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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틈 Sep 27. 2024

말의 맛, 당의정.

소리 나는 언어는 맛이 있다


씹고 뜯고 빨고


  문자를 모르는 아기가 귀로만 소리를 충분히 듣고 연습해서 익힌 말들, 맑고 건강한 침 가득한 입으로 물고 씹고 삼켜서 익힌 말은 고유한 맛들이 있다.


  당장 혀에 닿는 당분과 조미료의 맛이 아니다. 어머니 돌아가신 뒤 어느 시골 식당에서 똑같은 맛의 열무김치 한 잎 먹고는 눈물이 핑 도는 그런 맛이다.

 

  말의 맛은 그런 오랜 경험의 맛이고, 그 식감은 소리의 맛이다. 지금 이 글을 읽으면서도 “후!” 하는 소리와 “하!”하는 소리를 내어보면 소리가 닿는 입 안의 위치가 다르다. 음성학이나 언어학을 전공하지 않아도 소리 내어 말을 익히고 쓰는 사람은 다 아는 말. 그런데 맛이라니. 짠맛 단맛이 있다는 건가? 있다. 소리와 높낮이 선택된 단어가 사용된 삶의 긴 맥락에 따라 마음의 미각이 느끼는 맛이 다르다.


  매일 씹고 뜯고 빨고 엄마의 모유부터 어린 날의 밥상, 마지막으로 먹은 어머니의 반찬까지...  일상을 입안에 넣으니 일생이 입안에 맴돈다. 그 일상의 말들은 소리의 맛이 다르다. 자녀의 이름을 집집마다 다르게 부를 때 마음 속에 새겨지는 소리의 맛, 본 이름을 놔두고 '대장님', '공주님', '개똥이', '똥강아지' 이렇게 부를 때 마다 통통튀어 입안에서 되새겨지는 말의 맛은 깊은 그리움을 남긴다. 


  특히 아이를 향해 '똥강아지'라고 부를 때의 깡총거리는 달달한 간식 맛의 말의 느낌은 오래도록 삶의 쓴 맛 마다 아이를 달래줄 당의정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매운맛 말에는 단맛이 필수


 불닭볶음의 인스턴트 면이 세계적 인기를 끌고 있다. AI시대의 청소년들의 도전의식을 고취했다고나 할까? 스코빌 지수 같은 낯선 용어들이 초등학생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하지만 미각 중에서 매운맛은 사실 맛이 아닌 고통이라고 알려져 있다. 미각이 아니라 통각이라는 뜻. 하지만 우리는 그 통증의 맛을 혀와 마음이 즐기는 미각으로 끌어왔다. 말도 마찬가지! 맵지만 좋은 중독성의 말이 있다. 죽지 않고 상처받지 않을 정도에서의 아픈 말은 내 몸과 마음의 근육에 건강한 긴장을 준다.


“자! 너 이 정도는 할 수 있어! 이거 못하면 쪽팔리는

거다? 찌질이 되는 거야! 아 네가 좀 지질하긴 하지... 크크 자 그래도 한 걸음만 더 내디뎌! 다 왔어! “


  도무지 다 왔다는 말만 팔만대장경처럼 들으며 오른 산행길... 더는 못 간다며 하산 길에 주워가라고 퍼질만하면 등장하는 마법의 주문. “야! 진짜 다 왔어!” 어쩌면 겨우 돌 하나를 밟고 올라섰다고 다리에 힘을 줬는데

그게 결국 돌 하나가 아니라 큰 산을 밟고 오른 것이 되는 이치와 같다.


  인생이라는 산길도 오르막과 정상이 있고 내리막과 계곡이 있다. 대단한 일생이 어디 있을까? 그저 대단한 일상은 있겠다. 기어이 기특하게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에, 회사에, 버거운 자리에 걸음을 디뎠다. 이놈의 수험생 언제 끝나나... 이놈의 회사 언제까지 다니나... 할 때마다 문득 “어! 다 왔어!”라고 말을 들으면 근육이 긴장되면서 다시 멈춘 발을 딛게 된다. ‘어떤 정상인지 그래 하루 아니 한 걸음만 더 딛자.’


  사실 돌 하나를 겨우 밟고 올라섰고... 사실 산 하나를 거뜬히 밟고 올라선 것.


  말의 매운맛은 어쩌면 인생의 맛과 비슷하고 어린 시절 쓴데 왜 먹는지 모르겠던 지금은 삶보다 덜 써서 달기도 한 소주의 맛과 비슷한 것 같다. 그런 말들이 맵고 쓰고 눈물 나는 맛이다.


(사진-김틈: 2024년 9월 설악 와선대 근처 산을 닮은 돌 하나)

어린이맛 말, 어른 맛 말...


  그래서 그 맵고 쓴 말의 맛도 나이와 상황을 가려 써야 한다.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겐 손수건처럼 작지만 눈물을 닦을 정도의 말이 필요하다. 구구절절 내 경험을 길게 담은 긴 말과 반복되는 응원의 말은 눈물을 샤워 타올로 닦겠다는 느낌일 것 같다. 맛을 모르는 양으로 승부한 군대의 음식 같다.

 

  세대에서도 마찬가지. 어린이에겐 그 입맛에 맞는

말들로 오가야 한다. 아이들이 먹는 약들 대부분이 좀 억지스럽지만 달다. 단 맛의 익숙함이 쓴 맛의 낯선 고통을 감싸주는 것. 그렇다고 약효가 없진 않다. 혼낼 때도 사실을 전달할 때도 “당의정(약을 감싼 달달한 사탕)”이 필요하다.


  쓴 약

“네가 먹은 간식 봉지 쓰레기를 이렇게 버리면 어떻게 하니!!!? 집이 쓰레기통 됐네 너 때문에!”


 당의정

 ”쓰레기를 휴지통까지 가지 않고 버리는 초능력 연마 중이구나... 아직 내공이 부족하니 니 손으로 버리렴... 아빠 표정이 괴물이 되는 초능력을 보고 싶지 않다면...!”


  말의 단맛은 경계할 필요도 있지만. 꼭 삼켜야 거칠고 아픈 말은 단맛의 도움이 필요하다. “반드시 그렇게 할 것!”과 ”꼭 그렇게 되도록 부탁드립니다.”의 무게가 같고, 차이가 없다고 이해할 수 있다면 작금의 살인적인(?) 말들의 조미료가 입과 귀를 어지럽히는 시대에. 좀 천연의 부담 없는 달달한 조청 같은 엿장수 아저씨의 호박엿 같은 단맛이 느껴지지 않을까? 꼭 요즘 유행하는 개그코드 중에 하나인 '충청도식 화법'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저렇게 부드러운 표현에 따라오는 말의 높낮이와 자음 모음의 식감이 마음의 입맛을 돋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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