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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석 Oct 25. 2024

플러스, 마이너스(1)

루카의 단편집

1. 혜선


 강이 훤하게 내려다보이는 통창과 적당하게 밝은 햇빛은 토요일의 여유를 만끽하기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 흰색과 베이지색이 조화된 카페의 인테리어는 심플하지만 심심하지 않은 공간감을 제공했다. 이 안에 앉아있는 많은 고객들이 그러하듯 쟁반 위의 음료와 음식 사진을 찍기 알맞은 배경 역할도 톡톡히 해내는 듯했다.

 창가 자리 중 가장 전망이 좋아 보이는 위치에서 미현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과 동기의 결혼식 때 이후로 거의 3년이 지났다. 대학생때는 찰떡같이 붙어 다녔는데 사는 장소도, 환경도 달라지다보니 자연스레 연락이 뜸해진 사이. 그렇다고 사이가 나빠지거나 어색해진 게 아니다보니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몸 안의 세포들이 대학생 때로 되돌아간 듯 미현에게 반응하며 반가움의 신호를 내비치고 있었다.

 “대박, 대박. 이게 얼마만이야.”

 “와... 혜선아. 너는 진짜 여전히 이쁘다, 야. 여기 자리 괜찮지?”

 주변을 둘러보니 미현이 앉아있는 자리는 가장 강 풍경이 잘 보이면서도 햇빛은 절묘하게 가려지는 위치였다. 미현의 성격상 미리 알고 자리를 잡았을 게 분명하다.

 “자리가 무슨 귀빈석같네, 진짜 잘 잡았다. 주문 안 했으면 내가 살게.”

 “아냐 아냐, 주문했어. 혹시 운전 중일거 같아서 내 맘대로 시켰는데. 여기 복숭아 플랫치노랑 망고 바나나가 핫하다고 해서 그렇게 하나씩 시켰어. 블루베리케이크랑.”

 “역시 센스 좋아! 나 아직 차가 없어. 열심히 모아서 사야 하는데... 미현이 너는 차로 왔어?”

 “나는 차로 왔어. 여기는 차로 안 오면 좀 힘들 것 같아서... 우리 집이 또 지하철이랑은 좀 많이 멀어. 그래도 여기 교외라 그런지 주차장이 넉넉해서.”


 우리는 한동안 반가움의 인사만으로 시간을 보냈다. 우리의 반가움은 과장이 아니었다. 서로에 대한 반가움도 있었지만, 사무실과 도시의 일상에 찌들다 오랜만에 나온 교외는 별 대단한 관광지가 아님에도 마음을 들뜨게 만들었다. 미현이 여기서 만나자고 하지 않았다면 이런 풍광의 카페가 있다는 걸 몰랐을 것이다. 

 대화는 방향없이 시간을 채웠다. 가장 마지막 만남의 이유였던 결혼한 동기의 이야기부터 지루하기 짝이 없는 회사이야기까지. 만나는 사람은 있는지 없는지, 최근 갔던 여행지나 예쁜 카페 이야기, 관람한 영화나 뮤지컬 이야기, 어떤 넷플릭스 프로그램을 보는지까지도. 시원한 음료와 달달한 케이크는 우리 대화의 연료처럼 한 모금에 일상 한 페이지, 한 포크에 일상 한 페이지를 넘겨주고 있었다. 

 이야기의 주제가 쇼핑으로 넘어가자 미현은 내 가방을 가리켰다. 

 “이거 디올인가?”

 “응... 말도 마. 요즘 이거 가격 다 올려놔서...”

 “나는 아직 가방이 없어서 뉴스로만 봤어. 요즘에 명품들 가격 다 올리고 그런다던데. 다들 줄 서서 살 정도로 인기있으니까 그렇겠지?”

 “맞아. 나도 한국 매장에서 샀으면 못샀을 거야. 잠실만 가도 브랜드 매장마다 길길이 줄 늘어서 있잖아. 막 아침부터 대기 마감됐다고 문 걸어두고.”

 “한국에서 안 사면, 면세점 같은데서 사는 거지? 그러면 가격이 좀 많이 저렴해?”

 미현은 관심이 많은지 질문에 질문을 이어 붙였다. 

 대학생때의 미현은 학점이 좋았다. 전공과목 이해도가 높고 성실한 학생이었지만 항상 얌전하고 겸손했다. 눈에 띄는 외모이거나 나서길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었음에도, 미현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았던 이유다. 시험기간에는 미현을 찾는 동기나 선후배들이 늘어나곤 했는데, 어려운 과목들을 친절하고 자세히 알려주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현과 자주 붙어다녔던 나는 그 혜택을 가장 많이 본 동기일 것이다. 졸업 후 자연스레 연락은 뜸해졌지만 미현의 친절함에 대한 고마움은 아주 가끔 만나게 될 때도 망각되지 않고 마음 깊은 곳에서 머리를 들이밀곤 했다. 

 이런 미현에게 나는 항상 도움을 받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마침 미현이 나에게 무언가를 묻는 순간이 되자 대단한 일이 아니었음에도 최대한 성의껏 대답해주고 싶은 마음이 샘솟았다. 

