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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석 Sep 10. 2023

06 기업에게 도덕이라니

그분들 연락처는커녕 지금 뭐 하는지 어디 사는지도 모른다.


 기업의 '갑질'이 이슈화되었을 때, 이를 취재하던 방송사에서는 유한양행에 연락했다. 아마 '갑질'의 반대편에 있는 기업의 사례에 대해 알아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창업주 일가의 연락처를 문의한 방송사에 유한양행이 돌려준 대답이었다.


 2대, 3대를 넘어 4대 세습을 준비하고 있는 우리나라 기업문화를 고려했을 때 꽤나 당황스러운 답변이다. 제약회사인 유한양행은 '깨끗한 기업'이라는 이미지로 강력한 소프트 파워를 구축한 기업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의 대표격이다.

2015년 1월 10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장면 중(출처 : SBS)




기업의 본질


 한 TV토론에서 보수 논객 전원책 변호사는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기업은 원숭이와 사람 중에 원숭이가 더 일을 잘하면 원숭이를 채용할 것이다." 

 표현이 격하긴 하지만 기업논리에 이처럼 합당한 말이 있을까 싶다. 


 기업에게는 '착하다', '나쁘다', '깨끗하다', '더럽다'등의 가치판단이 필요하지 않다. 기업은 이윤을 내는 것이 목적이다. 기업 자체가 가치판단의 감정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법이 존재한다. 법은 기업이 이윤추구 과정에서 사회와 인류에게 '나쁜'영향을 끼치는 것을 막기 위해 선을 정해준다. 


 그런 면에서 유한양행의 '깨끗한' 이미지는 그게 과연 직접적으로 어떤 도움이 될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1926년 설립 이후 거의 100년 동안 기업이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오랫동안 고객들에게 신뢰를 받아온 가장 큰 이유가 도덕성이었다는 점은, 기업은 감정이 없지만 고객은 감정이 있다는 사실을 되새겨준다.

 또 한편으로는 '기업'과 '브랜드'는 비슷해 보이지만 분명 다른 용어라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최근까지도 유한양행은 유일한 창업주의 의지를 계승한 경영활동을 이어오고 있다.(출처 : 서울경제) 




비현실적인 현실의 주인공


 창업주 유일한의 일화는 '요즘은 동화도 이렇게는 안 만든다'싶을 정도로 기이하다. 

 그는 납세의 의무를 철저히 준수했다. 내야 하는 세금 내는 게 뭐 그리 대단하냐 싶겠지만, 6~70년대의 대한민국 사정은 그렇지 않았다. 정경유착은 당연시되는 사회였다. 유일한은 정계와 접합점이 없는 거의 유일한 기업인이었기 때문에 당시의 박정희 정부는 유한양행을 굴복시키기 위해 온갖 세무조사를 감행했다. 당시 수차례의 피 말리는 세무조사를 진행한 후 세무조사원의 말이 유명하다. 

 "아무리 털어도 먼지 한 톨 안나는 사람이 진짜 있구나" 

 정치자금을 주지 않아 벌주려고 진행한 갖가지 조사에서 혼낼 명분을 찾아낼 수 없었던 정부는 '그 정도라면 상을 주는 게 마땅하다'라고 고개를 저으며 상을 줬다고 하니 말 다했다. 

모범납세인으로 선정되어 박정희 대통령에게 훈장을 받는 유한양행 창업주 유일한(출처 : 중앙일보)


 유일한은 은퇴할 때 경영권 승계를 막기 위해서 아예 전문 경영인 제도를 도입했다. 대한민국 최초였다. 창업주가 이래버리니 유일한 사후 거의 50년이 지났음에도 유한양행은 전문경영인 제도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고, 전문경영인의 임명 또한 내부승진으로만 진행하고 있다. 모든 유한양행 CEO는 평사원으로 시작했고, CEO 직함은 6년이 한계라는 원칙을 적용하고 있다.

유한양행 대표이사 조욱제 사장. CEO 메시지에 '유일한 정신'을 언급할 정도로 유한양행에서는 창업주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출처 : 유한양행 홈페이지) 


 죽을 때도 손녀의 대학교 등록금 1만 달러를 제외한 모든 재산을 환원한 유일한의 기업가 정신은 지금도 유한양행에서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이어오고 있다. 애초에 유한양행의 경영이념은 '우수 의약품 생산'과 함께 '성실한 납세'와 '기업이윤의 사회환원'을 보란 듯이 박아놓았다. 


 경영이념에는 아무 말이나 쓸 수 없다. 오너의 철학을 가장 그럴듯하면서도 오너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표현해야만 한다. 수많은 기업들이 경영이념에 '사회에 기여한다', '인류를 위한다'와 같은 표현을 쓰지만 '세금을 성실히 낸다'라고 박아두진 않는다. 

유한양행의 지배구조에서 최대주주는 공익재단이다. 창업주 유일한 박사가 전재산을 유한재단과 유한학원에 기증했기 때문이다.(출처 : 유한양행 홈페이지)




존경에서 이어지는 고객의 선택


 한동안 오뚜기가 '갓뚜기'로 불린 적이 있다. 경쟁업체들과는 다른 '착한 기업'적인 행보가 고객들에게 주목받았던 탓이다. 그러나 착한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널리 알려지자 오히려 언젠가부터 기업 내부에서 생채기를 낼 만한 사례들이 톡톡 튀어나오고 있다. 담합 의혹이라던지 제품 품질 논란, 직원들의 처우에 대한 논란 등이 그렇다. 갓뚜기라는 호칭이 그리 길지 않았음에도 '그 정도까지는 아니야'라는 사례들이 나오는 것을 볼 때, 아직까지도 깨끗함이라는 이미지가 탄탄하게 유지되고 있는 유한양행은 대단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유한양행은 제약업계에서 국내 매출 부동의 1위라는 타이틀을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다. 업의 근본인 우수한 의약품을 생산한 것과 더불어 오랫동안 구축해 온 깨끗함과 정직함의 강력한 소프트 파워가 매출이라는 하드 파워로 연결됐다고 생각해도 무리는 없지 않을까. 

2022년 상위 10개 국내 제약사 매출(출처 : 메디포뉴스)


 소프트 파워는 하드 파워에 비해 더 끈덕지다. 오랫동안 꾸준히 쌓아야 하는 힘이다. 그래서 소프트 파워에는 '어닝 쇼크'는 있어도 '어닝 서프라이즈'는 보기 드물다. 유한양행은 100년 가까이 도덕성이라는 벽돌로 소프트 파워의 탑을 쌓았다. 한국의 경제가 급속도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주축이 되었던 기업들은 필연적으로 오명을 뒤집어써왔다. 같은 시기를 지나오면서도 유한양행은 여전히 허리를 꼿꼿하게 편 채 그들의 길을 걷고 있다. 


('기업에게 도덕이라니' 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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