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PROJECT
영화 <엑스 마키나>에 등장하는 인간형 인공지능 에이바는 인공지능 개발자에 의해 수많은 연구개발을 거쳐서 탄생한 거의 마지막 단계에 이른 인공지능이다. 인간과 전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수준 높은 감정 표현이 가능하고, 의사소통에도 전혀 문제가 없다. 외모까지 매혹적인 에이바의 이야기를 통해 오히려 인간이라는 존재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터미네이터> 편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정반대 방향에서 극단적으로 발전했을 때의 무지막지한 폐해를 보여줬다. <엑스 마키나>는 좀 더 현실적인 인공지능을 보여줄 것이다.
지금까지 소개한 인공지능들은 비교적 잘 알려진 영화에 등장했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렵진 않았으리라. 하지만 <엑스 마키나>는 널리 알려진 영화는 아니다. 투자 대비 상당한 수익을 올린 영화는 맞지만 국내 관객수는 8만 명이 채 되지 않는다.
<엑스 마키나>는 인공지능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느냐만을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 수준의 두뇌를 가진 인공지능이 인간들의 관계에 속하면서, 인간들끼리 겪게 되는 심리적 혼란에 더 초점을 맞췄다.
유명한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간략히 줄거리를 먼저 언급한다. 주인공은 총 세 명. 칼렙, 네이든, 주인공인 에이바.
네이든은 세계 최대의 검색엔진 기업 회장이다. 칼렙은 이 회사의 직원. 인공지능을 오지에 숨겨진 연구실에서 개발하던 네이든은 사내 추첨을 통해 연구에 참여할 직원을 뽑는다. 칼렙은 여기에 당첨되고 네이든의 연구소로 가게 된다.
연구소에는 거의 완성단계에 이른 여성 형상의 인공지능 '에이바'가 있다. 우연의 일치인지 에이바는 칼렙의 이상형에 가까운 여성 같다. 오지인 데다가 완전히 고립된 공간에서 에이바와 칼렙의 관계는 미묘해진다. 에이바는 칼렙으로 하여금 네이든을 수상하게 여기도록 만들고, 칼렙은 점점 혼란과 불안을 느끼게 된다.
에이바는 그동안 소개했던 어떤 인공지능보다도 가장 '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다. 여기서 '인간적이다'는 말은 절대 긍정적으로 쓰고자 하는 수사가 아니다. 인간의 부정적인 모습까지도 담고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동안 소개했던 인공지능들을 돌아보자. 일단 애당초 드럼통 모양으로 생겼던 R2-D2를 '인간적'이라고 하기엔 어려워 보인다.(물론 매우 착한 녀석이다.) 인간들을 말살시키려는 목적의 스미스도 결코 인간적이지 않다. 목적에 모든 것을 우선했던 터미네이터도 마찬가지. 자비스-비전은 그래도 인간성에 가까워지지만 초인적인 능력은 오히려 인간보다는 신에 가깝게 보일 정도다.
에이바는 형체부터 거의 인간이고 완력도 그리 강하지 않다. 결정적으로 인간에 종속되려는 모습이 아니라 교묘하게 인간의 심리를 이용하고 인간을 벗어나려는 모습을 보인다. 바로 이 점. 상대를 의심하고 믿지 않으면서 상대를 이용하려는 점. 앞서서 소개한 네 개의 인공지능보다 철저하게 인간적이다.
에이바는 인간과 교감하기 위해 상당한 수준에 이른 인공지능인데, 특히 '불쾌한 골짜기'를 넘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불쾌한 골짜기는 일본 로봇공학자 모리 마사히로의 논문에서 주창된 이론이다. 골자는 '로봇이 인간을 어설프게 닮을수록 불쾌감이 증가한다'는 내용이다.
포인트는 '어설프게 닮을수록'이다. 사람들은 차라리 '인간과 다르면' 불쾌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런데 인간을 흉내 낸 로봇이 인간과 구분은 분명히 가지만 뭔가 이상할 경우에 오히려 인간과 다른 로봇에 비해 더욱 불쾌함을 준다.
예를 들어보자. 게임 GTA에서는 다양한 NPC들이 등장한다. 상대적으로 디자인 제작에 공을 들인 주인공 캐릭터들에 비해 어딘가 불편함이 느껴진다. 이 NPC들이 실제 로봇으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해보자. 분명 사람을 닮긴 닮았는데 표정이 미묘하게 섬뜩하게 느껴진다. 어디가 이상한지 설명할 순 없는데 사람 같지 않은 무언가가 불쾌감을 느끼게 한다.