 “면세점에서 살 수도 있고 현지에서 살 수도 있어. 글쎄, 뭐라고 딱 확답을 주긴 어렵긴 한데, 심플하게는 환율 좋을 때는 면세점이 많이 합리적인 가격이긴 해. 그렇다고 면세점 가려고 여행갈 정도까지는 아니겠지만. 그러려면 아예 막 몇 천 단위 이상으로 사야 될 텐데, 그건 아마 금액 제한이 있을거야. 현지에서 사는 것도 괜찮을 때가 있어. 특히 유럽쪽은 명품 아울렛들이 진짜 괜찮은 가격 많거든. 이것도 환율에 좌우되긴 하지만. 근데 이건 입국할 때...”

 최대한 내가 경험한 기억들을 자세히 덧붙여서 알려주자 미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쇼핑 주제에서 벗어나 대화가 다시 일상의 밥벌이의 영역으로 넘어왔다. 사실 미현이 나에게 가방과 쇼핑에 대해 물어본 것처럼, 반대로 내가 물어보고 싶은 영역이 돈과 재테크에 대한 이야기였다.

 동기들을 통해 드문드문 건너오는 다양한 소식들이 있다. 누구는 누구와 결혼을 했고, 누구는 어디로 이직을 했다는 이야기. 또 누구는 캠퍼스 커플로 오래 연애한 누구와 헤어졌다거나, 누구는 대학원 생활을 마치고 유학을 떠났다는 이야기. 누구는 갑자기 아프게 됐다거나, 혹은 누군가는 소식이 끊어졌다는 등등의 이야기들이다. 그 중 미현이 주인공인 소문은 그녀가 제법 재테크를 잘한다는 이야기였다. 보통 미현의 이런 이야기를 누군가가 꺼내면 다들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그럼 그렇지, 걔는 얌전히 자기 할 거 잘 하는 애였으니까, 라는 반응.

 미현도 나처럼 그저 그런 집안에서 자란 친구였다. 부유한지는 알 수 없지만 딱히 모자람도 없는 그런 삶. 그렇게 평범하지만 성실하게 학교 생활을 했고 괜찮은 직장에 취직했다. 나와 수입이 얼마나 다른 지는 명세서를 뽑아야 정확히 알 수 있겠지만 직장인 월급이야 뻔하지 않은가. 만약 그렇게 들려온 소문이 사실이라면 대체 뭘로 재테크를 할 수 있는지 들어보고 싶었다. 나도 제법 빠르게 취직에 성공한 편인데도 매년, 매월, 아무리 돈을 모아도 돈이 모이지 않는 이 굴레가 과연 미현과는 얼마나 다른지 비교해 보고 싶었다. 여유돈이 있어야 재테크를 할 것 아닌가.

 “아휴, 말도 마. 이놈의 회사 빨리 때려 치워야지...”

 “하하, 야. 직장생활하는 애들은 다들 그 얘기하더라.”

 “너는 안 그래, 혜선아? 꽤 다닐만 한가봐?”

 “뭐, 똑같지. 힘들진 않은데... 아니, 얘. 왜 아무리 벌어도 돈이 안 모이니? 이래서 결혼이나 하겠어?”

 미현도 우울한 웃음을 터뜨렸다. 

 “맞아. 분명 나는 돈을 벌고 있는데. 계속 벌고 있는데!”

 “야, 그래도 너는 잘 굴렸다며. 가아끔 어쩌다가 연락되는 애들이 너 얘기하면 김미현가 재테크를 그렇게 잘한다고 그러더라.”

 미현은 손사레를 쳤다.

 “그래봐야 회사원이 재벌 되는 것도 아니고. 해봤자지...”

 나는 이때다 싶어 조심스럽게 물었다.

 “너한테 그 선배 누구냐... 재테크 상담받은 선배도 있다면서. 그 정도면 능력 있는거 아니야? 얼마나 어떻게 불렸는지 물어봐도 돼?”

 민감한 질문이라 생각해서 조심스레 물어본 태도에 비해, 미현은 그다지 무겁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대학생 시험기간으로 되돌아간 것처럼 친절하고 상세하게 자신의 재무 상황을 알려줬다. 

 미현은 현금 1억 가량을 모았고 ‛자잘하게’ 주식과 펀드를 천 만원 이하로 갖고 있다고 했다. 내색하지 않았지만 나는 속으로 굉장히 놀랐다. 매월 쪼들리며 살아도 내가 모은 현금은 삼천 만원이 조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현이 자신의 재무 정보를 아무렇지 않게 오픈했기 때문에 나도 내 상황을 쭈욱 늘어놨다. 나는 미현에게 내 월 소득과 지출을 생각나는 대로 말하기 시작했다. 미현은 편하게 듣다가 진지한 내 태도에 자세를 고쳐 앉더니 휴대폰을 꺼내 메모장을 켰다. 나의 이야기를 들으며 몇가지 더 상세한 걸 묻더니 미현은 메모한 내용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내 월간 재무상태표였다. 


<4월>

월급 : OOO만원

카드값(생활비 포함) : OOO만원

오피스텔 월세 : OOO만원

오피스텔 관리비 : OO만원

교통비 : OO만원

운동(필라테스) : OO만원 

문화생활(뮤지컬) : OO만원

...


('플러스, 마이너스(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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