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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석 Oct 25. 2024

플러스, 마이너스(4)

루카의 단편집 

('플러스, 마이너스(3)'에서 이어짐)


4. 채경


 예원과 필드를 나가기까지는 처음 정한 시점보다 조금 지연됐다. 예원을 집에 불러 갖고 있는 골프복을 입어보게 했지만 그녀는 썩 맘에 들어 하지 않았다. 

 “그냥 캐주얼하고 활동하기 편한 옷 입고 가면 안돼?”

 “아냐, 예원아. 필드 나가는 건 제대로 된 복장 갖추는 것부터 시작이야. 너도 필라테스 할 때 그냥 운동복 입지 않는 것처럼. 캐디들이나 주변에 보는 눈도 있고.”

 “너랑 나랑 스타일이나 톤이 달라서 그런지... 너한테 있는 옷은 나한테는 안 어울리나봐.”

 “에이, 왜 그러실까, 필라테스복만 입어도 헬스장에서 시선 집중인 우리 예원씨.”

 예원은 여전히 맘에 들지 않는 표정으로 전신거울에 자신의 착장을 비춰 보았다.

 “아예 골프복 한 벌 살까? 이왕 가는 거, 제대로?”

 그냥 한 번 같이 가보겠다고 했던 예원의 태도는 처음보다 깊어져 있었다. 나는 홍보 중인 골프복 업체의 담당자와 연락했고 가까운 매장 방문 약속을 잡았다. 


 홍보 담당자는 우리가 방문한 매장에 와있었다. 항상 전화나 디엠으로만 협찬 관련 연락을 주고 받았는데 직접 담당자를 마주하니 제법 대우받는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 함께 간 예원에게 그럴듯하게 보였으리라는 생각이 들어 으쓱했다. 

 담당자는 매장 직원과 함께 우리를 전담했다. 예원은 신중하게 여러 벌을 피팅룸에서 입어보았고 직원은 시종일관 미소를 유지한 채 응대했다. 그렇게 예원은 꽤 높은 가격대의 상의와 하의를 구매했다. 골프화까지는 아직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내가 가지고 있는 골프화 중 무난한 디자인을 빌리기로 했다. 

 계산대에서 삼십 만원 조금 넘는 비용을 확인한 예원은 카드를 내밀었다. 그 때 담당자는 직원에게 뭔가를 귓속말로 얘기하고는 나와 예원을 번갈아 보며 안내했다. 

 “고객님, 저희 채경 모델님 친구분이시고 또 오늘 이렇게 함께 오시기까지 했으니 본사 재량으로 할인해드리려 합니다. 사십 퍼센트 할인 적용해서 십구만 팔천 원 입니다.”

 예원의 눈이 똥그래졌다. 나도 환하게 “우와, 감사해요! 담당자님 짱!”이라며 엄지를 들어 보였다. 

 계산이 모두 끝나고 담당자는 매장 내부의 브랜드 로고가 잘 보이는 위치에서 사진을 찍어줄 수 있냐고 물었고 나와 예원 모두 기분 좋게 쇼핑백을 든 채 포즈를 잡고 섰다. 예원이 속삭였다. 

 “채경아, 네 덕에 나도 모델된 거 같다, 야.”

 담당자는 우리 둘만 나온 사진, 매장 직원과 함께 찍은 사진, 담당자 본인과 함께 찍은 사진까지 총 세 번을 찍고는 매장 밖까지 우리를 배웅했다. 


 골프 초보자인 예원을 필드부터 데려간 게 잘 한 일인지는 알 수 없다. 굳이 따지자면 나도 필드 나갈 실력은 아니니까. 필드를 밟았다는 느낌, 이런 시간을 누릴 수 있다는 감각이 중요한 거 아닌가. 게다가 필드에서 찍는 사진과 실내 연습장이나 스크린에서 찍는 사진은 좋아요의 자리 수 자체가 다르다. 

 오랫동안 필라테스로 몸을 가꾼 예원의 아우라는 마치 녹색 배경을 바탕으로 기다렸다는 듯 빛을 발했다. 확실히 의류 스토어를 운영하는 눈썰미 때문인지 직접 고른 옷도 잘 어울렸다. 질투날 정도로 매력적인 착장을 완성한 예원은 골프채를 구분할 줄도, 어떻게 휘두르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나와 캐디의 도움을 받아 꽤 그럴듯한 퍼팅 사진과 짧은 영상을 남길 수 있었다. 예원이 골프채를 휘두를 때 우아하게 펄럭이는 하얀 골프 스커트가 아름답게 활강하는 백조 같았다. 

 운동을 끝내기 전 필드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 속에서 예원의 샤넬 귀걸이가 사진 속에서 반짝였다. 예원이 가져온 가방도 샤넬이었는데. 얘는 스토어가 고만고만하다면서 어디서 돈이 생겨서 사는 걸까. 집이 좀 살았나? 예원의 성격에 가품을 들리는 없고. 확실히 골프장에서는 다들 골프복장 차림이라 그런지 작은 포인트 액세서리만 있어도 한층 차별적인 스타일링이 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디서 어떻게 샀는지 물어보면 좀 없어 보이겠지.  


 내 착장은 대부분 협찬 제품 위주가 되다보니 예원이 착용한 귀걸이나 들고 온 가방처럼 하이엔드의 명품 브랜드를 들어본 적은 없다. 예원처럼 스마트 스토어로 주기적인 매출과 이익이 발생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미현처럼 고정 수입이 있는 상태도 더더욱 아니다. 협찬을 종종 받을 뿐 나의 현금 수입이 그들보다 많다고는 할 수 없겠지. 

 그동안은 필요를 느끼지 못했는데 예원을 보니 왜 사람들이 명품에 눈독을 들이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하나쯤은’ 정도의 느낌일까. 예원과 함께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머릿속이 계산기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현금이 얼마나 있더라, 가방 하나가 얼마 정도 하려나. 

 예원은 첫 필드가 피곤했는지 조수석에서 졸음을 깨려 애를 쓰고 있었다. 

 “하하하! 예원아, 자도 돼.”

 “아이고오... 미안해. 생각보다 골프가 고되구나...”

 예원은 조수석의 매너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피곤함과 햇빛을 이겨내지 못한 채 끊임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허벅지에 놓인 가방의 로고는 햇빛의 방향을 따라 반사되며 반짝였다. 


('플러스, 마이너스(5)'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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