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도 방귀를 뀐다, 콧방귀는 저항의 방귀?
뿡뿡이 한 시대를 '뀌다.' 2000.3.3~2022.8.25
스물두 살의 나이로 은퇴(?)한 뿡뿡이는 많은 아이들이 좋아했다. 뿡뿡이 활동시기 육아를 경험한 모든 부모는 "뿡뿡이가 좋아요~ 왜~?" 하는 노래를 들으면 절로 후렴구가 입안에 맴돈다. "그냥~그냥~그냥~"
물론 뿡뿡이도 뽀로로도 아이들의 추억 속에선 영원히 장난꾸러기로 늙지 않지만 출생연도로 계산하면 이제 군대도 다녀왔을 법한 청년.
뿡뿡이의 은퇴로 아쉬워하던 아이들을 달래듯 그 뒤로 일본 동화 원작의 애니메이션'엉덩이 탐정'이 아이들의 귀와 웃음을 사로잡았다. 필살기인 '잠시 실례합니다' 방귀 한 방이면 사건은 역시 해결된다. 만능 방귀! 이렇게 방귀 소리는 '웃음소리'의 트리거(방아쇠)로 늘 한 세트를 이루고 있다. 왜일까? 냄새가 아니라 소리여서 그런 것!
나만 빼고 다 웃길 유통기한
방귀, 엉덩이, 뿡뿡이... 가 인기 있는 이유는 뭘까? 아이들이 방귀 냄새에 열광하는 건 절대(!!) 아니다. 아이들은 방귀의 소리에 열광한다.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갑자기 '뿡'하고 혹은 '뽕'하고 방귀 소리가 들린다고 상상해 보자. 뀐 사람을 제외하곤 모두가 웃지 않을 수 없는 자동 웃음 폭탄. 아이들은 그 자연(?)스럽고 즉각적인 웃음을 가장 사랑한다.
다만 그 소리의 유통기한은 냄새가 코에 도달하기 전까지만. 방귀는 소리는 웃음이지만 냄새는 고통이기 때문이다. 최근 해외에서는 지하철 차내에서 뀐 방귀 때문에 구급대가 출동하고 많은 사람이 실려간(?) 무서운 사례도 보도됐다.
방귀 좀 뀐다?
사람들이 함께 의견을 내 만든 ‘오픈사전’에선 이 표현을 어떤 분야나 방면에서 잘하거나 잘 나가는(?)이라고 설명한다. 왜 일을, 특정 분야를 잘하는 걸 방귀에 비유한 건진 모르겠지만 방귀 소리를 내도 냄새는
무시하고 소리만 걸러 모두를 웃게 만들 수 있는 “살포자”의 권력과 능력은 가늠된다. 물론 그런 권력에 맞서는 방귀도 있으니 이름하야 '콧방귀' "크헝!" 내지는 "흠!, 훵!" 등 전달력은 떨어지지만 감정의 방어는 확실하게 할 수 있는 '콧방귀'는 권력에 저항하는 방귀임은 틀림없다.
영화 “클래식(2003년)”에서 태수 역을 맡은 장신(?)의 이기우 배우는 영화 중에 뜬금없는 개인기를 선보이는데 그게 긴 신장과 내장(?)을 이용한 방귀 연주다. 다소 충격적이지만... 그 장면의 코드가 웃음인 건 부인할 수 없다.
비슷한 농담과 경험들은 방귀소리의 종류만큼이나 많다. 어릴 적 어머니의 방귀 소리는 “오토바이”의 배기음을 닮아 식구들의 웃음이 되었다. 킬링 포인트는 그렇게 웃는 도중에도 계속 오토바이 시동(?)은 걸려있다는 것. 반면 아버지의 방귀 소리는 호통소리와 너무나 닮아서 가끔 나를 혼낼 때 그게 “입인지 아닌지” 혼동스러울 때가 진짜(!) 있었다. 능력자. 그 유전적 관계 덕분에 필자도 대학시절 단과대 앞 숲으로 피신(?)해서 방귀소리를 처리했다. 어느 날 그 소리를 들은 누군지 모를 여학생 둘이서 깜짝 놀라 외친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어머! 여기 황소개구리가 사나 봐!’
