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endy An Jun 13. 2024

숲에서 여는 하루라니, 호수에 뛰어드는 강아지라니

숲과 공원 예찬

여행자에게 ‘아침’은 각별하다. 여행의 모든 순간이 우열을 가릴 수 없이 소중하지만 아침의 시간은 특별하다. 여행의 ‘다음 날’은 늘 설렘을 동반하기 마련이니 더욱 그러하다. 아침마다 눈을 뜰 때면 거의 자동 반사 격으로 모든 게 리셋되는 기분이다. 새날 새 기분을 장착한다고나 할까. 아침잠이 많은 편인지라 주로 알람에 의존하는 일상과는 사뭇 다른 날들이 펼쳐지는 여행의 하루하루가 참으로 흥미진진하다. 날마다 필요 이상으로 많이 걷는 덕분인지, 저녁 식사에서 깊은 밤까지 이어지는 술과 감탄 때문인지 평소보다 일찍이 잠에서 깬다. 피로와 행복감이 뒤섞인 숙면을 취한 고로 기대 이상으로 맑은 정신과 또렷한 눈동자로 아침을 맞이한다. 혹 이 상쾌함과 즐거움이 가짜는 아닐지 두 눈을 이마 쪽으로 더 치켜뜨며 괜히 한 번 더 확인한다. 숙면의 가치를 이토록 절실히 깨닫는 것이야말로 여행의 순기능 아닐는지.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주에 이르기까지 하루를 좋은 기분과 설렘 또는 호기심으로 시작한다는 건 축복이다. 이 축복이 축복이라는 걸 인식하고 감사하게 된 건 전적으로 여행 덕분이다. 시작이 다르면 끝도 다를 수밖에 없다. 중간중간 기분이 탈선하고 뜻밖의 변수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그건 또 여행의 묘미이니 결론적으로는 버릴 날이 없다. 사고와 감정에도 귀소 본능이 있다고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하루를 시작한 무드가 ‘좋은 기분과 감사’였다면 잠시 트랙을 벗어날지언정 출발선으로 돌아올 테니 말이다. 여행에서 이성과 논리는 잠시 내려놓는다. 일상에서 얼마나 이성적이고 논리적인가에 대한 평가도 일단 버린다. 가성비와 가심비로부터도 자유롭기로 마음먹는다. 대신 ‘감성과 비논리, 비효율’을 전적으로 추구한다. 때로는 불편을 부러 감수하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여행 속 매일의 아침은 그 자체로 새롭고 소중할 수밖에.


일상에서는 그다지 달갑지 않은 ‘예측불허’의 순간들이 여행에선 반대로 달콤하다. 물론 감당이 가능한 수준의 예측불허를 희망하지만. 사회적 합의에 의한 질서와 규범에서 살짝 벗어나는 해방감도 달콤한 기분에 한몫한다. 물리적으로 질서를 흐트러뜨리는 일을 하진 않지만(겁이 많음), 정신적으로 느슨해지는 기분은 환영하며 만끽한다. 어쩌면 여행의 관건은 그 느슨함의 순간에 찾아드는 최고의 기분을 최대치로 누리는 게 아닐까 싶다. 여행지나 호텔에서 먹는 조식이 유난히 좋고 맛있다는 이유로 국내외 근거리로 자주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을 적잖이 목격한다. 격하게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다. 평소에는 아침을 안 먹어도 여행만 가면 조식을 부지런히 챙겨 먹게 되는 심리는 과연 뭘까. 공기의 맛인지 새로움의 맛인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 뭔가 다르고 특별하다. 별반 다를 거 없다, 무엇이 특별하단 말이냐,라고 물으신다면 반박 증거를 내놓으시라. 단 한 번도 이 특별함을 느끼지 않았다고 가슴에 손을 얹어 보시라. 의문의 1승! 