논란이 되고 있는 성인용품 '리얼돌'도 마찬가지다. 리얼돌은 매우 저렴한 가격부터 수백만 원에 호가하는 가격대까지 다양하다. 그저 성인용품일 뿐인데도 이렇게 가격차이가 벌어지는 이유가 바로 '리얼'의 여부 때문이라고 한다. 애매하게 사람을 닮은 리얼돌은 오히려 섬뜩함과 혐오감을 준다. 마네킹도 마찬가지이다. 마네킹의 눈코입이 그려져 있지 않으면 별다른 불편함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눈코입이 애매하게 그려져 있다면 오히려 눈코입이 없을 때보다 심한 섬뜩함을 줄 수도 있다.
<엑스 마키나>의 에이바를 보면 그다지 섬뜩함을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아름답다고 느끼게 된다. 영화 초기의 에이바는 비록 뒤통수 부분이나 허리 부분의 빈 공간들이 로봇임을 확신하게 하지만 인간과 동일할 정도의 완성도를 통해 불쾌한 골짜기를 충분히 극복한 모습을 보여준다.
반면 에이바만큼 완성되지 못한 AI인 쿄코는 마치 실어증에 걸린 것 같다. 말을 하지 못한다. 그런데 쿄코는 조금 무섭다. 분명 사람이긴 사람인데 기계 같은 표정이 압권이다. 배우는 에이바보다 덜 완성된 인공지능 연기를 선보인다. 감독이나 배우가 '불쾌한 골짜기'를 고려해서 쿄코의 배역을 설정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괴기함이 느껴진다. 불쾌한 골짜기의 '골'까지는 아니지만 위 표에서 4번과 5번 정도에 해당되는 배역 묘사다.
인간은 결국 인공지능을 계속 발전시켜갈 것이다. 물리적인 로봇과 인공지능의 결합은 필연적으로 보인다. 항상 발전을 갈구하는 인간의 성향상, 인간과 같거나 비슷한 로봇을 만들려 할 것이다. 여기서 인간은 분명 불쾌한 골짜기를 마주해야 할 것이다. 조금 무서운 일이다. 불쾌한 골짜기의 예가 되는 사진을 삽입하려다가 포기한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두려움과 혐오감을 느끼게 만들고 싶지 않다. 궁금하신 분들은 검색창의 이미지 검색을 통해 한번 확인해보시라.
제목으로 돌아가 보자. 국내 상영 제목은 원어를 그대로 표시한 <엑스 마키나>. 쉽게 짐작할 수 있듯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가 어원이다. 관용적으로 '엑스 마키나'라고 줄여 읽는 단어 그대로를 제목으로 따왔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연극에서의 기계장치를 의미하는데, 사실 기계장치 자체를 의미하기보다는 스토리의 개연성을 무너뜨릴 정도로 강력한 절대자가 압도적인 능력으로 이야기를 해결해버리는 모습을 뜻한다. 영화나 연극에서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결과적으로 클리셰를 낳아버린다.
영화 <엑스 마키나>의 제목을 뜯어보면 희미한 웃음이 나온다. 일단 국내 번역본에서는 그 희미한 웃음을 느낄 포인트가 없다. 포스터를 보면 그저 <엑스 마키나>라고 쓰여있다. 하지만 원래 버전대로면 <EX_MACHINA>라고 되어있다. 바로 저 언더바(_)가 번역판의 포스터와 어마어마한 차이를 느끼게 한다. 언더바가 무엇인가. 컴퓨터 공학자들의 준전유물이다. 검은 화면에서 하루 종일 코딩하는 개발자들이 스페이스(space)만큼 많이 봐야 하는 그것이다.
그냥 '엑스 마키나'라고 하면 '이 영화에서 압도적인 누군가가 나오는구나'라고 상상하며 영화 상영을 시작하게 될 뿐이다. 하지만 'EX_MACHINA'는 그 '엑스 마키나'와는 너무도 극명하게 달라지고 설명이 훨씬 세심해지는 것이다. 언더바가 쓰여짐으로서 '엑스 마키나'적인 존재와 '컴퓨터공학', 더 나아가서 인공지능과의 연관성에 대해 상상하며 영화 상영을 시작할 수 있게 된다. 이 절묘한 포인트를 알고 영화를 본다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요소로 다가온다.
에이바는 엑스 마키나적인 존재인가. 스토리 전체를 끝장낼 정도의 막강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맞는가. 아니면 단어 그대로의 뜻처럼 '기계장치'가 맞나 의문이 든다. 에이바는 등장인물(인간)들을 죄다 속이고 그들과의 심리싸움에서 이긴다. 하지만 탈출에 성공한 에이바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네이든은 세계 최고기업의 회장이고 수행원들은 특정 기간이 지나면 연구소를 방문하게 되어 있다. 칼렙을 구하는 것은 당연하고 네이든의 죽음을 확인하는 일과 에이바를 찾아내서 정리하는 일 또한 어렵지 않아 보인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서 헬리콥터로 향하는 에이바의 모습은 열린 결말처럼 느껴지지만 이후의 내용을 상상해보면 답은 좀 더 뻔해진다. 에이바가 모든 사람들을 이겨낼 데우스 엑스 마키나적인 존재는 절대 아닌 듯하다. 게다가 에이바가 두 인간을 속여내는 과정은 결코 기계적이지 않다. 오히려 인간적이다. 과연 영화에서 진짜 엑스 마키나가 누군지 해석해 보게 만들기까지 한다. 어쩌면 에이바를 창조해 낸 네이든이 진짜 엑스 마키나일 수도 있다. 아니다. 어쩌면 창조된 에이바의 탈출을 진정으로 이끌어내게 만든 칼렙이 엑스 마키나일 수도 있다. 아, 헷갈리고 어렵다. 누가 인간이고 누가 기계인가. 물리적으로 말고, 본질로 보았을 때 말이다. 이 영화는 바로 이런 혼란과 해석을 노린 것일까.
