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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석 Oct 25. 2024

플러스, 마이너스(3)

루카의 단편집

('플러스, 마이너스(2)'에서 이어짐)


3. 예원


 “자, 얘들아. 여기들 보세요-”

 채경과 미현이 화면 뒤쪽으로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고급스럽게 차려진 초밥과 새우튀김이 사진 중앙에 자리잡았다. 

 “먹자, 먹자.”

 “맥주 하나 시킬까?”

 “실컷 운동하고 맥주라니...”

 “아냐 아냐, 한잔은 괜찮아. 이거 새우튀김 봐. 안 마실 수가 없잖아.”

 미현이 말렸지만 채경은 기어코 맥주를 주문했다. 나도 못 이기는 척 같은 맥주를 주문했고, 미현도 웃으며 잔을 받았다. 

 “미현아, 그래도 이렇게 같이 운동하니깐 일주일에 두 번씩은 보고 좋다.”

 “그러게. 사실 졸업하면 다들 언제 친했냐는듯 다 흩어지잖아. 예원이한테 전화했을 때 처음에는 좀 걱정했거든. 너무 무턱대고 전화했나 싶어서.”

 미현은 맥주를 한 모금 들이키고는 초밥 하나를 입에 넣었다.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우리도 좋지 뭐. 이렇게 그룹으로 하면 인당 지출도 삼분의 일로 줄어드는 거니깐. 채경이도 원래 일대일로 오래했었지. 같이 하는 게 훨씬 좋지 않아?”

 “한 달에 사십 만원 들던 게 십오 만원으로 줄었는데, 암. 그리고 친한 사람들끼리 같이 하면 사진도 서로 찍어줄 수 있으니까 얼마나 좋냐. 치얼스!”

 채경이 잔을 위로 올렸다. 시원하게 마신 채경은 미현에게 물었다. 

 “미현아, 어때? 좀 도움 되는 거 같아?”

 “아직 잘 모르겠어. 이제 한 달 채웠는데... 그동안 생각했던 ‛운동’이랑은 아무래도 좀 다르니깐. 그래도 사무실에서 가끔 목이나 허리쪽 당길 때 스트레칭 하는 방법 정도는 쓸만해. 너네는 필라테스만 해도 몸매관리가 그렇게 되는 거야?”

 채경이 고개를 저으며 허리춤을 잡아 보였다.

 “당근 아니지. 덜 먹기도 하고, 런닝도 엄청 뛰지.”

 “왜 그렇게까지 관리하는 거야? 원래도 마른 편이었잖아.”

 “뭐... 필라테스 옷 입었을 때 사진도 더 예쁘게 나오고... 인스타에 뭐라도 올리는 거 생각하면... 조금이라도 찌면 나 스스로가 일단 좀 껄끄럽더라고.”

 채경은 의류 회사를 다니다가 몇 달 전 그만두고 SNS에 열중이었다. 이목구비도 또렷하고 옷 입었을 때 태가 잘 나는 채경은, 인스타그램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팔로우가 1만이 넘어갔고 종종 영양제나 운동복 협찬을 받아 꽤 쏠쏠한 홍보비도 받고 있었다. 미현은 채경의 일상이 신기한 듯했다. 어느덧 회사생활 5년을 훌쩍 넘긴 미현은, 인플루언서로 향해가는 삶을 궁금해하며 물었다.

 “그러면 생활이 돼? 좀 실례인가 이런 거 물어 보는 거... 월급받을 때랑 다를 거 같아서. 예원이는 개인사업자지만 나는 월급만 받아봐서 전혀 감이 안 와...”

 “같이 운동하는 사이에 실례는 무슨. 생활은 안 되는데 재밌긴 해. 팔로워도 십만 단위 넘어가야 좀 더 벌이가 될거야 아마. 지금은 퇴직금으로 주로 생활하지. 여기저기 연락오는 곳이 좀 있어서 그렇게 다녀오면 재밌기도 해. 요즘엔 골프 의류 협찬받는데, 정작 내가 골프를 잘 모르거든. 그러니깐 업체 쪽에서 연습장 이용권이랑 필드, 클럽 같은 것도 다 협찬해 주더라.”

 “와... 그 업체는 왜 그렇게까지 해주는 거야?”

 채경은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모르지. 근데 조건에 내가 뭐 몇 개 업로드 하고 그런 게 있긴 하거든. 그러면 그게 생각보다 홍보가 많이 되나봐. 또 업체측에서 찐 인플루언서들 통해서 홍보하려면 비용 지출이 더 큰데, 나는 아직 인린이잖아.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홍보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 거 같아.”

 채경이 휴대폰을 꺼내 인스타그램 피드를 미현과 나에게 보여줬다. 녹색 필드 위에서 미현이 예쁜 골프 복장을 갖춰 입고 힘있게 클럽을 휘두르는 짧은 영상이 가장 상단에 고정핀이 박혀 있었다. 속바지가 보일듯 말듯 치마가 펄럭인 뒷모습에 이어 채경이 뒤로 돌아 카메라를 보고 미소지었다. 좋아요가 삼천 개가 넘는 영상이었다. 


