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인석 Oct 11. 2024

로만 칼라 빼앗기(4)

루카의 단편집

('로만 칼라 빼앗기(3)'에서 이어짐)


 “신부님, 어디세요? 빨리 올라오셔야 될 것 같습니다.”

 모르는 번호는 아까 나를 안내했던 직원 중 한 명의 목소리였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정희에게도 전했다. 우리는 함께 뛰었다. 병실 층으로 뛰어올라갔다. 어머니의 병실 문 앞에 간호사 몇 명이 대기하고 있었고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몇 명 더 문 앞에 모여 있었다. 사제복과 수녀복이 보이자 간호사와 직원들은 문 앞에서 비켜섰다. 

 침대 앞에 무릎을 꿇고 어머니 얼굴에 최대한 가까이 내 얼굴을 마주 댔다. 호흡기는 다시 씌워져 있었다. 어머니는 눈을 아주 느리게 꿈뻑이고 있었다.  

 “지금 의식이 없으세요?”

 나는 의사에게 물었다. 의사에게 고개를 돌리고서야 언제부터 흘렀는지 알 수 없는 눈물이 볼을 타고 내려오는 걸 느꼈다.

 “계속 왔다갔다 하고 있습니다. 좋지 않아요... 준비하셔야 합니다.”

 병실 안에는 다른 직원 몇 명이 있었고 정희와 함께 온 일행도 여전히 있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 공간 안에서 누군가의 임종은 내일 해가 뜨는 것만큼 확실해 보였다. 이 공간 안의 모든 사람들은 모두 그 공기를 함께 마시고 있었다. 

 “엄마!”

 울부짖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내 입에서 나온 외침이 내 목소리 같지 않아서, 그래서 더욱 복받쳤다. 엄마는 슬며시 눈을 뜨고 나와 눈을 마주했다. 호흡기 안에 김이 찼다. 김 때문에 입이 보이지 않았는데, ‛아들’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엄마!”

 ‛엄마’라는 단어를, 거의 삼십 년 만에 입 밖에 내는 것 같다. 그 단어를 나는 잊은 게 아니었구나.  

 “엄마! 미안해...”

 엄마는 눈을 감지 않았다. 엄마는 내 입에 눈을 마주했다. 호흡기 안에 계속 김이 찼다. 엄마는 의사에게 눈짓을 했고 손으로 뭔가를 꼼지락했다. 엄마는 손으로 호흡기를 가리키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였다. 의사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엄마는 뭔가를 말하고 싶어했다. 

 “엄마, 말하지마. 알아요. 엄마, 미안해. 내가... 그래도 엄마. 나는 이 길을 가고 싶었어요. 미안해...”

 내 입에서 울음 참는 소리가 같이 비집고 나왔다. 울음 소리를 그치지 못한 채 의사에게 물었다. 

 “지금 들리시는건 맞죠?”

 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는 호흡기 안에서 자꾸 뭔가를 말했다. 

 “말하지 마, 엄마. 엄마. 엄마... 그래도 나는... 나는 이렇게 살 수 있어서, 좋았어. 행복했고, 계속 행복할거야. 엄마. 엄마... 고마워요.”

 사제 서품식날, 나는 ‛그리스도의 몸’이 아니라 ‛엄마 미안해’, ‛엄마 고마워’라고 말했어야 했다. 세속의 부와 명예를 다 누린 엄마는 그 대가로 아들을 잃었다고 생각했을까. 

 엄마는 계속 눈을 부릅뜨려 노력했다. 이미 힘이 다 빠져 있었지만, 눈이라도 최대한 힘 주려는 걸 알 수 있었다. 엄마의 손을 꼭 쥐었다. 하지만 엄마는 사력을 다해 내 손에서 당신의 손을 뺐다. 그리곤 어렵게 어렵게 손을 들어 내 어깨에 올렸다. 나는 어깨에 올려진 엄마의 손 위에 내 손을 포갰다. 하지만 다시 엄마의 손은 목 쪽으로 움직였다. 엄마가 내 볼에 손을 대려는 줄 알았다. 하지만 엄마의 손은 목 칼라에 닿았다. 흰 칼라를 엄마의 손이 움켜쥐었고, 흰색 깃이 똑 떨어졌다. 검정 깃과 흰색 깃이 분리됐다. 엄마는 눈을 감지 않고 다시 뭔가를 소리치듯 외쳤다. 호흡기에 순간적으로 엄청나게 많은 김이 서렸다. 심박을 나타내는 소리가 빨라졌다. 엄마의 손이 내려갔다. 내 목의 흰색 깃이 검정 깃과 분리된 채 덜렁거렸고 상의 단추 하나가 풀렸다. 엄마의 손은 다시 내 손으로 가까이 다가가다가 멈췄다. 

 엄마의 눈에서 한 방울의 눈물이 똑 떨어지고 빛이 사라졌다. 


*


 발인까지 빠르게 시간이 지나갔다. 어머니는, 엄마는, 이미 오래전 천주교장을 직원들에게 지시해 두었다. 엄마는 신의 사람인 아들을, 세속의 가족에게 신경쓰지 않게 하려고 아주 오랫동안 천천히 스스로의 죽음을 준비한 모양이다. 장례식장에서 나는 별다르게 힘들 일이 없었다. 직원들은 마치 내가 그들의 고용자인 것처럼 사소한 편의까지 배려해주려 했다. 나에겐 그 직원들이 소속된 회사의 소유권은 하나도 없었다. 


 장례절차가 끝나고 주교님을 찾아갔다. 상속에 관한 내용을 상세히 보고했다. 주교님은 “박 신부가 교구보다 부자가 된 모양이야.”라며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내 착잡하고 무거운 심경을 설명했다.  

 “굳이 왜 분심을 남기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제가 온전히 받을 수 없다는 걸 이미 잘 아셨을텐데. 어차피 기부할 재산이라면 어머니 이름으로 남겨도 충분하지 않았을까요...”

 “어머님은 아들에게 재산을 남기고 싶었던게 아니신 거 같은데.”

 주교는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자네의 이름으로 베풀 기회를 남기신 게 아닐까? 기회. 당신이 마지막으로 아들을 든든하게 지원할 수 있는게 뭐가 있을까.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 어머님이 직접 하는게 아니라, 박명호 바오로가 베풀 수 있는 기회 말이야.”

 “아.”

 엄마가 눈을 감기 전, 호흡기 안에 김이 가득찰 정도로 크게 소리쳤던 그 말이 문득 떠올랐다. 입 모양이 보이지 않았음에도 확실히 보이고 들렸던 말. 마지막 숨을 모두 모아 내뱉은 듯했던 말.


 “아들. 엄마가, 많이, 많이, 사랑해.” 


(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