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를 마주하며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도 면 마니아들이 많지만, 이웃나라 일본도 면 좋아하기로는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든다. 대표적인 일본 요리 중 하나인 우동. 나는 우동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솔직히 말하면, 편의점에서 파는 '생생우동', '가쓰오우동'을 좋아하지, 우동 맛집을 챙겨서 찾아다닐 정도는 아니란 소리.
아! 대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 친구와 함께 갔던 일본 여행에서, 요코하마 국제여객터미널 안에서 먹었던 우동맛... 그건 진짜 너무 좋았다. 한 겨울에 먹는 우동중에 맛없는 우동이 있으랴마는, 뭔가 마음을 따땃하게 덥혔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춥고 낯선 이국땅에서 친근한 면을 먹는 그 맛이 반가웠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우동 맛여행’에 나온 일본 우동 맛집 순례도 한 번 해보고 싶다. 버킷리스트 추가요~!
한 3년 전부터 가보고 싶던 우동 맛집이 있었다. 그런데 벼르고 벼르다 7월을 며칠 안 남긴 어느 날, 회사에 휴가를 내고서라도 가봐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많이 지쳐있기도 했고, 날씨는 뜨겁지만 마음은 차가운 나를 온기 있게 덥혀주고 위로를 줄 수 있는 우동 한 그릇이 필요했달까. 그래서 한여름에 나는 합정에 있는 '교다이야'에 갔다.
전날 밤까지만 해도 좀 서둘러서 가야겠다는 마음이었지만, 모처럼 황금 같은 금요일에 휴가 낸 기분을 만끽하기 위해... 알람도 안 맞추고 게으르게 늦잠 자느라 10시에 일어나 준비하고 지하철 타고 이동하니 11:50에 가게 도착. 명색이 우동 맛집이라고 소문난 곳인데 그 시간에 나오다니, 간이 부었지.
결국 50분을 기다린 12:40에 식사를 시작했다. 근처 카페에서 30분 정도 기다리다가, 혹시 내 번호표 30번을 빨리 불러서 순서를 놓칠까 봐 후다닥 나와서 대기하는 사람들에 그제야 합류. 7월 말이었지만, 햇볕이 그렇게 뜨겁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일반 국물 우동이 아닌 비빔 우동인 '붓가케 우동'에 도전. 기대 반 초조함 반으로 기다리며, 괜히 알지도 못하는데 비빔 우동 시킨다고 까불었나, 지금이라도 국물 우동으로 바꿀까 천 번은 고민하다 드디어 나온 내 우동. 자, 그럼 맛은? 역시 미쉐린 가이드에 나올 만한 우동 맛집임을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처음엔 계란 비빈 맛이 강해서 약간 비렸지만, 한 세 젓가락 먹다 보니 다진 무와 쪽파가 비린 맛을 없애줬고, 쯔유의 맛과 향이 우동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쯔유는 나온 양만큼 부어서 다 먹었는데 나에겐 짜지 않고 괜찮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동 국물을 실컷 못 먹어서 어쩌나 하는 아쉬움과, 면발이 불까 봐 하는 걱정은 금세 사라졌다. 왜냐하면 무+쪽파에서 수분이 나와서인지 면이 붇지 않고 자박자박 잘 비벼질 만큼의 국물이 생겼기 때문! 그래서 더 맛있었다. 먹을수록 양이 줄어드는 게 아까울 정도로. 기다림은 길었지만 먹는 건 순식간! 우동 면을 직접 손으로 뽑아서 면이 탱글하고, 면발을 씹다 보면 밀의 향기가 느껴진다.
다 먹고 나니 한 그릇 더 먹고 싶어 져서 스스로 놀랐지만, 주문하려면 또 1시간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아쉽게 패스. 올겨울에 코끝이 찡해질 정도로 날씨가 추워지면, 다시 와서 카케우동도 꼭 먹어보고 싶다. 혼자 와서 두 개 주문하긴 민망하니까 이번엔 단품 말고 반드시 정식으로 주문할 것!
-합정 '교다이야' 사장님! 기분 좋은 우동맛이었어요.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장사 오래오래 해주세요:)
-우동을 먹어도 더 이상 눈물이 나지 않는 나를 대견하게 여기며. 그동안 시간이라는 약을 많이 먹었나 보다.
***제가 늘 하는 말이지만, 저는 교다이야와 아무 관련 없는 사람입니다. 정말 내돈내산으로 먹은 우동에 대한 찐에세이 임을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 맹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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