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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석 Oct 11. 2024

로만 칼라 빼앗기(3)

루카의 단편집

('로만 칼라 빼앗기(2)'에서 이어짐)


 다시 병실로 돌아왔을 땐, 대여섯 명의 손님이 와있었다. 한 명은 무릎을 꿇고 어머니의 손을 잡은 채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는데, 수녀복을 입고 있었다. 다른 여성들은 주변을 둘러싸고 눈을 손수건으로 찍어내고 있었다. 어머니는 눈을 들어 나를 확인했다. 

 “우리, 아들, 신부님.”

 나는 중년 여성 일행에게 목례로 인사를 했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있던 수녀가 일어나서 나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고개를 들며 그녀의 눈을 마주했을 때 나는 놀란 소리를 낼 수 밖에 없었다.  

 “어?!”

 수녀는 눈을 닦으며 나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는 어머니를 바라봤다. 어머니는 슬픈 표정을 지어 보였고 다시 눈물이 뚝 떨어졌다. 


 내가 아는 얼굴이었다. 주름이 많이 지긴 했지만 기억 속에 남아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내가 그녀를 안다는 사실을, 그녀는 이미 잘 알고 있는 듯했다. 수녀는 일행들에게 말했다. 

 “나는 잠깐 신부님과 얘기 좀 하고 올게. 원장님 잘 봐줘.”

 “아는 분이셔?”

 “성당일 때문에.” 

 그녀의 옷과 나의 옷은 우리의 관계를 의심할 수 없게 만드는 적절한 도구였다. 일행들은 더 묻지 않았고, 수녀는 먼저 병실을 나갔다. 나는 어머니를 한번 돌아보고 따라 나갔다. 어머니의 눈은 나를 좇고 있었다. 


 봄바람이 선선했고 날도 맑았다. 문득 어머니의 장례를 치루는 날씨도 산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벤치에 앉았다. 어색하게 입을 먼저 뗀 건 그녀였다. 

 “잘 지냈지? 요? 명호 오빠.”

 나는 답하지 못했다. 

 “진짜 신부님 같네, 오빠는. 다행이야.”

 중년에 접어든 수녀의 얼굴에 내가 알던 20대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너는, 아니.. 수녀님은, 왜 여기에..”

 “박명호 신부님. 미안해요. 사실은..”

 온갖 생각이 떠올랐다. 그녀는 천천히 말했다. 

 “나는... 원장님을 알아요.”

 순간적으로 ‛원장님’이 누군지 물을 뻔했다. 

 “난... 거기서 자랐어.”


*


 동기들에 비해 내 신학교 생활은 순탄했다. 학교 생활, 신앙 생활 말고는 관심분야도 없었고 고민할 문제도 없었다. 솔직히 나는 넉넉했다. 신부가 되기에, 그것은 큰 문제였다. 대다수의 삶을, 내가 잘 모른다는 걸 신학교에 입학하고서야 인지하게 된 것이다. 1학년을 마친 겨울방학 때 나는 뭐라도 해야겠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스스로 나의 모자람을 털어내야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학교의 허락을 받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울 정도로 별 것 아닌 일이지만 그조차도 해봐야겠다는 의무감이 들었다. 

 집에서 조금 떨어진, 그래서 성당 신자들이 알아볼 일 없는 위치의 편의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정희는 내가 아르바이트를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 들어온 뒷타임 교대 근무자였다. 그녀는 항상 생글생글 웃는 낯으로 밤동안 초췌해진 나와 인수인계를 했다. 남중, 남고 출신에 신학교까지 입학한 나에게 그녀는 존재만으로도 다소 신비로웠음을 비로소 고백한다. 또래의 여성과 대화다운 대화를 나눠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녀는 똑부러졌고 눈이 또랑또랑했다. 부잣집 딸처럼 보였고 항상 밝은 분위기가 풍겼다.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교대시간보다 20분, 30분씩 일찍 오기 시작했다. 

 그녀와 가까워질 수밖에 없었다. 이성이 아니었어도 그랬을 것이다. 정희가 뿜어내는 긍정적이고 밝은 기운에 휘청였다. 나도 고작 스물 한 살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누구보다 건강했다. 


 신학교 생활동안 별다르게 힘든 일이 없었다는 건, 아주 백 퍼센트의 사실은 아니다. 

 그녀는 내 삶에 아주 잠깐 등장했다가 사라졌지만 십여 년에 이르는 신학교 생활 중 거의 유일한 고비고 고난이었다. 내가 겪은 유혹 중 가장 오랫동안 강렬하게 나를 흔들었다. 세속의 삶에 대해 상상이나마 해보게 만들었던 유일한 존재였다. 