여행의 아침이 경험과 추억으로 쌓일수록 ‘빛나는 아침을 위한 노하우’도 제법 쌓인다. 여행의 시간 중에서 아침은 내게 어떤 의미와 가치를 가지며, 나라는 여행자는 아침에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원하며, 그 시간을 어떻게 쓰기를 바라는지를 세밀하게 관찰하고 발견한다는 의미다. 이런저런 생각과 시도의 스펙트럼 안에서 줄타기와 널뛰기를 몇 차례 하다 보면 최적의 조합을 찾을 수 있다. 그 조합은 여러 번의 수정과 보완 등을 거쳐 변화의 시기를 지나 무르익는다. 내 여행 속 변천사를 한번 들여다볼까. 주로 홀로 여행하던 시절엔 일찌감치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미라클 모닝에 버금가는 시간을 보냈다. 평소엔 안 하지만 여행만 가면 하고 싶은 조깅을 향한 욕망을 참지 못해 부러 챙겨 온 운동복을 입고 짐(gym)으로 혹은 길거리로 뛰쳐나갔다. 달리는 게 좋았을 리 만무하다. 낯선 도시에서 달리는 나를 느끼고 싶었을 뿐. 귀엽다고 해두자. 해봤기 때문에 과감히 버릴 수 있었다. 


얼마간의 귀여운 시기를 지나 스스로를 어른이라 느끼기 시작한 시점부터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창문을 열고 하늘과 바깥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며 커피를 찬찬히 마신다. 읽다 만 책을 펴고 느릿느릿 읽는다. 문득 떠오른 멋진 생각이나 찰나의 환희를 노트에 끄적여본다. 오늘의 계획을 상기하기 전 순식간에 지나가는 ‘영원의 느낌’을 음미한다.  그럴 리 없지만 여행이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은 아름다운 망상이 찾아오는 찰나는 다름 아닌 어느 날의 아침이기 때문이다. 그 순간을 더 붙잡고 싶은 염원을 담아 욕조에 뜨끈한 물을 가득 받는다. 배쓰밤이 물속에서 소용돌이치며 녹아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덧없는 인생,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관하여 생각해 본다. ‘일단 오늘을 살아보자, 그러면 알게 될 것이다’라는 다소 허무한 결론에 다다르지만 뻔한 생각에서 진리를 발견한 듯한 쾌감이 잠깐 스친다. 나쁘지 않다. 


나지막한 볼륨으로 에디 히긴스 트리오(Eddie Higgins Trio)의 앨범을 듣는다. 몸과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린다.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의 마음 상태가 된다. 여행에 이보다 더 좋은 마인드는 없다. 물이 찰랑거리며 어딘가로 흘러가듯 내 마음도 찰랑 거리며 편안하게 흘려보낼수록 여행이 윤택하다. ‘내 마음에 무엇이든 들어올 수 있고, 무엇이든 빠져나갈 수 있으며, 무엇이든 지나갈 수 있다’는 전제와 여유가 탄탄한 두 다리보다 중요할 때가 있다. 여행 중 시시각각 쏟아져 나오는 생각, 시시각각 비집고 들어오는 생각과 감정이 무엇이든 우선 기꺼이 받아들여본 다음 너무 에너지를 쓰지 않는 선에서 필터링을 한 후 또 기꺼이 버려보자. 그러고 나면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어쩌다 한 번씩 나 자신에게 놀라기도 한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할 줄 안다고? 내가 이렇게까지 감정을 붙잡고 또 놓아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라는 독백과 함께. 


