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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몸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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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 Feb 27. 2021

내 몸의 필요와 능력을 정밀하게 감각하기

일주일 동안 운동을 하며 느낀 것

금요일의 보상심리 때문에 저녁을 평소보다 과하게, 빨리 먹었더니 계속 속이 더부룩했다. 달리기 하러 나갈까 싶기도 했으나 이미 무거워진 몸을 다시 일으키기가 쉽지 않았다. 뭘 해도 소화가 안 되는 느낌이라 (체한 건 아니지만 체하기 직전의 느낌. 평소 워낙 잘 체하는 편이어서 바로 감이 왔다.) 미리 소화제를 먹고 요가 수련을 위해 동영상 두 개를 따라 했다. 건강한 소화기능을 위한 요가 : 인요가전신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25분 요가 : 빈야사 요가. 첫 영상을 따라 하고 나자 몸이 약간 가벼워졌다. 아직 힘이 좀 남아있기도 했거니와 여전히 배가 불러서 빈야사 요가에도 과감히 도전했다. 역시나 힘들었지만 하고 나니 뿌듯하다.


한 발로 서는 동작들을 할 땐 비틀비틀 난리가 났다. 흔들림 없이 잘 버티고 싶은 마음과 달리 몸은 후들거렸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으니까 일단 시도한 것에 의의를 두면서 계속해서 수련해야겠다. 클라이밍 할 때도 느꼈던 거지만 결국 자신의 몸에 맞는 자세를 찾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어떤 운동이든 정석인 자세는 있지만, 저마다 몸의 형태와 체력의 수준이 다 다르기 때문에 거기에 스스로를 끼워 맞추는데 너무 천착할 필요는 없다는 의미다. 정답이 있다고 상정하고 그것만을 추구하다 보면 한계를 넘어서 무리하게 되고, 오히려 몸의 균형이 깨진다. 몸의 신호를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면 결코 오래 할 수 없다.


선생님도 특정 자세를 완벽하게 구현하기 위해 지나치게 애쓰기보다는 몸의 감각을 느끼면서 가장 편안한 위치를 찾아보라고 거듭 강조하셨다. 같은 동작을 하더라도 각자 몸에 주고 싶은 자극이 다를 것이므로. 자신의 필요에 맞도록 자유롭게 움직여봐도 좋겠다는 그 말이 몸과 마음에 안정감을 주었다. 암장에서 지구력 문제를 풀 때 생각이 났다. 같은 문제를 두고도 신체 조건과 근력의 정도에 따라 푸는 방식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었는데, 그건 결국 직접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 봐야 비로소 알 수 있는 감각이었다. 달리기 역시 마찬가지. 대회가 아닌 이상, 남보다 빨리 달리는 것보다 내 속도를 알고 거기에 맞춰 다치지 않고 오래 달릴 수 있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서로 다른 운동이지만 이렇게 통하는 지점들이 있다. 분명한 것은 뭐가 됐든 자꾸 시도해 보는 수밖에 없다는 거다. 필요로 하는 힘이 무엇인지와, 내가 이미 가진 능력과 속도에 온전히 집중하면서. 내 몸에 최적인 자세와 방법을 찾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기꺼이 그 시간을 감당하기로 한다. 수련을 오늘 하루만 하고 말 것 아니니까. 길게, 멀리 보기로.


지난 5일 간 저녁 시간을 오롯이 몸을 쓰는 데 사용해보았다. 이렇게 매일 (출근하는 것 이외의) 어떤 행위를 빼먹지 않고 집중해서 수행한 것은 아주 오랜만이다. 범람하는 온갖 콘텐츠에 정신을 빼앗기는 대신 몸을 움직이자 삶이 한결 단순해졌다. 하루의 끝에 '오늘도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말았다', '완전히 소진된 것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았는데 그런 자괴감도 줄었다. 신기하게도 덜 피곤하다. 마냥 널브러져 있지 않았기 때문일까. 모처럼 나를, 몸을, 삶을 정성껏 돌보았다는 생각이 든다. 주말에도 쉰다고 너무 풀어지지 말고 적당한 수준의 긴장을 유지해야겠다. 근육이 적당히 당기면 아프거나 불쾌하기보다 기분이 좋을 때가 있다. 내 근육에 힘이 있구나, 알게 되는 순간이다. 그런 감각을 계속해서 느끼며 몸을 쓰다 보면 나도 모르게 조금씩 건강해지지 않을까? 튼튼한 어른이 되고 싶다. 한 발로도 몸을 잘 지탱할 수 있는.



