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의 단편집
('로만 칼라 빼앗기(1)'에서 이어짐)
가톨릭의 사제가 된 후 어머니는 항상 나를 존칭으로 불렀다. 신부‛님’이라는 말을 항상 붙였다. 어릴 때는 ‛명호야’와 ‛바오로’를 섞어서 쓰셨다. 하나뿐인 아들이 신부가 되겠다고 했을 때, 어머니는 강하게 말리지 않았다.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뭐가 하고 싶다고 말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거의 처음으로 뭔가 하고 싶다고 말한 바람이 “신부가 될래요.”였어도, 어머니는 차마 반대할 수 없었다. “네가 신부가 되면 엄마의 회사는 누가 이어가냐.”고 했던 생전의 부친과는 달랐다.
어머니도 찬성하는 건 아니었다. 어머니는 자주 “명호야, 힘들면 언제라도 그만둬도 된다.”고 나를 달랬다. 신학생동안 힘들거나 흔들렸던 적은 딱히 없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거의 일주일에 한번 이상 이 얘기를 했다. 힘들어서라도 신학교 생활을 그만두길 바랐을 것이다. 군생활을 마치고 4학년, 5학년을 보내는 동안도 어머니는 이 말을 종종 했다. 언제부터 어머니가 나를 달래길 단념했는지 기억나진 않는다.
신학교에 입학한 후, 가끔 집에 방문할 때 십자가와 성모상 앞에 촛불을 켜두고 기도하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을 몇 번 봤다. 두 분은 그 나이대의 중장년 부부 정도의 관계일 뿐, 그렇게 나란히 앉아 눈을 꼭 감고 함께 기도할 정도의 애정넘치는 사이까진 아니었다. 신부가 되고 한참 지나고 나서야 그 때 그분들의 기도 내용이 뭐였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어떻게든 아들을 돌려달라. 무작정 “내 자식 돌려내!”의 멱살잡이가 아니라, 아주 간절한 청. 아들이 명예와 권세를 누리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그저 사제의 길은 멈추게 해달라, 평범하게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살면서도 충분히 당신의 자녀로 살 수 있다, 우리에겐 이 아들 하나다, 세상에 사랑을 전하며 살 수 있도록 돕겠다, 독신의 길에서는 이탈하게 해달라, 제발 부탁합니다, 이런 기도였을 것이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하나뿐인 아들의 서품을 마치 아들의 결혼식처럼 마주했다. 정신없이 흘러갔던 서품식 날의 기억 중에도 내 앞에 어머니가 성체를 받기 위해 줄 서 있던 순간만은 어제처럼 생생하다. 어머니는 쏟아지는 눈물을 참지 못했고, 십 년 가까운 신학생 생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순간임에도 어머니 앞에선 죄스러움에 터져 나오는 울음을 목 뒤로 삼키며 말했다.
“그리스, 도의, 몸,”
어머니는 울음을 억지로 삼켜내며 “아멘-”이라고 응답했다. 그 뒤에는 아버지의 씁쓸한 표정이 기다렸다. 아버지는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아멘-”이라는 응답과 함께 남기고 지나쳐갔다.
신의 손에 맡겨진 아들은, 더이상 어머니와 가깝기 어려웠다. 어머니와 멀어지는 과정은, 십 년 가까운 신학생 생활을 통해 하루씩 밟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한 발짝 한 발짝 세속에서 신의 품으로 나는 멀어졌다. 사제로 다시 태어난 아들을 위해, 어머니는 연락을 자제했다. 드문 전화나 만남에도 어머니는 신부님, 신부님 하며 말을 높였다. 나도 언젠가부터 ‛엄마’와 반말이 아닌, ‛어머니’와 존댓말로 습관이 굳어졌다.
*
주름으로 가득찬 힘 없는 어머니의 손은 내 손을 자꾸 문질렀다.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 써서, 당신이 가진 시간을 모두 다 써서라도 아들을 안으려는 걸로 보였다. 호흡기를 대고 있을 때보다 어머니의 눈은 상당히 힘이 생겨났다. 어머니는 입을 다시 겨우 뗐다.
