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만세와 나주평야, 외국어와 모국어의 소리들.
웬일이니 파리똥~?
오래전 개그프로그램에서 개그맨 박성호가 팝송을 한국어 발음으로 불러 인기를 끌었다. 분명 외국어인데 그 개그맨의 한국어가 되어버린 발음을 듣다 보면 어느새 영어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독특한 발음의 한국노래가 되어버린다. 그 코너의 타이틀 음악이 바로 이 글의 제목 'All by myself'다.
셀린 디옹(Celine Dion)의 목소리로 유명세를 탄 All By Myself의 원곡은 에릭 카멘(Eric Carmen)의 1975년 발표곡이다. 혼자서, 나 홀로의 뜻을 가진 이 All by myself는 '오빠 만세'로 번역(?)되었고. 그 뒤로는 이 노래가 흐를 때 누구나 입 속으로 '오빠 만세~'를 흥얼거리게 된다. 일종의 '각인효과'다. 결국 소리도 우리에게 익숙하고 친숙한 것으로 당겨서 이해하고 듣는 (화성에서 인간 얼굴을 한 바위 찾기처럼) 습성이 적용된다. 특히 영어가 어렵고 낯설 던 시절에는 귀에 들리는 소리로 유명 팝송 가사를 한글로 불렀던 친구들도 많았다.
그 구성진 노래에 비해 너무나도 한국적인 단어와 뜻 때문에 웃음폭탄이 터지곤 했는데 대표적인 곡이 청순과 관능미를 가진 배우 겸 가수 올리비아 뉴튼 존(Olivia Newton John)의 'Physical'이었다. 가장 유명한 대목의 가사는 "Let me hear your body talk' 렛 미 힐유어 바디 톡... 정도로 읽을 수 있으나... 당시 '영알못' 친구들의 귀엔 '냄비 위에 파리똥~'으로 완전 다른 뜻과 발음으로 노래되었다. 물론 '알고 보니 모기 똥~'이라는 정체불명의 후렴구와 함께.
내 차를 세차하라고? 거 참 예의 바르군
그런데 한국이 듣는 영어나 외국어 말고 외국인이 듣는 한국어도 마찬가지로 그들의 단어로 변환되어 들린다. 미군과 함께 근무하는 카투사(미군부대에 배속된 한국군) 지인의 경험담이 그랬다. 한국인들은 공적인 장소에서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할 때 '안녕하십니까!'라고 빠르고 절도 있게 소리 내어 인사한다. 조금 빠르게 발음하면 '안냐심까', 내지는 '안심까'정도로 축약되어 들릴 수도 있다. 이 소리가 미국인들의 귀엔 '안심니까 -> 워시 마이카 -> Wash my car'로 들렸다는 것. 친절하고 예의 바른 표정으로 미국인을 향해 '내 차 세차해!'라고 명령하는 한국인들의 예의 바름? 영어와 한국어 말고 인도나 남미의 언어로 가도 비슷한 현상이 생긴다. 최근 광고음악으로 널리 쓰인 '제발 나와라~ 이제 나와라요~ 나와라 이놈아~ 나와라이~'라는 간절하고 시원한 기다림을 잘 표현한 이 곡 'Na wan ray'도 남미 수리남의 언어로 불려진 노래라고 한다. 2000년대 초반 인터넷 열풍이 돌던 때는 인도의 노래 '뚫훍'도 마찬가지. 라이언 킹의 주제곡 'Circle of life'의 노래가 '나주평야'에서 녹음됐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없다. 그 노래의 시작 부분 아프리카어의 노래를 한국어로 들으면 '나~주 평야~ 발발이 치와와'로 들려서 해본 농담.
클릭어가 있다고?
언어의 기본은 소리다. 주어진 환경과 관습, 식생활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같은 언어 안에서도 초기 조선의 소리와 지금의 소리가 다르다. 쌍히읗 'ㅎㅎ'은 쌍시옷이나 다른 발음으로 대체됐지만 조금은 여리게 혹은 되게 발음한다고 한다. 보통 세모로 알고 있는 'ㅿ'은 여린 시옷 ㅈ과 ㅅ의 중간 정도의 발음이라고 한다. 이렇게 한 언어 안에서도 시대에 따라 언어의 소리는 변한다. 어떤 연구는 사회가 험하고 전쟁을 겪거나 고통을 겪으면 '된소리'가 강해진다는 주장도 했다. 소리가 변한다는 건 환경의 영향이 크다는 뜻 아닐까?