방귀소리를 음악에 맞춰 처리(?)하려는 시도도 많다. 1990년대 초 오디오기기 광고 카피가 “인간인가 오디오인가”였는데. 베토벤의 교향곡 운명이 광고 BGM이었다. 만원 버스 안에서 속이 불편한 아기를 업은 젊은 엄마가 이 음악에 맞춰 절묘하게 방귀 소리를 처리하려다 반박자 어긋나자 옆 승객이 “인간인가 오디오인가 “라고 지적했다는 이야기도 기억난다. 민망한 엄마는 업은 아이에게(아이는 누구도 미워하지 않으니까...) ‘이 녀석 속이 안 좋나? 왜 갑자기 방귀를 뀌지?’ 하고 다 들리는 혼잣말을 하자 업힌 아이가 ‘엄마가 속이 안 좋으면 내가 방귀를 뀌어?‘하고 되물었다는 확인 불가(!)의 이야기도 유행처럼 웃음을 찾는 대화의 소재가 되었다.
방귀 뀐 놈(?)이 성낼지도...
결국 우린 냄새가 웃겨 방귀를 재밌어하지 않는다.
우린 소리가 웃겨 방귀를, 뿡뿡이를, 엉덩이탐정을
어린 날부터 지금까지 사랑해 온 것.
소리의 세계가 ‘후각의 세계’보다 감정에 깊이 연결돼 있다는 증거다. 그렇다고 지금 이 글을 쓰는 필자의 상황처럼 만원 전철 안에서 아침 출근의 고된 마음에 위로를 주겠다고 힘차게 소리 내어 방귀를 뀌는 건 권하지 않는다. 필자가 자주 쓰는 변명(?)처럼 ‘내 방귀는 소리가 커서 냄새는 안 나.’ 같은 말을 하고 싶어도, 지금은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서로의 소리가 막혀 적막한 시대니까... 슬프게도 당신이 노력한 방귀 소리조차 듣는 이는 없을지도 모른다. 방귀 뀐 놈이 성내며 '아 내 방귀 소리 좀 들어봐요!' 해야 할지도 모를 노릇.
방귀에 대한 의료적, 역사적 연구들은 ‘이그노벨상(재밌고 발랄한 과학적 연구에 주는 노벨상만큼 유명한 상)’ 수준으로 많다. 그 연구들의 결론은 하나다. 잘 편하게 뀌고 살아야 아프지 않고 행복하다는 것. 그 방귀소리를 듣고 나오는 웃음도 참지 말고 살아야 행복하다는 것.
방귀도 웃음도 참지 않는 사람과 사람들이길. 세상이길. (냄새는 이해해 주는 아량까지!)
결국 뀌어야 산다. 생존의 기운을 내뿜자!
방귀(fart, 屁)의 어원은 방기(放氣)라고 한다. 말 그대로 공기를 내보낸다는 것인데 그냥(?) 공기는 아니다. 몸이 살기 위해 만든 길고 긴 길, 창자와 호흡과 소화운동을 거친 후의 공기다. 어쩌면 나 살아있다! 이렇게 우렁차게 외치는 '기운'의 의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런 생존의 기운을 내뿜는 건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집에 키우는 유기견과 유기묘 두 반려동물도 방귀를 뀐다. 소리도 있고 냄새도 가끔은 상상을 초월할 때가 있다. 물론 전혀 미안한 내색은 않는다. 훌륭하고 당당한 녀석들.
알아보니 파충류도 방귀를 뀌고(냄새가 아주 고약하다고 한다.) 물고기도 방귀를 뀐다고 한다. 물은 소리가 소통의 기본 단위이기 때문에... 물고기의 방귀는 분명 소리로서의 가치가 더 도드라지는 '기의 방출'일 것이다. 여하튼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방귀를 뀐다. 심지어 방귀를 뀌지 않으면 어떤 형식으로든 호흡을 통해 배출되어야 할 성분이 나온다고 한다. 말 그대로 '콧방귀(?)'다. 생을 긍정하고 살아있음을 웅변하는 방귀소리... 오늘부터 나와 남의 방귀 소리에 귀를 기울일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