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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석 Oct 11. 2024

로만 칼라 빼앗기(1)

루카의 단편집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나는 침착했다. 처음이었다면 당황했을 것이다. 우왕좌왕하며 많은 걸 놓친 채 성당을 떠났으리라. 하지만 이미 어머니의 위독함은 꽤 오래 지속됐다. 자주 찾아갈 순 없었지만 어머니의 직원들이 수시로 소식을 전해왔던 터다. 호전과 악화를 이삼 년 반복하는 동안, 찬찬히 마음의 준비를 마쳤던 모양이다. 그래서 이번에 전화를 받았을 땐 직감할 수 있었다. 어머니의 위독함은 이번이 마지막일 거라고. 


 사무장과 수녀들에게 한동안 성당을 비워야 한다고 전했다. 주교께도 보고를 마쳤다. 이것저것 인수인계 하는 동안 가장 가까운 곳에 사는 요한 형제가 성당에 찾아왔다. 아마 사무장이 연락을 한 모양이다.  

 “신부님, 제가 모셔다 드릴게요.”

 나는 미소를 지어보이며 괜찮다고 답했다. 요한 형제가 가져온 커피만 받아 들었다. 

 “혼자 가는 게 편해요. 감사합니다.”

 천천히 병원으로 출발했다. 걱정스러운 표정들이 룸미러에서 멀어졌다. 초점이 바뀌며 비춰진 내 모습은 담담했다. 

 병원으로 향하며 어머니와의 추억을 떠올렸다. 처음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그런 추억들을 떠올렸던 것 같다. 그때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서 신에게 민망할 정도였는데, 지금은 의연해졌나 보다. 어머니에 대한 감사와 적당한 슬픔은 운전하는 동안 마음 속에서 조화롭게 똬리를 틀었다. 신에 대한 감사도 덧대어졌다. 하나뿐인 아들이 평범하지 않은 길에 있음에도, 어머니는 당신의 능력 덕분에 다른 사람들보다 덜 아프게 늙을 수 있었고, 더 편하게 노년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병원에 주차한 후 조금 빠른 걸음으로 정문을 들어섰다. 사람이 빼곡했다. 내노라하는 큰 병원이어서 제일 아픈 사람들만 모여 있으리라는 생각을 종종 했다. 두 벌 있는 평상복을 빨아버린 탓에 로만칼라와 바지차림의 사제복을 입고 와야 했다. 적지 않은 시선이 꽂히는 게 느껴졌다. 병실 위치를 확인하려는 찰나 캐주얼한 정장 차림의 여자 한 명과 남자 한 명이 불러 세웠다. 

 “박명호 신부님 이시죠?”

 “아, 예.”

 “올라가시죠. 회장님 직원들입니다.”

 나의 걸음보다 그들의 걸음이 더 급해 보였다. 종종 걸음으로 그 둘을 좇았다. 전염병 탓에 입원실 엘리베이터로 들어가는 절차가 까다로웠다. 신분을 확인하고 올라갔다. 두 직원을 따라 조용한 층의 병실 통로로 들어섰다. 직원들은 한 병실의 문을 두드렸고 그들은 문만 열어주고 같이 들어가진 않았다. 

 “저희는 여기에 있을테니 혹시 필요한 게 있으면 부르세요. 아니면 벨을 누르셔도 됩니다.”

*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어머니는 호흡기를 꽂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옆에는 간호사가 앉아서 뭔가를 하고 있었다. 간호사에게 인사를 하자 그녀도 나에게 목례를 하더니, 어머니의 귀에 입을 대고 또박또박 천천히 말했다. 

 “아드님이 오셨네요.”

 어머니는 슬며시 눈을 떴다. 어머니의 손이 올라가는 게 보였다. 하지만 얼마 올라오지 못하고 손은 다시 침대로 툭 떨어졌다. 손을 흔들고 싶은 모양이었다. 어머니는 간호사와 눈을 마주치고 손가락으로 호흡기를 가리켰다. 간호사는 고개를 저었다. 

 “안되요, 회장님. 하고 계셔야 해요.” 