어른이 되었다고 느꼈던 그 시점을 돌아보면 딱히 어른이 아니었던 것 같다. 성장통은 인생에서 한 두 번이면 끝날 줄 알았지만 어림없는 생각이었다. 이 깨달음에 도달한, ’ 진짜 어른이 된 건가’의 시기에 접어들고 나니 어느새 수년간 연인과 함께 여행하고 있더라. 삶에서 마주한 큰 변화와 도전이었고, 성숙과 발견의 시간이었다. 서로에게서 수많은 ‘다름’을 발견하고, 마주하고, 조율하고 배려하며 만들어낸 우리만의 아침 리추얼이 있다. 서로의 컨디션을 간단히 확인한 후 대충 입은 다음 모자를 쓰고 나가는 것이다. 양치는 하지만 세수는 안 하는 게 은근한 규칙이다. 잠을 완전히 깨우고 나가서도 안 된다. 서서히 잠을 깨우면서 이성이 끼어들기 전 순수한 감각으로 감탄을 많이 해두어야 한다. 세수도 안 한 채로 나가면 무엇이 있는가 하니, 7시부터 문을 연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커피 맛집이 있고, 고요한 뒷골목과 생기 가득한 거리가 있다. 뿐만 아니라, 조금만 걸어 나가니 공원이 있고, 호수가 있고, 대자연 못지않은 숲이 있었다. 의도와 설계를 다분히 심어 만든 여정이긴 하지만. 


친구 부부가 살고 있는 도시 에인트호번에서 머물던 동안 잊을 수 없는 ‘아침의 숲’을 만났다. 숲의 정확한 이름은 필립스 더 용 반델 파르크(Philips de Jongh Wandel Park)이지만 부르기에 너무 먼 당신이여. 아침을 여는 산책을 한 곳이기도 하고, 웅장함과 아름다움에 압도당한 강렬한 추억이 깃든 곳이기도 하니 애칭을 붙여 불러본다. 하늘로 치솟은 나무들은 그 키를 가늠할 수조차 없었고, 우거진 숲은 거친 모습과 정돈된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며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매력을 내뿜었다. 바로 뛰어들고 싶은 혼돈이라는 게 만약 있다면 이 풍경이 아닐까 생각했다. 수목이 울창한 숲 사잇길을 수북하게 쌓여 있는 낙엽과 나뭇잎, 나뭇가지를 밟으며 걷자니 이름 모를 감정이 벅차올랐다. 태양이 기지개를 켜고 있는 이른 아침의 청명함과 짙은 녹음의 에너지가 뒤에서 나를 밀어주는 것도 같고, 앞에서 나를 끌어당기는 것도 같았다. 


온갖 푸르른 것들의 고요에 둘러싸여 맑고 깨끗한 공기 속에서 들숨과 날숨으로 자연과 교감하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교감이라 할 만큼 내가 자연에 내어준 게 있었던가 싶어 머쓱 고개가 숙여진다. 숲에서 여는 하루라니,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있을까. 세수 안 했는데 물보다 더 깨끗한 공기로 세수한 기분이었다. 자연은, 특히 숲은, 다양성과 포용의 세상이다. 어느 하나 똑같은 게 없다. 다르다는 것 그리고 다양하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것만 같다. 이제 막 하루를 열었을 뿐인데 충만 지수가 상당 채워진 바람에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더 바랄 게 없는 마음이 되어 ‘오늘은 이미 완성됐다’라는 완결형 감정이 밀려왔다. 그런데 친구 미현의 큰 그림은 더욱 심상치 않았던 고로 완성형 하루가 계속 업그레이드되는 마법 같은 날을 보냈지만 말이다. 기다리고 있던 오후의 일정이 고흐의 해바라기 밭과 사과 농장에서 갓 짠 사과주스를 곁들인 네덜란드 식 팬케이크 브런치와 그림보다 더 그림 같았던 도시 유트렉이었다는 후문이. 