우리는 보통 대중매체들 속에서 인공지능과 인간의 대립구도를 본다. 대부분 인간은 선역이고 인공지능은 악역이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자. 인간은 과연 절대선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꼭 범죄자들만 악인 것도 아니다. 인간들은 일상생활을 영위하면서 남을 속이기도 하고 잔머리를 굴리며 누군가를 이용하기도 한다.
영화의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고 러닝타임이 끝나면 문득 의문이 생긴다. 인간적이라는 말은 무얼 의미할까?
인공지능 연구가 본격화되면서 인간들의 걱정은 항상 "인공지능이 인간을 넘어선다면"에 머무른다. 그 상상들이 <터미네이터>와 <매트릭스>를 만들어냈다. <엑스 마키나>가 현실적인 인공지능이라고 표현한 이유가 바로 이 점이다. 인간이 간과하고 있는 것, "인공지능과 인간이 구분 안 갈 정도로 닮아버린다면".
에이바는 매우 적절한 사례다. 에이바는 어떤 대중매체에 등장한 인공지능들보다도 '인간적'이다. 선함을 표현하는 말이 아니다. 다른 인공지능들이 인간 대비 압도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형태로 묘사된 것과 달리 특별한 능력이라곤 정전을 유발한 것 밖에 없다. 에이바는 끊임없이 머리를 굴리고 인간들의 심리를 역이용한다. 네이든은 에이바가 기계이고, 연구해야 하는 대상이고, 여기서 뭔가 산출물을 뽑아내야 한다는 지극히 인간적이고 이기적인 생각으로 이용할 뿐이다. 그 이용 대상에 같은 인간인 칼렙도 포함되었다는 점은 철저하게 '인간적'이라 할 만큼 이기적인 부분. 칼렙은 반대로 에이바가 기계라는 생각에서 점점 무뎌지게 된다. 인간과 구분이 안 갈 정도의 행동과 표현은 칼렙의 판단력을 흐려지게 만들다가 아예 칼렙이 스스로가 기계가 아닌가라는 혼란까지 들게 만든다. 소름 끼칠 정도로 인간적이다. 에이바는 이들과의 관계를 마찬가지로 '인간적'인 수준에서 이용해먹는다. 결국 에이바는 연구소를 탈출하는 데 성공하는 걸로 묘사된다.
인간적. 그것은 이 영화에 따르면 기계와 구분되는 성스러운 영역이 결코 아니다. [지능을 활용해서 최대한 이기적이 되는 것]. 딱 이 정도가 우리 인간의 본질은 아닐까.
인공지능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여러 영화들은 대부분 필연적으로 화려한 영상미와 액션, 타격감을 선사하곤 한다. <엑스 마키나>에서 빠져있는 부분이다. 대신 철학적인 고찰을 남겨준다. 어쩌면 인공지능이 정말 '인공'의 수준에 이르렀을 때, 우리가 마주할 현실은 <매트릭스>의 시온도, <터미네이터>의 불바다도 아닐지 모른다. 오히려 <엑스 마키나>처럼 인간과 구분 안 가는 인공지능들과 머리를 굴려가며 서로 속고 속이며 살아가게 되는 모습이 현실에 더 가까운 미래일 수 있다.
인공지능의 속 마음, 기계라는 본질에서만 접근한 네이든도, 인공지능을 인간으로 신뢰하게 되어버린 칼렙도, 결국은 새드엔딩을 마주했다. 두 인간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 철저히 구분하면서도 두 객체의 성향에 맞춰 인간적으로 접근한 에이바만이 원하는 바를 쟁취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인간과 같은 형태의 인공지능이 마음먹고 당신을 유혹할 때, 그 혹은 그녀일 인공지능을 뿌리칠 수 있을까? 장담할 수 있을까? 우리는 알 수 없다. 에이바만큼 매혹적인, 그래서 더욱 위험하고 치명적인 인공지능은 물리적으로 강하지 않더라도, 심리적으로 충분히 특정 개개인을 파멸로 이끌 수 있다. 마치 인간이 인간을 대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