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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작가 Aug 23. 2019

오늘의 콩국수

국수를 마주하며


 십 년 전 여름, 친구와 함께 신촌에 놀러 갔다가 유명한 콩국수 집이 있다고 해서 맛이나 보자 하는 마음으로 들어갔는데, 요새 만나기 드문 그야말로 진국 콩국수였다. 할머니 두 분이 운영하시는 곳이었는데 외관은 매우 허름하고 가게 안도 비좁았지만 맛은 그야말로, 둘이 먹다 하나가 콩 국물에 코 박고 숨이 끊어져도 모를 정도로 일품이었다. 그 맛에 감복한 나는, 전라북도 정읍에서 10남매를 논 일구고 밭 일궈서 키워낸 우리 외할머니의 다섯 번째 딸인 우리 엄마 오순 씨가 해준 콩국수를 자동적으로 떠올리게 됐다.   


 엄마는 외할머니를 닮아 음식 솜씨 하나는 정말 끝내줬다. 국과 찌개요리에 웬만한 나물 무침은 기본이고 치킨이며 피자며, 쿠키며 도넛이며 사 먹이지 않고 모두 본인이 손수 만들어서 먹이셨다. 어린 내 눈에 엄마는 요리 요정처럼 보였다. 어떻게 이 많은 음식과 디저트들을 저렇게 순식간에 뚝딱 만들어 내는지, 물의 양이며 불 쓰는 방법이며, 재료들의 맛과 색의 조화까지... 엄마는 확실히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다.


 엄마의 모든 요리가 맛이 있었다. 워낙 솜씨가 좋다 보니 철마다 빠트리지 않고 먹는 별미들도 내 머릿속 리스트에 저장돼서, 때가 되면 귀신 같이 ‘엄마! 그거 안 해줘? 이 맘 때 되면 먹어야 되는데?’라고 말할 정도였다. 봄에는 제철 과일인 딸기를 떨이로 왕창 사다가 딸기잼을 만들고, 가을에는 각종 소뼈를 사다가 푹 고아서 뽀얗고 진한 사골 국을 일주일 내내 먹었고, 겨울에는 동짓날 태어난 동생의 생일을 축하하고 옛 조상들이 했던 풍습대로 악신도 물리칠 겸 항상 팥죽을 쒀서 새알도 넣고 국수도 넣어서 먹었다. 하지만, 그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했던 음식은 바로 여름철 별미인 콩국수였다.      


 엄마를 ‘절대 미각 장금이 만들어  가장  조력자는 외할머니셨다. 10남매를 모두 타지로 시집 장가보낸 , 전라도 깊은 산속 골짜기에 혼자 사시며 (실제 외할머니 집은 전북 정읍 산내면 두월리에 있다. 동네 이름부터가 정겹지 않은가) 쌀이며 김치는 물론 나물에 콩까지   열렸다 하면 죄다 자식들에게  보따리씩 바리바리 싸서 보내주셨다.


 콩국수도 당연히 외할머니가 보내주신 샛노란 메주콩을 삶아서 만들었는데, 엄마가 직접 만든 콩물은 정말 고단백 식품이었다. (요즘 여자들이 다이어트식으로 먹는 단백질 셰이크랑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자연 음료수랄까) 성인이 되어, 직장을 다니면서 사 먹는 음식에 길들여질 무렵, 엄마가 만들어주던 콩국수를 생각하며 시중에 파는 콩국수를 사 먹었을 때 그 실망감이란... 대체 물을 얼마나 섞은 건지 콩국수가 아니라 물 콩국수 같은 느낌이었다.


 어릴  엄마가 음식 만드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고 체득했으면 나도 이름 꽤나 날리는 요리사가 됐으련만, 나는 음식보다 TV 보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그래서 결국 방송작가가 됐지만) 사실 콩국수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난다.

하지만 당시 기억을 떠올려 보면, 엄마가 높은 찬장에서 흰색 보자기를 꺼내면 그게 바로 콩국수를 만들겠다는 신호였다. 메주콩을 삶아서 껍질을 까고, 믹서기가 위잉 위잉 돌아가면서 물이랑  섞어준 , 체에 밭쳐서  보자기에 넣고 조물조물 콩물을 뽑아내는 위대하고 경건한 과정. 콩물을 만들고  콩비지로는 다음  비지찌개도 맛있게 끓여주셨던 기억도 난다.


 쫄깃하게 삶은 국수에 걸쭉한 콩물을 붓고, 그 위에 잘게 채 썬 오이와 뭉툭하게 썬 토마토도 올리고, 얼음도 동동 띄워져 있었다. 콩국수 아트의 화룡점정은 엄마가 만든 거의 모든 요리에 별가루 같이 뿌려졌던 구수한 참깨로 완성. 매 식사 때마다 식탁 위에서 티격태격하던 나와 동생들도 콩국수를 먹을 때면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콩국수에 간을   설탕을  먹는 지역도 있다고 들었지만, 우리 집은 소금을 적절히 쳐서 먹었다. 밥숟가락으로   정도의 소금이면 충분했다. 약간 짭짤한 맛이 콩의 고소한 맛과 어우러져서 약간 달달한 맛도 나고 신기했다. 엄마는 남은 콩물은 그대로 냉장 보관해서, 아침 등교  우리들에게  잔씩 강제로 드링킹을 시켰다. 그러면 나는 마지못해 먹는 척했지만, 사실 우유보다 콩물 마시기를  좋아했고 학교에 갔다 돌아오면 바로 냉장고에 있던 콩물을 꺼내서 다시 마셨다. 엄마는 내가 그랬다는  아마 지금도 모를 거다.


엄마에게는  떽떽거리고 뭐든 싫다고만 대답하던 까칠하고 예민한 첫째 딸이었지만, 나는 엄마의 사랑과 정성이 가득 담긴 음식들을 먹으며 누구보다 건강하고 아름답게 자랐음을 확신한다.      

    

 지금도 그때를 기억하면서 여름만 되면 꼭 콩국수를 찾아 먹는 편인데, 얼마 전 통의동 근처에서 서리태 콩국수를 잘하는 집을 발견했다. 날이 너무 더웠고 시청에서 경복궁까지 걷느라 지친 데다, 점심이라 하기는 이른 시간이었다. 그래서 어디든 들어가서 뭐라도 먹자 하는 생각으로 들어간 집이었는데 뜻밖의 수확을 한 것이다. 맛을 보니, 국내산 서리태 콩을 직접 갈아 만들었다는 가게 한쪽의 문구가 거짓말 같지 않았다.


 어릴  먹던  노란 콩국수는 아니지만 거무튀튀한 빛을 내는 검정콩 국물에 정갈하게 담긴 메밀 , 그리고 무엇보다 참깨가루 데코레이션까지... 나의 콩국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외향에,  못지않은 깔끔하고 구수한  맛에 반한 나는 혼자 느긋하고 만족스러운 식사를 누리고 싶을 때마다 찾는 집이 됐다. 알고 보니  집은 70 전통의 역사를 가진 맛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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