 정희와 가까워진 후 식사도 함께하고 커피도 마셨다. 그녀가 내뿜는 밝고 당당한 기운에 감화됐다. 내가 약한 사람이 아니다, 누구라도 그녀에게는 끌릴 수 밖에 없다, 그저 이성을 떠나서 좋은 인간이기 때문에 웃게 되는 것이다,며 자신을 속였다. 하지만 당연히 나도 알고 있었다.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바로 그 시작의 기분이라는 걸 깨닫는 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연애의 경험이 없음에도 그녀가 내게 보여주는 태도가 바로 ‛호감’이라는 사실 또한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방학이 끝나기 하루 전, 그녀와 자주 가던 카페에서 마치 연인의 모습으로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혼란이 내 안에서 폭발하고 있었다. 

 항상 같이 시간을 보낸 뒤 헤어지던 버스정류장에서 마침내 나는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그래야만 했다. 

 한 달 넘는 시간동안 나를 고통스럽게 했지만 한편으로는 행복하게 했던,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을 알게 해준 그녀에게 확실히 이야기해야 했다. 나는 당신을 좋아하는 것 같다, 미안하다, 사실 나는 신학생이다, 당신을 좋아하기 때문에 차마 말하지 못했다, 말해야지 하면서도 당신과 멀어지고 싶지 않아 자꾸 미뤄왔다, 이런 감정을 처음 느꼈기 때문에 이토록 허우적댄다, 이런 감정을 느껴볼 수 있게 해준 당신에게 감사하고 죄송하다, 

 그리고 혹시, 혹시, 만의 하나 당신도 나를 좋아했다면 진심으로 미안하다, 부디 당신이 느낀 감정은 내 것만큼 크지 않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정희는 슬픈 미소를 지었다. 그것이 나와 그녀의 마지막이었다. 

 조각난 마음을 붙이기까지 상당한 시간을 소모했다. 어디에도 말할 수 없는 혼자만의 고통이었다. 그녀에게 연락해보고 싶은 마음을 꾹 밀어 넣었다. 기도 중 갑작스레 떠오르는 세속의 미래 모습에 한없이 흔들렸다. 상상 속에 정희가 옆에 있었기 때문에 이를 꽉 물곤 했다. 


 이제 거의 이십여 년을 넘긴 희미한 기억이다. 그 긴 세월을 넘어, 그때의 그 사람이 나를 마주하고 있었다. 수녀복을 입은 채로.

 “고백할 게 있어.” 

 그녀는 한숨을 후 내쉬더니 말했다. 

 “살면서, 언젠가는 만날지 모른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만나면 꼭 얘기해야지 생각했어. 왜냐면... 오빠는 신부님이 되어있었을 거니까. 신부님께 거짓말하는 건 더 죄스러운 느낌이라...”

 “나를 원래 알았어?”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오빠와 만날 수 있었던 건... 원장님 때문이었어.”

 “원장님? 어머니?”

 정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장님이 부탁하셨거든.”


 그녀는 사실 어머니가 원장이었던 고아원에서 자랐다. 어머니는 다른 원생들보다 명석했던 그녀를 유독 예뻐했다. 고아원 장학금 덕분에 대학교 입학이 확정된 후, 어머니는 정희를 따로 불러서 부탁했다. 

 “정희야. 이런 부탁 너무 미안해. 들어주지 않아도 괜찮다. 아침 드라마처럼 유혹해달라는 이야기가 아니야. 그냥... 명호가 다른 세상도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는데. 정희가 명호를 좋아할 필요도 없고. 그냥 친하게만 지내주면 안될까? 대신 이렇게 내가 부탁했다는 건 명호가 모르게...”

 정희야말로 원장 어머니에게 어떻게든 감사함을 갚고 싶었기에, 힘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희가 내 뒷타임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건 우연히 아니었다.


 “엄마가...”

 이 얘기를 오십이 다 되고서야 알게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에게 미운 감정이 들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이네. 나는... 나는, 혹시 너도... 나처럼 그런... 그런 마음을 느꼈을까봐... 그래서 많이 미안했거든.”

 정희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말했다. 

 “그건... 맞아. 나도. 오빠가 느꼈던 그런 마음. 나도 그랬어. 그래서 더 미안해요...”

 “아.”

 우리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자리잡았다. 묻고 싶은 이야기와 꺼내고 싶은 이야기들이 용솟음쳤다. 하지만 입을 꾹 닫았다. 그렇게 넣어두는 게 맞을 것 같았다. 엄마는, 어머니의 마음은 그 정도였을까. 

 나는 그녀가 어떻게 살았는지, 어머니와는 얼마나 자주 연락했는지, 무엇을 했는지, 그리고 왜 수녀가 되었는지 하나도 묻지 않았다. 정희도 조용히 침묵하고 있었다. 내 눈 밑에도 이제 저런 주름이 있을까. 


('로만 칼라 빼앗기(4)'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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