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의 단편집
('플러스 마이너스(1)'에서 이어짐)
2. 미현
혜선과 만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내내 기분이 이상했다. 제법 상세하게 알려준 혜선의 지출이, 혹시 일반적인 내 또래들의 그것과 비슷한 건 아닐까 조바심과 억울함이 함께 밀려왔다. 외모만 봐도 그렇다. 혜선이 예쁘장하게 보이는 건 나보다 이목구비나 체형이 더 낫기 때문이겠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나보다 더 스스로를 꾸밀 줄 알고 스스로에게 투자해 온 것 아닌가. 월 십 만원 이상의 화장품 지출, 피부과 회원권 값, 필라테스 비용, 가방을 구매하기 위해 작은 돈이지만 월 10만원씩 넣는 적금까지. 혜선은 모인 게 없다며 한탄했지만 따지고 보면 그녀는 나보다 덜 저축한 돈만큼을 스스로에게 투자해 온 것과 마찬가지다. 혜선은 당장의 행복을 누렸을 뿐이고, 스스로를 더 가꾼 것이다.
나는 어떤가? 고작 1억이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야심차게 저축을 시작한 결과 치고는 너무 애매한 금액이라는걸 최근에서야 느끼고 있다. 1억으로는 좋은 차를 살 수 있지만 집은 꿈도 못 꾼다. 투자를 시작할 수 있는 시드머니라고들 하지만 그것이 젊음을 붙잡아두진 못한다. 곧 서른이다. 혜선이 각종 안티에이징을 하는 동안 나는 그저 저금통에 돈을 모으기만 했을 뿐이다.
신호에 차를 멈추었다. 아랫배가 느껴졌다. 그러게, 혜선은 배도 없어 보였다. 혜선이 칭찬했던 것처럼 내 수준의 다른 친구들보다 성실하게 살았고 열심히 모았다. 결혼이라도 하게 되면 부모에게 손 벌리지 않을 정도는 된다. 근데 거울을 봐라, 미현아. 결혼도 누군가 만나야 하는 거지. 사실 나는 아낀 것 말고는 나를 위한 어떤 투자도 해보지 않은 셈이다. 번 돈을 재밌게, 행복하게, 어디에라도 제대로 써 본 기억이 없다. 도대체 나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열심히 아낀거지? 혜선과 내 계좌의 격차는 칠천 만원 이상이지만 그 차이는 계좌 안 숫자에만 한정될 뿐 아닌가. 혜선은 숫자로 보이지 않는 곳에 그 돈이 투영되어 있다. 나는 계좌를 들이밀지 않으면 나의 능력, 성실성, 매력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
그래, 나는 착각하고 있었던 거다. 성실히 살고 지금의 행복을 잠시 뒤로 미뤄두면 계좌의 숫자가 불어나는 만큼 나아지는 사람이 될 거라고 착각했다. 그렇게 살지 않는 이들이 낭비하는 삶을 사는 건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당장 드러나는 더 나은 무언가에 빠르게 투자한 사람들이다. 이렇게만 사는 게 결코 답이 아니다, 더 늦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먹먹했다.
경각심이 분수처럼 솟구치는 사이 다음 신호에 차가 멈췄다. 나는 예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원아, 뭐해? 아, 너 필라테스 피티 받는 거 일주일에 몇 번 해? 얼만데? 개인이지? 그거 그룹으로 하면 좀 그런가? 아, 진짜? 나 그럼 이따 집 들어가면 다시 전화할게. 물어볼게 좀 있어서.”
('플러스, 마이너스(3)'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