아프리카의 언어 중에서 코이산 언어는 소수의 언어에 속하지만 그 독특함으로 널리 알려졌다. 아프리카 남부지역에서 쓰이는 이 언어는 흡착음 혹은 Click Sound 즉 톡톡 거리는 소리가 특징인 언어다. 입으로 맥주병 따는 소리를 내는 듯한 혹은 혀를 쯧쯧 거리고 차는 듯한 소리가 말 사이사이 리드미컬하게 들어간다. 마치 말이 타악기와 언어구사를 동시에 하는 것 같다.
소리는 효율성을 추구한다. 구분할 것이 많은 언어에서는 쉽게 발음하고 빨리 전달되는 게 중요하다. 그 환경과 조건, 문화와 역사에서 가장 빠르게 가장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발전해 왔다. 하지만 비슷하고 헷갈려서 생기는 오해와 혼동은 때론 웃음을 넘어 아찔 할 수도 있다. 앞선 글에서 이야기한 적 있는 사투리의 지역적 특색과 자연을 대하는 경험에서의 발음도 한 국가와 언어 내에서 비슷한 소리차이의 현상을 보여주는 것 같다.
거 봐~! 일본인 이랬잖아~
경상도 지역의 사투리, 특히 경상북도는 일본어 발음과 유사하다는 오해도 있었다. 물론 지극히 주관적인 오해와 좁은 해석이다. 직접 경험한 이야기. 대전에서 엑스포가 열리고 전국 각지의 고등학생들이 의무적으로 엑스포를 참관해야 했던 시절 한 무리의 서울지역 남자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한 무리의 여자 고등학생 무리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그 남학생들은 여학생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싶었다. 일행 중 한 친구가 분명 일본에서 온 일본 여고생들인 것 같으니 펜팔이라도 되면 좋겠다. 사진 찍자고 해보자. 이런 제안을 했던 것. 일행 중 용감한 친구가 쭈뼛 거리며 어설픈 영어로 사진을 찍자고 제안을 하자 여학생 중에서 날카롭게 생긴 친구가 '임마들 뭐꼬, 마카 뭐라케쌌노?'(이 녀석들 뭐지? 도대체 뭐라고 말하는 거니?)라고 쏘아붙이자... 말을 걸었던 남학생이 머리를 긁적이며 일행으로 돌아오며 탄식했다. '거봐~ 일본인이랬잖아~ 일본말만 알아듣나 봐...' 졸지에 일본인으로 오해받은 그 여학생들은 지금 즈음 서울말을 근사하게 구사하는 엄마들이 되어있을까? 알 수 없는 일. 그런가 하면 강원도 사투리를 자주 쓰는 친구들의 말을 듣다 보면 가끔 '화난 거 아니지?'하고 묻게 된다. 제주방언은 '하영' 알려줄 방법이 없어서 생략.
내게 익숙한 소리, 내가 이해할만한 소리로 들리는 말들은 소리만으로도 충분히 오해할 수 있으므로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잘 모른다는 대전제를 항상 생각해야 한다고 알려준다. 모른다는 건 중립적이다. 좋다 나쁘다도 아니고 내 것 네 것도 아니다. 언어와 소리가 그렇다. 모른다 일 때 빈칸과 흰 종이로 다가서면 수줍게 획과 철자 발음 하나를 나누고 서로 가르쳐준다. 외국어와 모국어가 아니어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화가 나서 거칠게 말한 소리가 재채기에 겹쳐 나온 말일지 누가 알까? 성급히 내게 익숙한 소리로 듣기 전에... 모르는 소리로 순수하게 귀를 열어둘 필요도 있어 보인다. 멀쩡한 경상도 여학생들을 일본인으로 만들기도 하는 세상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