 운영하는 스마트스토어는 답보상태였다. 한때 스토어가 잘 될 때는 순이익으로 월 삼백 만원 정도를 기록하기도 했다. 한창 홈트레이닝이 유행할 때, 마침 내가 필라테스를 배우고 있던 차에 괜찮은 필라테스복들을 업로드했었는데 그 때가 피크였다. 운동도 유행이 빨리빨리 도는 모양인지 지금은 간간히만 결제가 이뤄지고 있었다. 지난 달에는 스마트스토어를 시작한 뒤 처음으로 월  백 만원 미만의 수입이 찍혔다. 새로운 제품군들을 개설해야 했고 홍보 루트도 넓혀야 하는 시점이었다. 채경의 맥주잔은 가장 먼저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물었다.

 “나도 골프 쪽으로 스토어를 좀 넓혀볼까?”

 “왜? 갑자기?”

 “응, 요즘 매출도 줄고 해서.”

 “골프가 유행이긴 하지. 나도 골프 잘 모르지만, 내가 몇 번 가보고 느낀 건, 골프 유행 초창기에는 스크린이나 실내 연습장이 인기가 있었거든. 근데 이게 골프가 좀... 뭐라고 해야 하나... 보여주려고 하는 운동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스크린이랑 실내가 좀 대중화 되니깐 진짜들은 아예 필드로 나가더라. 그래서 필드 예약이 요즘엔 스크린보다 더 힘들어.”

 내가 갸우뚱해 보이자 채경이 설명을 덧붙였다.

 “내 말은, 꽤 쏠쏠할 거 같다는 뜻이야. 봐바, 예원아. 너가 원래 좀 넉넉하고 골프를 치던 사람이라고 해보자고. 아, 물론 요즘에 골프가 대중화 됐다고는 하지만 솔직히 아무나 치진 않잖아. 실제로 한번 필드 나가면 비용 많이 드는 것도 맞고. 그래서 골프 자체가 접근성이 떨어지는 스포츠다보니 애초에 스크린이나 실내에서 연습하는 사람들도 원래부터 쳤던 사람들인거지. 근데 막 언젠부턴가 온갖 뉴비들이 다 골프를 배운다고 해. 처음부터 필드나가기 부담스러우니까 실내랑 스크린 예약 미어 터지겠지? 원래 치던 사람들은 뭐지 싶은 거야. 그러면 아예 그들은 더더욱 필드로 나가려고 하지. 그렇다고 초보자라고 필드 못 나가는 거 아니잖아? 그러면 이제 더 구분되고 싶은 사람들은 아예 승마로 넘어가거나, 아니면 필드에서 되게 고급 의류나 장비를 사용하는 쪽으로 가는 거지.”  

 “시장도 넓어졌고 비싼 옷들도 잘 팔린다?”

 “빙고!”

 미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얹었다. 

 “부서에도 골프 시작한 분들 꽤 있어.”

 “그렇다니깐. 이게 또, 골프가 단지 막 몇 홀을 어떻게 끝내고 이런 진짜 운동만 즐기러 오는게 아니라서 더 사람들이 몰리는 거야. 골프를 치러 오는 게 아니라, 필드에 올 정도의 사람이 됐다라는 느낌을 즐기러 오는 사람들도 많은 느낌? 솔직히 나도 아직 규칙 잘 몰라, 히히. 그냥 탁 트인 데 나가면 신나기도 하고, 사진 찍으면 오죽 이쁘게 나오니. 뭐, 좀 생활수준이 올라간 착각에 빠질 수도 있고. 골프 시장에 접근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스포츠 자체’에만 절대 포커싱 하지 않아. 사교생활을 즐기는 듯한 감정에 초점을 맞추지. 골프의류 광고들 보면 그렇잖아.” 

 채경의 이야기는 나름대로 분석적이었다. 

 “그럼 골프 의류로 좀 넓혀 볼까? 스토어에 넣으면 좀 판매가 나오려나?”

 “아니면 나랑 필드 한 번 같이 나가볼래? 미현이 너도 같이. 나도 잘 모르는 아저씨들이랑 가는 것보다 너희랑 같이 가면 더 재밌을 거 같기도 한데.”

 미현은 고개를 완강히 저으며, “어우, 필라테스도 벅차. 시간도 그렇고, 돈도 그렇고.”라고 했지만 나는 조금 달랐다. 정해진 시간에 직장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미현과는 다르게 나는 시간을 유연하게 쓸 수 있지 않은가. 게다가 시장조사라고 생각하면 그 또한 일이었다. 

 내가 물었다. 

 “비용이 얼마나 들려나...? 좀 걱정되는데?” 

 채경은 그린피, 캐디피, 카트피 등등 한 번에 이해되진 않는 용어들로 비용을 알려줬다. 잘 구분되진 않았지만 넉넉잡아 총 비용이 오십 만원 정도 드는 걸로 보였다. 클럽과 골프화는 대여비료가 있지만 채경이 선뜻 빌려주겠다고 했다. 채경은 자신이 홍보하는 업체에 얘기하면 골프 비용도 할인받을 수 있을거라 했다. 하루의 유희로 즐기기에 월 수입의 오 분의 일이나 되는 비용이지만, 스토어를 위한 시장조사나 투자 비용으로는 합리적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사실 사업적인 생각보다 채경이 보여준 인스타그램을 보며 막연한 동경이 생긴게 우선이기도 했다. 나도 그런 사진들을 남길 수 있겠구나, 이 정도 사진들을 남기는 것만으로도 그건 의미있는 하루 아닐까. 

  남은 음식과 맥주를 비우며 나와 채경은 언제 가는 게 좋을지 일정을 잡았고 미현은 부러움의 추임새를 넣으며 우리의 운동 후 식사 자리는 서서히 마무리되어 갔다.


('플러스, 마이너스(4)'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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