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광용 Mar 15. 2024

교사 아빠의 육아휴직 롸이프 3

치열함을 벗어나서 치열하게

9시 30분쯤, 나의 시간이 시작된다.


도서관 3층은 멀티미디어 자료실이다. 이곳은 학생이나 젊은이가 거의 찾지 않는다.


사회생활을 했었지만 지금은 쉬고 있는 사람들, 사회생활을 하고 싶은 취준생, 신문을 들춰보는 어르신들이 주로 머문다. 시간은 점잖고 느리게 흘러간다.


겉으론 평온해 보이지만, 이곳에 있는 사람들의 내면은 붉은 레인을 질주하고 있을 것이다.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잠시 멀어졌지만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나 자신을 치열하게 마주하는 시간. 누군가는 잠시 붉은 레인에서 물러나, 숨을 고르고 있을 것이다.


도서관은 오래전부터, 이런 사람들을 품어왔다. 나 역시, 그런 사람이었고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

이곳에서 나는, 읽고 쓰기로 마음먹었는데 비중으로 따지면 '쓰기'가 훨씬 높다. 뭘 쓸까. 요즘은 예전에 써둔 동화 원고들을 퇴고하고 있다.


그 이야기들은 왜 그렇게 오래 방치되어 있었을까. 예전에 이야기를 쓰면, 바로 공모전에도 내보고, 출판사에 투고도 했다. 낙선하고 몇 번 거절된 원고는 노트북 깊숙이 다시 들어가곤 했다.


그 이야기들을 꺼내 먼지를 툭툭 털고 다시 읽었을 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상태로 세상으로 나가지 않은 게 다행이구나.'

 

이야기의 균열들이 이제야 눈에 보였다. 몰입해서 쓸 때는 무엇에 취한 사람처럼 이야기가 매력적인 소개팅 상대처럼 느껴진다. 신선하고 신비로워서 빠져드는 것이다.


흥분 상태가 가라앉고 나면, 상대방의 말에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들이 떠오른다. 난 덤덤하게 이야기를 붙잡고 앉아 정비한다. 소개팅을 하는 남자가 아니라, 스패너를 든 정비공처럼.


작년 여름부터 그 작업을 계속 해왔었다. 근무, 아이 돌봄, 가사가 뭉쳐 있는 일상에서의 작업은 무척 더뎠다. 그래도 밤마다 먼지 쌓인 이야기를 끌어안고 닦고 기름칠하는 일은 즐거웠다.


휴직을 하고 매일 그 작업을 하니까, 전보다 작업 속도가 빨라졌다. 그렇지만, 순도를 더 높일 필요가 있다. 여영부영 흘리는 시간이 많다. 더더 창작의 즐거움을 누리자.


조금 더 나 자신에게 치열하자고 다짐해 본다. 단지 치열한 상황 속에 있는 것과, 스스로 치열함을 내부로 돌리는 것은 다르다. 방향을 잘 찾은 에너지는 힘이 세다. 치열하게 고독하고, 치열하게 기뻐하고, 치열하게 여유롭자.


치열한 휴식 속에서 난 회복되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교사 아빠의 육아휴직 롸이프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