오늘도 제대로 읽은 책이 없어서 옛 일기를 끄집어내 왔다. 작년 10월 29일에 쓴 일기. 지난 운동들에 관한 기록이기도 하다. 다시 읽어보니 클라이밍 정말 재밌게 했었네... 또 하고 싶다. 다시 할 날이 오기까지 기초체력 부지런히 닦아 놓아야지.


[굳은살]

다시 손에 굳은살이 박였다.


굳은살은 하루하루의 삶이 몸에 남기는 은근한 흔적. 무엇에 전념하고 있는지에 따라 굳은살이 올라오는 위치가 조금씩 달라진다. 신기하고 재미있다. 손은 몸 가운데 가장 정직한 부위가 아닐까. 대한민국에서 정규 교육과정을 밟은 사람들은 대개 오른손 중지의 첫마디 왼쪽이 툭 불거져 본 기억이 있을 것이므로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한참 검도를 할 땐 왼쪽 새끼손가락 아래, 그러니까 손가락과 손바닥이 연결되는 부분에 하얗고 동그란 굳은살이 생겼었다. 왼손으로 죽도의 병혁(손잡이) 아랫부분을 단단히 쥐어야 했기 때문이다. 운동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습관처럼 엄지손가락을 접어 굳은살 부위를 만져보곤 했다. 도톰해진 살의 감촉이 좋았다. 체력이 느는 건 눈에 보이지 않았고 체감하기도 어려웠지만 굳은살은 타격대 치기를 조금만 해도 슬쩍 손바닥 위에 자리 잡아서 내 열심을 증명해주었다. 그만큼 사라지기도 금방이어서 검도를 그만두었더니 언제 거기 있었냐는 듯 말끔히 자취를 감추긴 했지만.


기타를 배울 땐 손톱 밑이었다. 코드를 조금이라도 잘 잡아보고자 손톱을 바싹 깎은 채 기타 줄을 열심히 눌러대고 나면 손끝이 아릿해져 왔는데, 그건 또 다른 쾌감을 선사했다. 이번에는 검지부터 새끼손가락까지 네 손가락의 끝의 살이 딱딱하게 굳었다. 엄지로 툭툭 건드려 몇 번 뜯어냈더니 그만 매끈해지고 말았다. 생각만큼 팍팍 늘지 않는 실력에 시들해져서 기타를 고이 모셔둔 채로 근 1년의 시간이 흘러버린 탓이다.


실종되었던 굳은살은 세를 늘려 돌아왔다. (죽도를) 들어서 생기고, (기타 줄을) 눌러서 생겼던 것과는 또 다른 형태로. 새로 자리 잡은 서식지는 손바닥 맨 윗부분과 온 손가락 마디마디 사이다. 이번엔 쉽게 사라지지 않을 모양으로 오른손 중지 아래쪽에도 단단히 알을 박았다. 컴백 사유는 매달리기. 암장의 벽에 달린 홀드를 쥔 채 인생 최고 기록 경신 중인 내 몸의 무게를 버텨내느라 손이 고생이다. 손의 일부에 특히 힘을 주어야 했던 이전과 달리 손의 각 부위를 고루 사용해야 하기에 살이 단단해지는 면적도 광범위해졌다. 홀드의 모양도 제각각이라 움켜쥐는 방식도 매번 달라질 수밖에 없다. 벽에 붙어있다 내려오면 손은 전체적으로 빨개져있고, 손 끝이 쓰려서 지문이 미세하게 닳은 것 같은 착각이 이는 데다, 전완근은 터질 듯이 부풀어있다. (엄살 맞다. 고수로 추정되는 한 클라이머는 '아무리 미친 듯이 열심히 해도 아이폰 지문 인식 잘만 되더라'며 헛웃음을 지었다.)


