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심리학 15
오래된 것들로 가득찬 도시에서의 새로움이란 건 과연 무엇일까, 어떤 모습일까. 새로움 또는 시작이라는 건 그 도시에 어떤 의미일까. 유럽의 도시를 여행할 때면 주로 오랜 세월을 지녀온 스토리와 역사가 있는 건축물과 호텔에 탐닉하곤 하지만 가끔은 우연인 듯한 필연적 발견 덕분으로 21세기적 아르누보와도 같은, 익숙하지만 낯선 새로움에 발길 마음길이 닿는다. 그 새로움이란 것은 말하자면 그 도시에서만 볼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희소성과 로컬의 매력을 듬뿍 담뿍 지닌 신생 부티크 호텔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온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 전 잠깐이나마 나만 아는 비밀처럼 간직하는 희열을 만끽할 수 있는 보너스도 함께 따라오는 싱그러운 새로움이랄까.
빈으로의 여행을 결정한 후 그리움과 설렘 사이를 오가며 하루하루를 추억과 계획으로 채워가던 어느날 운명과도 같은 발견, 아니 만남이 있었으니. 열과 성을 다해 구글이라는 망망대해를 구글링거리다 보면 한 도시의 깊은 면까지 들어가볼 수 있는데, 그건 마치 숨바꼭질하는 것 같다랄까. 그 도시만의 로컬 정보는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하고, 감도를 꽤 높여야만 제 모습을 겨우내 나타내기에 에너지 할애가 많지만, 그 수고에 대한 보상이 제법인지라 어느덧 여행을 앞두고 반드시 갖는 리추얼이 되었다. 여행과 리추얼? 더 말 할 것도 없을 환상의 짝궁이자 시너지아닌가!
싱그러운 봄의 끝자락 5월 베를린, 암스테르담, 뒤셀도르프에 이어 빈에서도 새로이 오픈 한다는 맥스 브라운(Max Brown) 7th 디스트릭트(district) 호텔 소식을 접하게 되었던 것은 여행 선물을 미리 받은 것만 같았다는 것. 각 도시마다 호텔의 분위기와 느낌이 꽤 다르면서도 맥스 브라운만의 개성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의 흔적이 역력해 더 관심이 갔다. 며칠 동안 홈페이지에서 유영하는 시간이 어찌나 즐겁던지. 마치 디지털 매거진을 탐독하듯 호텔의 이모저모에 빠져들어 갔다. 종이 잡지의 이런 저런 섹션을 읽는 듯한 흥미를 안겨주는 디자인적 요소 및 다양한 콘텐츠도 훌륭했지만, 몇몇 글만으로도 알 수 있었던 지역사회를 향한 개방성과 뻔하지 않은 접근에서 마음을 사로잡아 끄는 힘을 금세 느낄 수 있었다. 화려함으로 포장할 수 있는 소셜 미디어도 아닌 호텔 공식 홈페이지에서 누군가의 마음과 시선을 머물게 할 수 있는 힘을 지녔다면 오프라인 공간에서 안겨주는 재미와 감동은 더 크지 않을까, 라는 기대감도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오픈 기념 할인이야말로 즐거운 유영의 완벽한 피날레였음은 물론.
어쩌면 누군가의 또는 어딘가의 매력이란 건 딱 한 마디로 묘사할 수 없기에 더 묘한 것은 아닐는지. 어느 도시든 갈 때마다 새롭고 다르기에 계속 찾게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도 만날수록 다른 매력을 발산해 점점 더 빠져들게 되기도 하니 말이다. 늦은 봄 오픈한 맥스 브라운을 가을의 초입에 찾았을 때의 첫인상을 떠올려 볼까. 먼저는 자연스러움과 푸르름이 떠오른다. 처음 찾은 곳이지만 원래 딱 그 자리에 오랜 세월 존재하고 있었던 것만 같은 자연스러움이 묻어났다. 왜일까, 생각해보게 만든 첫 만남, 첫 순간의 첫 질문. 줄곧 내가 공간에 말을 걸고 질문을 건네고 손을 내민다고만 생각했었는데, 나에게 먼저 물음표를 건네준 곳이다. 잊을 수 없는 매력을 여럿 지닌 맥스 브라운이지만 이 찰나의 순간이 기억에 강렬히 남는 걸 보면 역시 최고의 추억이자 기억은 '경험' 아니겠나. 호텔이 지닌 푸르름은 단연 공간 곳곳을 채운 초록의 무성함일텐데, 맥스 브라운의 푸르름은 질서와 무질서 사이의 중간 즈음의 지점에서 완벽에 가까운 조화를 뿜어내는 자신감 가득한 기운이 감돌았다. 안쪽 깊숙이 숨어있는 비밀정원으로 향하는 복도를 뒤덮은 카펫에서조차도 싱그러움을 잃지 않는 귀여운 재치와 매력은 또 어떻고.
나만이 간직하는 비엔나스러움이란 게 있다. 그러니까 두 해 연속 다녀온 것만으로 그 아름다운 도시를 잘 안다면서 갖은 있는 척 아는 척 다 그러모아 잘난 체 잔뜩 하고 싶은, 그런 심정으로 가득한 극강의 주관적인 애정이자 의견이라고나 할까. 비엔나에서 조우한 새로움이란 건 오랜 세월을 묵묵히 견뎌온 근간의 역사와 스토리와 환경 위에 살포시 발을 올리고선 조심스레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슬며시 스며드는 어떤 현상 같더라. 그 현상이 물리적인 형태를 갖게 된다면 바로 이 공간, 이 느낌이 아닐까 하는 엉뚱하지만 재미진 상상을 해본다. 아무런 컨셉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하나씩 하나씩 몸과 마음이 반응하는 감각을 한데 모아 꿰어보게 되는 곳이다. 매력과 분위기, 심플함과 편리함, 새로움과 익숙함이 오묘한 하모니를 이루어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어느 지점엔가 어우러지는 곳. 다시 말하지만, 오래전부터 이곳에 있었던 것만 같은, 은밀한 새로움이 깃든 곳. 싱그러움과 새로움은 정말이지 언제나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