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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작가 Sep 04. 2022

오늘의 멸치국수

국수를 마주하며

 국수 마니아들이 즐겨 먹는 국수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국수가 있다. 바로 멸치국수. 잔치국수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멸치국물을 베이스로 하고 소면을 같이 사용한다는 점에서는 둘 다 비슷하지만 은근한 차이가 있다. 멸치국수는 국물 맛에 더 집중하기 때문에 재료가 비교적 복잡하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빨리 나온다.

잔치국수는 국물 맛보다는 고명에 집중을 하는 것 같다. 당근, 애호박, 표고버섯, 양파... 지역이나 집안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하겠지만 일반적인 고명의 종류가 이런 것 같고. 우리 엄마가 만들어준 잔치국수도 꽤 다양한 채소들이 들어갔던 것 같다. 여기에 대파, 고춧가루, 청양고추, 홍고추, 마늘, 깨, 설탕, 참기름에 양조간장을 넣어 완성한 양념장으로 맛을 낸다.


 오늘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건 멸치국수. 우리 동네에 있는 국숫집은 오후 5시에 문을 열고 밤 12시까지 장사를 한다. 이곳의 간판은 국숫집이지만, 사실 술안주 메뉴가 더 많고 주로 회식이나 동네 사람들끼리 회포를 풀러 오는 곳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항상 혀 꼬부라진 사람들 사이에서 꿋꿋이 국수를 먹으러 간다. 가끔 떡볶이나 오징어 튀김, 김치전을 먹을 때도 있지만, 역시 국수가 진리.


 이곳의 멸치국수는 우선 양이 많다. 주인아주머니의 손이 크신 모양이다. 나는 웬만하면 음식을 남기지 않고 다 먹는 편인데, 여기서는 가끔 남긴 적이 있을 정도. 그리고 국물을 낼 때도, 멸치를 안 아끼시는지 국물 맛이 진해서 좋다. 그리고 들어가는 재료는 유부, 쑥갓, 채 썬 노란 단무지, 김가루, 깨가 끝. 처음에는 너무 간단한 거 아닌가 싶지만, 먹어보면 놀라는 맛. 이 재료만으로 이런 국수 맛이 난다고? 유부와 쑥갓이 국물에 시원한 맛을 더하는 것은 물론이고, 채 썬 단무지도 달고 짠 게 오묘한 맛이 있다. 김가루도 많이 뿌려주시는데, 소면의 밀가루 맛이 김가루랑 찰떡이랄까. 거기에 빠질 수 없는 꼬수운 깨 한 꼬집.



 봄이든, 여름이든, 가을이든, 겨울이든 이곳의 멸치국수는 나에게  위로가 된다. 벌써 나의 단골집으로 자리한  6. 원래 있던 자리에서  블록 앞으로 이사를 왔는데, 혹여나 없어질까  조마조마했던 기억이 난다. 맛집이든 미용실이든 옷가게든 나는   마음에 들면, 5년이고 10년이고 계속 다니는 편이다. 어떤 것이든 꾸준히, 성실히, 열심히 가다 보면 그곳에 애정이 깃들고, 방문할 때마다 나에게 주는 에너지가 있다. 그게 좋아서 마음이 헛헛할 때마다  국숫집에 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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