암스테르담에서 무려 4일 동안 맹렬한 리스네스(Lisness = business + leisure)의 시간을 거뜬히 보낼 수 있었던 건 단연히 호수 공원의 공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컨셔스 호텔 본덜 파르크(Conscious Hotel Vondel Park)에 머무른 결정 덕분이었다. 호텔을 향해 부리고 싶은 욕심을 (웬일로) 내려놓고, 아침마다 호수 공원으로 5분 만에 달려가려는 심산이었다. 눈곱만 겨우 떼어 내고 미명의 빛을 따라 얼마간 걷다 보면 기골이 장대한 공원이 나타났다. 동네 몇 구역은 집어삼킬 듯한 규모의 공원은 흡사 거대한 숲의 풍경이었다. 서울보다 해가 늦게 뜨는 듯한 어느 가을날의 이른 아침, 이슬이 내려 반짝이는 광활한 잔디밭을 정처 없이 걸었다. 끝없이 펼쳐진 듯한 잔디 위를 신나게 지그재그로 걷다 보니 푹신한 흙 길이 나타나는 거 아닌가. 


거대한 나무에 기대도 보고, 목 줄 없이 산책하는 강아지들의 산뜻한 몸짓을 구경도 하면서 ‘자유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강아지도 숨기지 못하는, 저 자유를 향한 순수한 기쁨을 나는 언제, 어떤 환경에서 느끼고 누리는가를 생각해 본 것. 생각을 시작하기가 무섭게 마음속으로 읊조렸다. ‘여행,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순수한 기쁨이여!’. 연극 무대의 마지막 막이 열리듯 드디어 호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해가 달처럼 수면 위에 비쳐있고, 곁에 있는 나무와 풀들이 일렁거리는 호수 덕분에 잠에서 깨어나고 있는 듯했다. 대오를 맞추며 유유히 지나가는 오리 무리를 호수의 이편저편마다 만날 수 있었다. 자연이 그들을 잠들게 하고 자연이 그들을 깨우는 걸까. 숲과 오리와 새들의 아침을 깨우는 소리는 무엇일까 생각하며 오리 무리와 속도를 맞춰 걸었다. 느림보 산책이 따로 없었지만 해보길 잘했다. 내 속도대로 하는 게 진정한 여행이겠지만 여행 속에서 잠시 내 속도를 버려보는 것도 썩 즐거운 일이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다시금 무념무상이 되어 그저 걸었다. 얼마간 걷다 보니 다시 눈앞에 펼쳐진 넓은 들판을 마주한 순간 속이 시원하게 뻥 뚫렸다. 푸른 들판과 호수와 수목과 오리와 강아지와 흙 길. 더 욕심을 낼 수 있는가 말이다. 오늘 하루를 향한 기대와 이미 과다 충전된 만족감에 입꼬리가 수직 상승했다. 그런데 그 순간, 검정 리트리버가 어디에선가 전력 질주를 해오더니 조금도 주저치 않고 호수로 뛰어드는 광경이 펼쳐졌다. 해돋이를 본 것보다 몇 배는 더 행복했다. 이 친구는 혹 아침마다 호수 수영을 즐기는 삶을 살고 있는지 직접 묻고 싶더라. 왠지 리트리버는 물어보면 어떤 식으로든 답을 건네줄 것만 같아서 말이지. 


마침 우리의 맞은편에서 그 광경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유모차에 태운 아이와 함께 아침 산책을 하고 있는 아빠였는데, 나도 모르게 그가 리트리버의 주인이겠거니 싶어 “모닝 스위머!”라고 한마디를 뱉어 버렸다. 그는 미소로 화답했지만 이어서 “제 강아지가 아니에요. 어디선가 달려왔어요.”라는 거 아닌가. 우리는 모두 함께 미소를 짓고는 수영을 즐기는 건지, 자유를 만끽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사랑스러운 리트리버를 하염없이 바라봤다. 저 멀리에서 또 다른 흰 강아지와 함께 누군가가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가 시선에 포착됐는지 리트리버는 금세 호수에서 나와 시원하게 몸을 한 번 털고는 그녀에게로 달려갔다. 진심으로 결심했다. 오늘을 잊지 않을 것이며, 오늘 만난 리트리버처럼 살겠노라고. 문자적으로 아침 수영 말고, 상징적으로. 그렇다면, 내게 아침 수영은 과연 무엇이 될까?

매거진의 이전글 기꺼이 감수하는 불편함이 매력으로 화답할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