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데이수 Aug 23. 2018

일본 현대미술이 궁금한 당신에게

숲의 고요 속 재기발랄함이 살아숨쉬는 공간, 가루이자와 현대미술관

미술에 영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아래 사진을 보면 뭔가 '어디서 봤네' 싶은 기분이 들 것 같다. 정신 사나운 도트무늬에 시그니처인 호박 조각으로 유명한 일본 작가 쿠사마 야요이가 2012년에 루이비통과 콜라보한 당시 화보 사진이다.



한 뼘짜리 패턴만 보면 대번에 어디선가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작가가 또 있다. 자칭 '오타쿠 예술가'라며 일본 애니메이션을 연상시키는 작품을 내 놓는 무라카미 다카시가 그 주인공이다. 아래 사진은 2016년 무라카미 다카시가 화장품 브랜드 슈에무라와 함께 작업한 홀리데이 에디션이다.



위 두 사람은 워낙 브랜드와의 콜라보레이션이 잦은 예라서 조금 더 쉽게 접할 수 있는 것 같은데, 다른 사례도 있다. 오는 10월 초까지 우에노에 있는 도쿄도미술관에서 후지타 쓰구하루 기념 전시회가 있다. 그는 20세기 초반 프랑스 파리를 주무대로 활동했던 작가인데, '변방'의 유학생에서 출발해 파리 예술계의 총아가 된 상징적인 인물이다.



위 그림은 화가 스스로 그림 그리는 장면을 그림으로 그려 낸 작품이다. 화면 왼쪽의 벼루와 화가 손에 들린 세필이 눈에 띈다. 콧대 높은 프랑스 예술계에서 '변방 출신 화가'로 시작할 수밖에 없었지만, 오히려 일본인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영리하게 활용해서 단숨에 중심에 진입했다고 한다.


그리고 또, 내가 또 너무 신기해하는 작가, 슈사쿠 아라카와도 있다. 나오시마의 어느 미술관에서 캄캄한 실내 나뭇바닥에 LED로 별 의미 없는 숫자를 나열해 놓은 작품을 보고 특이하다는 생각을 했다. 숫자와 기하학, 철학적인 질문을 버무린 현학적인 회화작품을 남긴 건 물론 건축가이기도 해서 아내인 마들렌 진과 함께 도쿄 인근 미타카시에 '운명에 맞서는 집(Reversible Destiny Lofts)'라는 제목의 희한한 건물을 남겨놓기도 했다.


http://www.rdloftsmitaka.com/english/





현대미술이라고 하면 괜히 어렵고, 졸리고, 이해하기 어려운 장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내 생각은 좀 다르다. 나는 고전미술이나 중세미술이 더 어렵다. 그 시대 사람들이 어떤 사회경제적 배경에서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갔는지 전혀 감을 못 잡겠어서다. 반면 현대미술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네들의 이야기니까, 조금 더 나의 처지를 대입해서 공감하며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가루이자와 현대미술관의 전경. 가파른 경사를 올라 마참내 맞닥뜨린 장면이라 감동이 있었다.


오늘 소개하려는 가루이자와 현대미술관은, '일본의 현대미술'이라는 명확한 카테고리를 가지고 관련 작품 200여점을 모아둔 곳이다. 여러 작가 작품을 한데 모아놓기는 했지만 한 작가당 최소 4~5개 이상의 작품은 모아놓고 있고, 각 작가의 특징 등에 대해 일본어/영어로 설명을 잘 해 놓고 있어서 다 보고 나오면 일본 현대미술에 가까워지는 기분이 드는 공간이다.


1층 전시실의 풍경. 층고가 넓고 탁 트인 공간이 이 미술관의 분위기를 대변하는 것 같다. 사진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왼쪽은 통유리로, 창문 가득 햇살 머금은 숲이 보인다.


이 곳에 가는 방법은 차 아니면 택시 인 것 같다. 가루이자와 역에서 그렇게 안 멀다고는 하는데, 워낙 가파른 경사길인데다 인적도 드문 편이라 도보로 갈 수 있으려나 싶다.


1층 전시실 한켠의 풍경. 통유리 너머로 자연을 감상하라고 벤치를 놔 두었다.


정말이지 산 속 깊숙이, 숲 속 한가운데 미술관이 위치해 있다. 직선과 곡선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형태의 미술관 건물도 주변 경관과 잘 어울리고, 위 사진의 1층 전시실 왼쪽은 아예 통유리로 창을 만들어 놓아서 미술관 밖 숲을 감상할 수 있께 해 두었다. 미술작품 한 번 자연의 숲 한 번, 돌아가면서 시선을 왔다갔다 하다보면 도쿄 도심의 미술관에서와는 전혀 다른 기쁨을 느낄 수 있다.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풍경. 온통 흰 색으로 칠해진 계단 공간에서 긴 창으로 햇빛이 들어온다.


햇빛이 잘 드는 미술관이 좋다고 생각하면서도, 미술작품을 오래도록 감상하려면 가급적 햇빛에 노출되지 않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 자주 혼란스럽다. 이 곳 가루이자와 현대미술관은 햇빛은 물론 주변의 푸른 숲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어 콘텐츠(미술작품)도 좋지만 공간 자체의 매력이 엄청난 곳이다. 뭐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림이 햇빛에 손상되지 않도록 조치를 잘 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이런 힘 있는 공간에 위에 소개한 쿠사마 야요이, 무라카미 다카시, 후지타 쓰구하루, 슈사쿠 아라카와 등 일본을 대표하는 현대미술이 섹션별로 전시되어 있다. 심지어 내가 관람하는 동안에는 다른 관람객이 딱 한 팀 뿐이어서 조용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사진 오른쪽이 기념품샵 겸 카페. 곡선으로 된 건물을 빙 둘러 산책로를 만들어두어서 관람을 마치고 여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미술관에서 기념품은 잘 안 사는 편이다. 미술관에서 카페 가는 건 참 좋아한다. 관람 전이라도 좋고 후라도 좋다. 그 미술관의 특색이 묻어나는 공간에서 설렘 또는 여유를 즐기며 그 미술관에서의 경험을 완성하는 시간이라고 여긴다. 여기는 미술관 티켓을 구입하면 관람후에 차 한 잔 할 수 있게 쿠폰을 끼워주는데, 덕분에 애매한 맛의 사과주스 한 잔 옆에 두고 스케치북으로 낙서나 하며 놀았다.


벽면이 곡선인 게 이 공간을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 통유리 너머 숲 속 풍경도...


마지막은 비상구 표시가 귀엽게 디자인된 출구 사진으로. 기념품샵에 이 비상구 디자인을 활용한 굿즈가 있는 걸 보면 이 부분도 나름 노림수가 있는 것 같으니, 부디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귀여움을 알아차리고 이 곳에 방문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선데이수를 소개합니다.
필자 선데이수는 2018년 초부터 일본 도쿄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일본 도쿄를 기점으로 주말이나 연휴를 이용해 주변 소도시를 여행했습니다. 스스로를 '기차 덕후'로 소개합니다. 기차 구경도, 기차 타는 것도 좋아합니다. 신칸센처럼 빠른 기차보다는 느릿느릿 달리는 로컬 기차를 더 좋아합니다. 기차 타고 갈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떠났습니다. 때로는 단 한 장의 사진을 보고, 때로는 단 한 마디의 키워드를 보고 여행지를 결정하는 '즉흥 여행자'입니다.
이전 10화 고원의 낭만, 가루이자와에 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