고작 7분 벽에 붙어 있었다고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고 땀이 흐른다. '왜 안 끝나지. 7분이 이렇게 길었던가?' 생각할 때쯤 삑삑-삑삑- 타이머가 울리고, 그 순간 더 생각할 것도 없이 양손을 툭 내려놓으며 매트 위로 떨어진다. 그새 딴딴해진 팔을 부여잡고 (사실 클라이밍은 팔로 하는 운동이 아니다. 분명 전신 운동인데 아직 하체와 코어 근육을 잘 못쓰는 탓에 팔이 일찍 피로해지는 것이다. 팔만 잔뜩 펌핑되는 건 초보라는 증거다. 흑.) 털썩 주저앉아 다른 사람들 하는 걸 멍하니 구경하다 보면 서서히 아픔이 잦아들고 다시 벽에 달라붙고 싶은 생각이 드는데, 이때 무모하게 도전하면 그대로 힘 다 뺀다. 그러면 지구력 문제와 볼더링 문제 어느 것도 성공하지 못한 채로 터덜터덜 돌아가야 한다. 때문에 한 번 벽을 타고나면 힘이 어느 정도 회복될 때까지 충분히 쉬어야 하는데, 남은 힘을 가늠하기가 생각보다 어렵다. 성격 급하고 실패하는 걸 싫어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더더욱. 얼른 완등 하고 싶은 마음에 자꾸 불나방처럼 달려들었다가 처참히 나가떨어지게 된다.


오늘은 힘을 적당히 안배하는 데 성공한 날이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주어진 문제를 풀어냈다. 계속 떨어져서 선생님이 홀드 하나 더 내주긴 했지만. 단 한 번에 성공하는 것보다 내 신체조건에 맞는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중요한 운동이란 걸 새삼 느꼈다. 단번에 완등 해내도 뿌듯하지만 확실히 여러 번의 추락과 끊임없는 재도전 끝에 가까스로 성공했을 때의 손맛이 더 짜릿하다.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이들의 감탄과 박수는 소소한 성취감을 배가시킨다. (역시 나는 내적 관종이 맞다.) 사람들 방청객 같고 귀엽다. 떨어지면 "아아, 아깝다!" 다 같이 탄식하고, 완등 홀드를 향해 뻗은 손이 닿을락 말락 하면 "어! 거의 다 왔어요. 다 갔다 다 갔어." 응원하고, 성공하면 마치 자기가 성공한 것처럼 "나이스!" 외치며 박수를 쳐준다. 실패하고 중간에 떨어져도 "와, 방금 진짜 멋있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고, "성공할 수 있어요." 재도전의 의욕을 북돋우는 격려를 보낸다. 이렇게 볼더링 문제풀이의 중독성에 젖어든다. 선생님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비트 주세요, 대신 문제 주세요, 하는 암장 사람들.


이들과의 내적 친밀감이 대폭발 하는 순간은 따로 있다. 다 같이 플랭크 할 때다. 40초 버티고 10초 쉬기 7세트. 요가매트의 무늬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무념무상으로 버티는데 옆에서도 헉, 아악, 소리가 들려온다. 그쵸? 저만 힘든 거 아니죠? 4분 같은 40초가 일곱 번 지나가고, 타이머 어플에서 "수고하셨습니다"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그제야 다들 매트 위로 쓰러진다. 오늘도 기진맥진. 그래도 이렇게 몸을 쓰고 나면 한결 기분이 좋아진다. 하루를 온전히 살아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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