“우리, 아들, 신부,님. 내가, 미안,해,”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어머니가 뭘 미안해요. 사랑해요, 어머니.”
어머니가 입원하고 한동안은 “쾌차하셔야죠.”나 “얼른 일어나셔야죠.”라는 말을 했었다. 어머니의 병원 생활이 길어지고 병세가 악화되면서 언젠가부터 이 말들은 하지 않았다. 대신, 아들이라는 핑계로 자주 하지 못했던 말을 하려 노력했다. 성경에서 수천 만 번은 읽었고, 신자들에게 수천 번은 말했을 ‘사랑한다’는 말. 정작 어머니, 아버지에게는 민망해서 별로 해보지 못했던 말.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다. 미소지은 눈에서 눈물이 똑 흘렀다. 성당을 출발할 때 덤덤했던 마음이 빠르게 사라져 갔다. 울음이 목으로 기어 나왔지만, 나는 웃어 보였다. 눈이 흐릿해 지는게 느껴졌다. 어머니는 손을 떼어 손목 부분을 힘없이 쓰다듬었다. 검정 사제복에 어머니의 피부 각질이 희미하게 떨어졌다.
“어머니, 수고하셨어요.. 감사해요..”
어머니는 다시 보일락 말락 고개를 끄덕였고, 내 얼굴을 응시했다. 어머니는 당신의 마지막을 누구보다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반대편 손을 어렵사리 돌려 내 손을 양손으로 포개어 잡았다.
“미안, 아들. 신부님. 예쁘고.. 자랑스러운.. 우리 아들.”
볼을 타고 뜨거운 것이 흘렀다. 그래도 미소를 거둘 수는 없었다. 어머니는 환하게 웃어 보였다. 어머니는 한참동안 그렇게 손으로 더듬더듬 나를 만지다가 병상 끄트머리에 위치한 벨을 눌렀다. 바로 노크소리가 들리고 간호사와 직원이 들어왔다. 어머니는 직원과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직원은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회장님께서 아드님이 오시면 변호사와 만나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상속 문제 때문에요.”
나는 어리둥절해 하면서 눈물을 닦았다.
“상속이요? 보시다시피.. 저는 그..”
“글쎄요, 저도 지시만 받은 내용이라.. 아마 회장님께서 생각한 방안이 있으실 겁니다.”
나는 어머니의 기업이 어느정도 규모인지 상세하게는 잘 모른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회사는 컸다. 종종 뉴스에도 나왔다. 최근에는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보도됐다. 이미 어머니가 위중한 뒤로 기업은 전문 경영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었다. 그래도 어머니의 지분은 상당할 것이다. 어머니는 병상에서 오랫동안 상속 문제를 고민하셨을 것이다. 어머니의 고민은 아들이 신부이기에 더 복잡했으리라. 어머니의 고민은 자식이 하나뿐이어서 더 깊었을 것이고, 그 자식의 자식이 존재하지 않기에 더욱 난제로 여겨졌을 것이라고,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
복도에서 변호사를 마주했다. 말끔한 인상에 40대가 채 되지 않아 보였다. 변호사는 예의바르고 친절하게 악수를 건넸다. 그는 신속했지만 다급하진 않았다. 나를 다른 층 어떤 사무실로 데려갔다. 회의실은 조용했고 커피가 준비되어 있었다. 변호사는 두괄식으로 결론부터 얘기했다.
“회장님, 그러니깐 어머님께서는 대부분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의 아들은 재산이 필요치 않았다. 불편한 일은 없겠구나,며 고개를 끄덕였을 때, 변호사는 내 눈을 마주하더니 다시 했던 말을 강조했다.
“대부분이요. 대부분.”
“네?”
“어머님께서는 기업 운영에 필요한 주요 자산들과 지주사는 사회와 OO공단으로 환원하시기로 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기부체납과 지분 이관 절차가 회장님 사후에 이루어질 겁니다. 하지만 아드님께 남긴 지분이 있습니다.”
변호사는 휴대폰을 꺼내어 녹음을 틀었다.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변호사는 이를 1년 전 쯤 녹음했다고 설명했다.
