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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endy An Feb 22. 2024

도시의 맛 1

혈관에 채워지는 커피 

소크라테스는 “음미되지 않는 삶은 가치가 없다”라고 말했다. '음미하고 질문하는 삶’이 아마도 그가 후세에게 바란 전부 아닐지. 인생뿐만 아니라 여행도 음미하고 질문할수록 고유한 가치를 발견한다. 아침엔 커피와 산책을, 한낮엔 도시의 풍경과 사람을 또는 건축을, 해 질 녘 즈음엔 망중한을, 그리고 밤엔 음식과 와인의 맛과 향을 음미한다. 아, 밤을 더 충만하게 채우는 음악을 빠트릴 순 없지. 음미하고 만끽하는 시간의 틈새로 새어 나오는 생각과 질문을 붙잡고 수집한다. 여행은 내 영혼에 수많은 질문을 건네고, 열과 성을 다해 그 질문에 답하는 여정이다. 관심과 애정을 갖고 물을 수록, 자주 묻고 많이 물을 수록, 내 영혼은 여행을 향해, 삶을 향해 마음을 연다. 내게는 질문하는 여행의 여정을 여는 중요한 질문이 하나 있다. “지금, 여기에서 나는 ‘왜’ 행복한가?” 틈날 때마다 묻고 답하다 보면 여행은 발견과 가능성으로 가득 채워진다.


여행할 때마다 행복 수치를 최고치로 기록하는 시점이 있다. 두 번째 날 아침 여행의 첫 커피를 음미할 때가 바로 그때. 반드시 ‘두 번째 날 아침’이어야 한다. 수많은 여행의 날들 중에서 여전히 최고의 순간이다. 정성스레 찾고 엄선한 커피하우스에서 여는 아침이라면 금상첨화다. 시간이 유한하기에 여행과 인생이 애틋하고 아름답지만, 이때만큼은 여행의 시간이 영원할 거라는 착각에 빠질 수 있다. 시간의 무한성을 느껴보는 0.1초 찰나의 기쁨이다. 단연 커피의 공이 크고도 크다. 그윽한 커피 향이 코끝에 닿아 온몸에 퍼지는 순간 모든 것을 더 선명하게 감각한다. 나와 여행의 관계가 우아하게 시작되는 기분이다. 커피잔과 받침이 부딪히는 소리는 멜로디가 되어 공간을 채운다. 몽글몽글한 우유거품이 혀에 닿는 순간 실크처럼 미끄러지며 따스하게 목을 에워싼다. ‘오늘 나는 여행자’라는 새삼스러운 정체성 확인은 감동과 설렘으로 이어진다. 경쾌한 상념에 빠져들며 그윽이 허공을 응시한다. 마음이 안온하다. 다시금 여행을, 여행하는 나를 찬미하며 못내 감격한다. 


나는 정말이지 ‘여행의 아침' 예찬론자다. 일상에서는 아침잠이 많고, 딱히 아침에 주의집중이 뛰어난 편도 아니다. 그런데 대체 어떤 힘이 나를 구동하는지는 몰라도 여행의 아침마다 벌떡 일어난다. 눈을 뜨자마자 호기심이 발동하고 모든 것을 느끼고 싶은 욕망이 차오른다. 다만 말과 행동이 원체 느린 덕분에(?) 느긋하게 여유를 부릴 수 있으니 이럴 때면 느림은 축복이다. 여행의 아침과 커피가 주는 그 희열의 정체는 과연 뭘까. 여행을 매분매초 인식하고 있으니 모든 감정체계도 여행에 주파수를 맞춰 돌아가기 때문인지도. 수많은 질문에 호응하며 여행해 온 동안 건진 나만의 발견은 ‘답이 없는 문제를 푸는 즐거움’이다. 정해진 답이 없으니 생각과 계획, 기대와 예상이 어디로든 뻗어나갈 수 있다. 열린 질문에 자유롭게 답하다 보면 여행을 향해, 나를 향해 그리고 도시를 향해 마음이 활짝 열리기 시작한다. 


