하루 종일 격무에 시달리거나, 집안의 걱정, 건강 문제, 마음의 알 수 없는 악천후에 고전하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은 일부러 좋은 음악을 찾아듣는 다. 맘에 들 때까지 이런저런 음악을 찾아 헤매다 보면 한곡 귀에 걸리는 음악이 있다. 그리고 차분히 그 음악이 들어오도록 마음을 가라앉히면 불안하고 힘든 것들로 채워진 마음이 어느새 새 음악의 감성으로 치워진 것을 느끼기도 한다. 


  늘 듣던 사랑하는 가족의 잔소리도 때론 그렇게 되살리면 된다. 직접 귀로 듣지 않더라도 내가 기억하는 마음속 소리로 <제발 좋은 거 사 먹어라. 너무 무리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되 할 만큼만 하렴. 무엇보다 인간성을 가진 사람이 되렴.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 필요한 사람이 되렴. 사랑하는 거 알지? 늘 사랑한다 고맙고...> 이런 사랑이 가득했던 말들을 그리고 그 목소리를 떠올려 귀에 놓아주자. 꿈틀꿈틀 귀로 들어간 그 말들은 어느새 나비가 되어 마음의 방을 환하게 날아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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