어머니는 당신 지분 100%인 고아원과 OO동 자택을 나에게 남긴다고 말했다. 그리고 현금 000억원을 나에게 남긴다고 말했다. 녹음 속 어머니는 방금 변호사가 그랬던 것처럼 결론부터 얘기했다. 어머니의 어조는 건조했는데, 아마도 써 놓은 내용을 읽는 듯했다. 어머니의 말은 이어졌다. 재리에 밝지 못한 아들을 위한 것인지, 어머니는 각 상속분에 대해 설명을 덧붙였다.
남기는 재산 규모를 감안하면 세금을 납부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현금을 넉넉하게 남기니 거기서 상속세를 납부하면 얼추 모자라지 않을 것이다,고 녹음 속 목소리는 말했다. 자택은 개조하여 청소년, 청년들을 위한 장소로 운영하라, 오래 전부터 아들이 청소년들을 위한 사목을 하고 싶어했던 걸 잘 안다, 집을 남겨서 아들을 돕겠다, 상속세 납부 후에도 현금은 넉넉할 테니 필요한 운영 비용을 충당할 수 있을 것이다,고 녹음 속 목소리는 말했다. 자택의 소유권은 아들 명의로 가톨릭 재단에 기부하는 형태를 띄면 어머니는 기쁠 것 같다, 아들의 이름이 세상에 도움이 되었다고 어딘가에 남는다면 그것은 어머니인 나의 기쁨이다,고 녹음 속 목소리는 말했다. 고아원도 같은 목적으로 명호에게 남긴다, 이 곳은 오랫동안 어머니와 아버지가 신경 썼던 곳인만큼, 교단에 기부하더라도 명호 네가 원장을 맡거나, 적어도 운영에 손을 대는 형태면 좋겠다,고 녹음 속 목소리는 말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녹음의 말미에, 그 모든 결정은 명호 너에게 달린 일이니 어머니의 말을 따르는 것은 재산을 상속받는 부분까지이고, 받은 재산을 어떻게 할지는 결국 아들 신부님이 결정하라, 앞에 얘기한 세부적인 사용처는 단지 어머니의 조언일 뿐이다,고 말을 마쳤다.
변호사는 녹음이 끝나고 몇 가지 법리적인 이야기를 덧붙였다. 이렇게 남긴 것들이 어머니가 가진 모든 재산 중 몇 퍼센트에 해당된다고 설명했다. 상속받을 경우 납부할 상속세가 얼마인지를 알려줬다. 나는 상속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없었고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도 아버지 지분 중 어머니에게 증여되는 부분을 제외하고 대부분을 사회와 가톨릭으로 기부하는 형식이었기 때문에, 막연히 어머니의 재산도 어딘가로 돌아가겠지라고 생각했었다. 나는 어머니의 죽음을 대면할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었지만 현실에 대해서는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걸, 변호사를 만나고 비로소 깨달았다.
“변호사님. 저는 신부라서...”
변호사는 말을 끊었다.
“그렇지만 아들이시죠.”
“제가 뭘 어떻게 할 수가...”
“거기부턴 신부님의 문제입니다. 회장님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까지가 저의 역할입니다. 회장님께서 남긴 재산을 아드님께 문제없이 전달되도록 하는 것이 저의 일이죠. 이 녹음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아드님께서 어떻게 사용하실지는 제가 손댈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만, 상속까지는 이행해야 합니다.”
변호사는 녹음을 끄고 필요한 서류들을 내밀었다. 그의 행동은 사무적이면서도 전문적으로 보였다. 우물쭈물하고 있는 나를, 그는 슬쩍 위로 올려보더니 툭 던지듯 말했다.
“딱 저만큼만 남기신 게, 신부님께서 덜 당황하시라는 회장님의 배려가 아닐까요?”
“네?”
“회사의 지분이나 경영권을 아드님께 남기셨으면 지금보다 훨씬 복잡했을 겁니다.”
변호사는 공간 안에 들어온 후 거의 처음으로 사람다운 목소리로 말했다. “신부님은 자녀가 없으시고 앞으로도 없으시겠지만... 글쎄요. 부모는 자식에게 무언가 해줄 수 있을 때만큼 행복할 때가 없습니다.”
('로만 칼라 빼앗기(3)'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