‘당신에게 여행은 무엇인가?’

‘오늘의 여행은 어떻게 펼쳐질 거라 기대하는가?’

‘오늘은 어떤 페르소나로 여행을 하고 싶은가?’ 

‘여행하는 동안 나 자신에게 가장 기대하는 건 무엇인가?’


기억 속 여행의 모든 아침을 소환해 보니 보석 상자 뚜껑을 연 마냥 눈부시게 빛난다. 각자의 빛깔과 각자의 존재의 이유로 서로 다른 매력과 가치를 지닌 보석처럼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추억이다. 불현듯 아이디어 하나가 뇌리를 스친다. 추억 속 여행의 아침을 재현하는 리마인드 여행을 해보면 어떨까? 다시 만난 도시, 다시 만난 카페, 다시 만나는 ‘나’는 과연 어떤 모습일지. 남들 다 하는 천편일률적인 기념 말고, ‘나만 알고 있는 걸 기념하는 나’ 멋지지 않은가. 상상 속 장면에 나를 넣어보니 짜릿하다. 삶이여, 부디 내게 리마인드 여행의 기회를 허하소서! 여행의 아침에 커피 한 모금을 들이켜고 나면 어디에서든 무엇이든 해볼 만하겠다 싶은 자신감을 한 모금 마시는 기분이다. 일상에서의 커피는 주로 전투를 준비하는 마음가짐과 결을 함께 한다면, 여행의 커피는 친구이고, 위로이자 역설적이게도 비타민이다. 


아침마다 정신은 깨워주고, 마음은 다독여주는 커피 덕분에 아침 풍경 속으로 스며들어 본다. 로컬 사람들의 분주한 아침 루틴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있는 듯 없는 듯 조심하는 몸가짐과 마음가짐이 포인트. 세수는 생략해도 매너는 지키는 여행의 아침 꽤 매력 있다. 몰골의 추레함은 모자가 지켜주니까. 도시와 짝을 이루는 커피를 마실 때 유독 더 맛있고 특별한 건 왜일까. 여행 후 찾은 연결 고리지만 도시와 커피는 제법 그럴듯하게 한 쌍을 이룬다. 이를테면 바로 이런 것이다. 빈과 멜랑즈, 베를린과 플랫화이트, 암스테르담과 카페라테, 파리와 알롱제, 코펜하겐과 드립 커피, 뉴욕과 리어카 커피, 로마와 에스프레소 그리고 호텔과 캡슐커피. 도시와 커피 이름을 짝지어 부르기만 해도 환상의 짝꿍 느낌이 물씬 난다. 온갖 커피맛을 상상하느라 입안은 몽글몽글해지고 코끝은 벌렁 거린다. 


여행의 아침 커피 순례길은 1차로 끝나지 않는다. 그럴 수 없다. 여행자의 여유가 만만치 않을뿐더러 카페인과 알코올 섭취를 향한 일말의 양심도 휴가를 누려야 마땅하다. 많이 걷고, 많이 웃지 않나. 무장해제 연중행사로 커피와 술은 혈관을 타고 흐른다. 가히 축제다. 아침부터 축제 분위기를 누리고 즐겨온 내 모든 여행에 축배를! 아직도 거의 모든 여행의 아침과 커피를 생생히 기억하지만 유난히 남다르게 추억하는 코스가 있다. 이른 아침 벼룩시장으로 향하기 위해 커피도 마다한 채 열심히 빈의 거리를 걷던 중 가을비가 예고 없이 내리기 시작했다. 비는 달갑지 않았지만 빗속에서도 이미 활기를 띠고 있는 빈 사람들 덕에 덩달아 신나는 시장 구경을 하고는 카페 슈페를(Cafe Sperl)로 향했다. 가본 적 없지만 오매불망 그리워했던 그곳. 제시와 셀린의 대화가 무르익으며 사랑이 싹텄던 그곳.

