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황실의 휴양지이자, 존 레논이 즐겨 찾았다는 곳으로.
가루이자와에 처음 가게 된 건 친구 덕분이었다. 그 곳의 작은 콘서트홀에서 피아니스트 조성진 연주회가 있다고 했다. 이 친구가 날 만나러 온 건지 조성진 연주를 들으러 온 건지 좀 헷갈렸지만, 덕분에 가루이자와에 대해 찾다보니 호기심이 생겼다.
가루이자와는 도쿄역에서 호쿠리쿠 신칸센(北陸新幹線)을 타고 1시간10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과장을 조금 덧붙이면 소요시간만으로는 도쿄에서 요코하마 다녀오는거나 큰 차이가 없다. (물론 비용 측면에서는 큰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가루이자와가 위치한 나가노현(長野県)은 1998년 동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됐을만큼 (도쿄와는 달리) 여름에는 비교적 시원하고 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이다. 그래서일까? 여름에는 골프, 겨울에는 스키 등 레저시설이 잘 갖춰져 있는데다 일본 최대 규모의 아울렛도 위치해 있다고.
또한 이 곳은 '일본 귀족들의 휴양지'라고도 잘 알려져 있다. 1957년 아키히토 덴노(明仁天皇)가 가루이자와의 한 테니스 코트에서 운명의 상대를 만났다는 게 계기가 됐다. 그는 평민 출신인 쇼다 미치코라는 여성과 가루이자와에서 만나 결혼에 골인했다. 그 전까지 반드시 귀족 가문의 누군가와 선을 봐서 결혼을 시켰다는 걸 생각하면 아주 이례적인 일이었고, 덕분에 두 사람의 결혼 이후로 테니스는 물론 가루이자와도 상당히 인기가 높아졌다고 한다.
찾으면 찾을수록 가루이자와에서 보고픈 것, 하고픈 게 많지만 이번에는 당일치기 일정이라 신중하게 일정을 짜야했다. 오전에 도쿄에서 출발해, 가루이자와에 도착하자마자 만페이 호텔(Mampei Hotel)로 이동해 점심식사를 했다. 이 곳은 벌써 100년도 넘는 역사를 가진, 일본 최초의 서양식 호텔 중 하나라고 한다. 1970년대 존 레논과 오노 요코가 자주 머물렀던 장소로도 유명한 곳이다.
100년도 더 된 건물이기 때문에 오래된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 오래된 느낌 자체가 인상에 남는 곳이었다.
일본에 여행 올 때 꼭 기억해둬야 할 것, 런치 타임이다. 호텔에 딸린 식당에서 식사하다니 그거 참 엄청 비쌀 것 같지만 런치 가격을 들어보면 뭐 나쁘지 않다. 아래 소바 정식이 한화로 2만원 대였다. 당연히 디너와는 식재료 등에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그 식당'의 퀄리티를 유지하려고 하기 때문에 충분히 맛있다.
이 날 먹은 버섯튀김 맛이 아직도 생각난다. 덴뿌라를 잘 못 하는 집에 가면 기름냄새 밀가루냄새로 재료맛이 가려지고, 먹고 나서도 속이 더부룩하다. 반면 잘 하는 집에 가면 튀김옷은 거의 자기주장을 하지 않고 그 안의 식재료가 본연의 맛과 향기를 뽐낸다. 고온에 빨리 익히기 때문일까 찜이나 볶음요리에 비해 훨씬 향이 강하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만페이 호텔을 나와서는 조성진 연주회 시간에 맞춰 오우가 홀로. 아쉽게도 티켓을 한 장 밖에 구하지 못해 친구만 데려다놓고 나는 따로 시간을 보냈다. 가루이자와는 생각보다 평지가 많은 지형이어서 자전거 타기에 나쁘지 않다. 자전거 전용도로도 잘 되어있고, 무엇보다 여행자를 위해 여기저기 자전거 렌탈샵이 있어서 가볍게 휙 빌려타면 된다.
억지로 심어놓은 가로수가 아니라 진짜 그 자리에 오래전부터 서있었던 것 같은 나무들, 그 눈부신 초록 사이를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보면 아, 오길 잘 했다, 이런 생각이 든다.
위 지도에서 가루이자와와 만페이 호텔을 이어주는 선에 Kyu karuizawa 라는 이름이 붙어있는데, 구 가루이자와 긴자 도오리(旧軽銀座通り)라고 불리는 쇼핑 스트리트이다. 오우가홀에서 자전거를 타고 30분 정도 걸렸으려나. 교토의 키요미즈데라(清水寺)나 아사쿠사 앞 쇼핑 스트리트와 비슷하게, 이런저런 간식거리와 기념품 상점들이 늘어서 있는 곳이다. 자전거로 씽씽 달리다가 흥미로운 가게가 있으면 잠깐 멈춰놓고 구경하러 가 보거나 하며 시간을 보냈다.
선데이수를 소개합니다.
필자 선데이수는 2018년 초부터 일본 도쿄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일본 도쿄를 기점으로 주말이나 연휴를 이용해 주변 소도시를 여행했습니다. 스스로를 '기차 덕후'로 소개합니다. 기차 구경도, 기차 타는 것도 좋아합니다. 신칸센처럼 빠른 기차보다는 느릿느릿 달리는 로컬 기차를 더 좋아합니다. 기차 타고 갈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떠났습니다. 때로는 단 한 장의 사진을 보고, 때로는 단 한 마디의 키워드를 보고 여행지를 결정하는 '즉흥 여행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