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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석 Sep 17. 2023

07 막강한 하드 파워로부터(1)

 대한민국의 위상이 지금 수준에 훨씬 못 미치던 이십여 년 전에도 몇몇 산업군에서 한국은 당당히 세계 1위 타이틀을 갖고 있었다. 선박은 가장 대표주자다. 배 잘 만드는 나라. 자국 화폐에 배 그림이 있었던 나라. 

과거 오백 원 지폐에는 거북선이 그려져 있었다.(출처 : 한국은행)




기업과 국가의 콜라보


 한국이 조선업계 최강자 자리를 차지한 이후부터 2000년대 후반즈음까지 한국의 조선업은 압도적이었다. 대형선박을 대상으로 잡을 경우, 수주량이나 제조 실력 모두 지구의 조선소를 대한민국으로 봐도 무방했을 정도다. 선주사들은 빅3를 필두로 한 메이드인코리아 선박 구매에 대기표를 뽑았다. 품질도, 가격도, 정비능력도 한국 조선사들의 수준은 경쟁국가와 비교가 미안할 정도였다. 그렇게 2000년대 후반에는 조선사들이 아예 몇 년 치 수주를 미리 받아놓던 시절도 있었으니 말이다. 숫자는 한국 조선업계의 압도적인 실력을 증명했다.

한국 조선업 호황기(2006년 2월 기준)의 조선사별 수주잔량(출처 : 클락슨)


 그저 인구만 많고 야심만 가득했던, 그러니깐 소위말해 '크기만 했던'국가가 야욕을 드러내기 시작한 건 2000년대 중반 이후다. 중국은 세계 정치와 경제의 패권을 가져오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독재와 사회주의가 결합된 국가시스템은 상위계층의 정책결정자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신속한 의사결정을 내렸다. 중국의 경제가 세계시장에서 야욕을 드러내고 미국과 유럽이 각각 경제위기로 한차례 이상씩의 삐끗을 경험한 틈을 타 중국은 자타공인 G2로 올라섰다. 


 한국 조선업의 긴 불황은 이때부터다. 중국은 저가수주로 선주사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아무리 품질차이가 나고 업계 경력이 초짜라고 해도 '이 정도 금액차이가 나면, 고장 나서 버려도 싸게 먹히겠는걸?'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그런.

한국, 중국의 선박 인도량(단위 : CGT-표준화물선환산톤수). 2000년대 후반부터 중국은 가파르게 점유율을 높였다.(출처 : 클락슨)

 사실 한국 조선업이 성장할 수 있었던 계기 또한 조선업에서 중국이 보여줬던 침투력과 비슷한 부분이 존재한다. 중국처럼 대놓고 저가수주로 경쟁에 뛰어들진 않았지만, 대대적인 정부의 사업 육성의 힘을 받았다는 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조선업은 그렇다. 거대하다. 거대하다는 말로는 다 담지 못할 정도로 거대하다. 수원시 영통구에 있는 삼성전자 부지는 50만 평 정도의 면적이다. 울산시 동구에 있는 HD현대중공업 부지는 200만 평 정도에 육박한다. 정주영 회장의 일화로 대변되는 한국 조선업의 신화는 그야말로 '맨땅에서 시작했다'라고 묘사되지만, 맨땅조차 거대하게 준비되지 않으면 일궈내기 어렵다.

울산시 동구에서 현대조선소(HD현대중공업) 기공식의 정주영 회장과 박정희 대통령(출처 : 울산신문)


 한국의 반도체 신화가 그러하듯 조선업의 성공 또한 '한국인의 성향'이 큰 몫을 하지 않았나 조심스레 제시한다. 근면성실. 사회구조의 발전 수준이 어느 정도의 궤도에 오르면 '단지 열심히'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하지만 초기 자본과 노력이 엄청나게 투입되어야 하는 분야에서 '근면성실'은 달리기의 스프린터와 같다. 


 한국 조선업의 대표주자인 HD현대중공업 정문 근처에는 이런 문구가 붙어있다. 

우리가 잘 되는 것이 나라가 잘 되는 것이며
나라가 잘 되는 것이 우리가 잘 되는 길이다. 


 한국이 고속성장하던 시기, 국민이 국가에 소속감을 강하게 느끼던 시기, 개인보다 전체가 중시되던 시기에 만들어진 이 캐치프레이즈는 분명 2023년에는 반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7~80년대에 이 정신은 '한강의 기적'에 직접적인 원동력이 되었고 조선업은 그 중심에 있었다. 울산과 거제는 여전히 조선업의 업황에 따라 지역 경제가 큰 영향을 받는다. 

 '배 잘 만드는 나라'라는 타이틀은 그냥 생기지 않는다. 국가와 기업의 콜라보레이션, 그리고 노동자들의 근면함, 뭐라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그 시대'의 가치관이 조화되어 이룩한 것이다. 그렇게 90년대와 2000년대를 맞이할 때쯤이 되자 대한민국은 '지구 최고의 조선소' 역할을 충분히 해내는 경지에 이르렀다. 초기 투자와 아웃풋이 지속되면서 강력하고 견고한 하드 파워를 형성했고, 점차 세계 선주사들에게 '한국에서 만들어진 선박'하면 품질면에서 더 설명이 필요 없다는 이미지를 구축했다.


 정리해 보자. 

 조선업은 거대한 산업이다. 초기 단계에서 큰 규모의 투자가 필요하다. 여기서 투자는 자본과 부지, 인력 등 모든 자원에 해당한다. 

 수주를 받는다. 대형 선박의 경우 한 건 한 건이 연 단위의 사업이다. 2023년 기준으로 LNG선 한대의 수주 금액은 3000억 원을 상회한다. 100만 원짜리 휴대폰을 30만 대 팔아야 한다. 수주로부터 하드 파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매출과 이익이 발생한다. 

 수주가 조선소의 가용 수준보다 늘어나면, 어느 시점부터는 또다시 투자 규모를 늘려야 한다. 

 강력한 하드 파워로 사업이 시작되고, 강력한 하드 파워로 수주가 이어지며, 강력한 하드 파워로 사업을 지속할 수 있는 분야라고 볼 수 있다.

HD현대중공업 울산 조선소 항공뷰. 왼쪽의 거주지역과 비교하면 조선업이 얼마나 거대한 분야인지 규모를 가늠해 볼 수 있다.(출처 : 머니투데이)


 다음 편에서는 조금 개인적인 경험들을 담아서 이야기를 전개할 예정이다. 과거 활황기의 조선업 시장에서 지역사회와 기업이 어느 정도로 막역한 관계를 유지했는지에 대한 사례들을 설명하려 한다.


('08 막강한 하드 파워로부터(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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