영화 비포 선라이즈를 스무 번 정도 본 긴 세월 동안 오직 카페 슈페를만을 꿈꿔왔다. 영화의 중반부를 지나가는 시점에 카페 슈페를의 전경을 무려 5초 동안 보여주는 지점이 있다. 몇 번을 멈추고 다시 봤는지 모른다. 5초가 지난 후 영화는 제시와 셀린은 잠시 잊어도 좋다는 듯 카페의 곳곳과 사람들을 비쳐준다. 남녀가 거친 숨소리와 함께 주고받는 독일어는 왠지 로맨틱하다. 장면 속 테이블마다 각양각색의 분위기가 흐른다. 열띤 대화를 나누고 있는 그룹, 홀로 책을 읽고 있는 사람, 여행하는 중인 듯한 커플, 함께 카드놀이를 하고 있는 친구 사이, 에곤 쉴레와 오토 바그너를 언급하며 아마도 예술을 논하고 있는 듯한 두 노신사들 사이로 뛰어들고 싶었다. 여전히 영화 속 카페 슈페를 장면은 나를 끌어당긴다. 다만 이제는 비 오는 어느 가을날 아침 멜랑즈를 마시며 몸과 마음을 녹였던 여행의 추억이 더 영화 같다. 


때때로 멜랑즈가 그리운 건지 빈이 그리운 건지 모를 향수에 젖어들곤 한다. 빈에서 멜랑즈를 마시며 하루를 열었던 그 순간이 그리운 게 정확하겠다. 빈에서 커피를 마신다는 건 맛과 향을 초월하는 무언가를 느끼는 일이다. 300년의 전통성에서 비롯된 커피하우스의 고아한 멋이 빈 곳곳에 흐르고 있다 보니 문화와 역사를 마시는 기분이 든다. 커피를 마시는 동안 철학과 정신을 가다듬게 되고, 자세를 고쳐 앉게 된다. 잔잔히 커피를 음미하고 있노라면 모차르트나 클림트가 문을 열고 들어와도 놀라지 않을 것만 같다. 클래식한 공간과 역사가 버무려준 감성과 영감 때문 아닐는지. 오스트리아 빈에 처음 커피가 소개된 게 무려 1638년이라고 하니 비에니즈들에게 커피는 문화이자 역사이기에 앞서 영혼의 단짝이리라. 여행자인 내가 날마다 멜랑즈에서 위안을 얻고 안식을 찾을 수 있었던 건 살아 숨 쉬는 빈 커피 문화의 전통과 품격 덕분이었던 것이다. 


카페 슈페를의 아침은 평화로웠다. 동네 어르신들의 빛나는 백발, 이따금씩 나는 신문 넘기는 소리, 조곤조곤 대화를 나누는 목소리가 공간을 다정하게 채우고 있었다. 높은 천장과 황동 샹들리에, 아치형 창문에 드리운 두꺼운 실크 커튼과 어두운 빛깔의 목재 벽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우아하기 그지없다. 화려하고 복잡했던 바로크 양식의 흔적 위로 세월이 쌓여 만들어낸 특유의 아늑한 공기가 감도는 곳이다. 은빛 쟁반과 웨이트리스의 백발이 부딪혀 아침 햇살처럼 빛난다. 쟁반 위 카페 슈페를 전용잔에 채워진 멜랑즈와 물이 담긴 잔과 각설탕 그리고 물 잔 위에 뉘어진 티스푼은 한 폭의 정물화다. 이 작품을 담아낸 스마트폰 속 사진은 볼 때마다 관조하게 되는데 일종의 명상 같기도 하다. 아침의 첫 커피 멜랑즈의 완벽한 따스함과 부드러움이 사랑스럽다 못해 감동적이었다. 아무것도 아닐지 모를 순간에도 감각을 열어두고 깨워둔 나 자신이 감동스러웠던 건지, 궁극의 맛과 텍스처로 환희를 안겨준 멜랑즈에 감동한 건지는 여전히 알 길이 없다. 