 어머니는 뭔가 말을 했는데, 하는 말은 들리지 않고 호흡기 안에 김만 찼다. 간호사는 어머니의 말을 알아듣는 모양이었다. 

 “그러면 당직 의사를 모셔올게요.”

 어머니는 알았다는 듯 눈을 깜빡였고, 간호사는 호출기의 벨을 눌렀다. 몇 초 만에 의사가 들어왔다. 의사는 나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는 간호사와 어머니에게 다가갔다. 간호사가 먼저 의사에게 말했다.

 “호흡기를 빼고 싶어하셔서요.”

 의사는 한쪽 무릎을 굽히고 어머니에게 얼굴을 가까이 댔다. 의사는 조금 크고 또박또박 고개를 흔들면서 말했다. 

 “회장님, 제 말 잘 들리시죠?”

 어머니의 눈은 좀 더 또렷해졌다. 어머니는 누운 채로 충분히 보일 정도로 단호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아드님이랑 말씀하고 싶으셔서 그러시죠?”

 어머니의 고개 끄덕임이 더 강해졌다. 호흡기 안에도 김이 다시 훅 찼다. 이제 어머니의 눈은 내가 들어왔을 때와는 판이하게 멀쩡히 떠 있었다. 의사는 호흡기가 연결된 기계에서 뭔가를 꽤 오랫동안 체크했다. 들어가고 있는 주사들도 확인했다. 간호사와는 심각한 표정으로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의학 용어들이라 나는 대부분 이해하지 못했다. 

 어머니에게 다가가지도, 또 멀어지지도 못한 어정쩡한 위치에 계속 서 있었다. 목 근처가 좀 답답해서 로만칼라 안쪽을 슬쩍 긁으려 할 때쯤 의사가 돌아서며 말했다. 

 “아드님이시죠. 사실 아드님께 연락이 간 것도, 아까는 정말 회장님의 상태가 좋지 않으셨어서 그랬거든요. 호흡기도 그래서 하고 계셨던 겁니다. 이상하게 지금은 상태가 많이 올라오셨어요.”

 그리고 의사는 아주 가까이 다가와 속삭이듯 귀 근처에 대고 말했다. 

 “지금 환자의 상태는 언제 가셔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이미 고령이시기도 하고요. 지금 괜찮다고 하셔도, 단 몇 초 만에라도 위험할 수 있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의사는 다시 정상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나와 어머니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회장님, 지금 상태가 많이 괜찮으신 거 같아서 호흡기는 빼볼게요. 병실 앞에 의료진들 항상 있으니까,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벨 누르셔야 해요.”

 나는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어머니를 바라봤다. 어머니는 미소짓고 있었다. 간호사와 의사가 호흡기를 조심스레 뺐다. 호흡기 밖으로 나온 어머니의 입에서 해소의 한숨이 탁 나왔다. 

 “아휴.” 

 어머니는 허리를 일으켜 앉으려 했지만, 나가려던 의사와 간호사가 급히 제지했다. 

 “회장님, 이러시면 저희 못 비켜드려요. 누워 계세요.”

 어머니는 쉽게 굴복했다. 그리고 나를 바라봤다. 수백 명의 직원을 이끌던 회장님의 모습은 거의 사라지고, 일어나 앉는 것조차 제지당할 수 밖에 없는 백발의 노인 한 명만 남아있다. 문득 ‘네가 젊었을 때는 스스로 허리띠를 매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다. 그러나 늙어서는 네가 두 팔을 벌리면 다른 이들이 너에게 허리띠를 매어 주고서,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라는 성경 구절이 떠올랐다. 

 의사와 간호사는 슬며시 자리를 비켰다. 어머니에게 닿을 거리가 되어 어머니의 손에 내 손을 얹었다. 어머니는 자꾸 손을 꿈틀거리며 제 의지로 내 손을 잡으려 했지만 잘 되지 않는 듯 했다. 어머니는 고개를 틀어 나를 또렷이 바라봤다. 어머니는 웃었지만 눈물이 뚝 하고 떨어졌다. 

 “박, 신부님.. 아들 신부님..”


('로만 칼라 빼앗기(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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