멜랑즈는 카페라떼보다는 부드럽고, 카푸치노보다는 녹진하다. 에스프레소와 우유의 비율이 정서 차원에서 완벽하다. 어느 쪽도 존재감을 강하게 주장하지 않으면서 입안에서 합쳐져 매끄럽게 목을 타고 흐른다. 역사의 세월과 진화의 여정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연륜의 맛이자 진정한 빈의 맛이다. 19세기 커피하우스에서 보낸 여행의 아침은 영화보다도 더 영화 같더라. 정취와 운치에 취해 여운이 당최 사그라들지 않아 계획대로, 욕심대로 2차 커피 순례를 이어갔다. 7분 남짓 걸어 도달한 곳은 20세기 커피하우스 카페 카프카(Cafe KAFKA). 프란츠 카프카를 오마주한 곳일까 호기심이 발동해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사람이 1880년에 문을 연 19세기 카페에서 아침을 깨우고 나서, 1908년 문을 연 20세기 카페로 이동해 2차 커피를 마시는 여행 어떤가. 시간 여행을 기획하고 스스로를 초대해 보시라. 


카페 카프카로 들어선 순간 흑백 포스터 속 프란츠 카프카와 눈이 마주쳤다. 해진 회색 벽은 온갖 예술 공연 포스터와 미술관 포스터로 가득하다. 누군가의 거친 크로키와 흑백 사진이 기이한 기운을 뿜어내며 높은 벽의 구석을 채우고 있다. 보헤미안의 자유분방한 예술적 공기가 흐른다. 연륜보다는 젊음이 묻어나는 공간이다. 문학가나 연극인들이 쉴 새 없이 드나들며 수많은 창작을 했을 것만 같은 힘이 카페를 지탱하고 있는 듯했다. 한편으로는 힘과는 상반되는 불안정함과 고독감이 느껴졌다. 카프카 작품 속 인간의 고독과 실존에 대한 불안이 공간에 묻어난 것처럼. 그의 소설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기묘한 감응이 일어났다. 찬찬히 둘러보며 무언의 시간을 가져보니 비밀을 벗겨내고 실마리가 풀리는 재미가 있었다. 담배도 팔고, 술도 팔고, 흡연이 가능하다. 오전 8시에 열고 새벽 2시에 닫는다. 빈의 젊은 예술혼들을 다 불러들이는 곳인가. 밤이 궁금해지는 곳에 아침에 와있노라니 흥미로웠다. 자유와 젊음도 팔고 있을 것만 같더라. 저기, 하나 살 수 있을까요? 


19세기 멜랑즈 맛의 여운을 봉인하고픈 마음에 카페 카프카에선 카푸치노를 마셨다. 또다시 펼쳐지는 은빛 쟁반 위 한 폭의 정물화에 마음이 사르르 녹는다. 강배전 한 원두의 고소한 향과 묵직한 쓴 맛이 혀를 강하게 덮는다. 슈페를의 멜랑즈가 우아한 빈의 맛이라면 카페 카프카의 카푸치노는 19세기말 새로운 예술 운동이 부흥했던 진보적인 빈의 맛이랄까. 카푸치노를 한두 모금 마시고 있자니 혈관에 예술혼을 불어넣는 기분이었다. 어두운 실내 중앙에서 반짝 거리며 빛나고 있는 노란 샹들리에가 마치 연극 무대의 스포트라이트 같은 건 기분 탓이었을까. 그쳤던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하니 빗소리는 자연스레 배경 음악이 돼주었다. 그렇다면 나는 글감을 찾아, 영감을 찾아 매일 같이 카페 카프카를 드나드는 무명작가 역할을 맡아볼까나. 누군가의 운명적인 만남을 혹은 세계적인 작품 탄생의 순간을 훔쳐보며 열광적으로 글에 담는… 아니, 지금 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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