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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endy An Sep 19. 2024

오래된 아름다움에 대하여, 호텔 펜션 풍크

펜션 풍크(Pension Funk), 베를린(Berlin), 독일 

유럽의 도시들을 사랑하는 여러 이유 중 하나는 모퉁이만 돌면 한 세기를 거슬러 올라가는 여행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순식간에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여행이 시작된다. 동쪽 미테 지구에서 서쪽 쿠담 지구로 옮겨 가니 베를린 속 또 다른 베를린을 만날 수 있었다. 번화가를 지나 작은 길로 들어서니 믿을 수 없이 한적한 거리가 마치 날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반겨주는 것만 같았다. 바로 거기에서 오래된 아름다움을 지닌, 우아한 베를린을 만났다. 동네 이름도 어쩜 이리 아름다울까, ‘샤를로텐부르크(Charlottenburg)’.  세월의 무게를 견디어 낸 견고한 아름다움이 그대로 간직된 모습이란 게 바로 이런 거구나를 새삼 느꼈다. 19세기의 낭만적 분위기와 고아함을 한껏 머금은 곳, 숨겨진 보물 같은 곳, 호텔 펜션 풍크(Pension Funk)와 마침내 조우했다. 


오래된 것에는 신성함이 깃든다. 어떤 역사와 이야기가 공간에 서려 있을지 마음껏 궁금해하게 된다. 나만의 상상의 타래와 이야기의 진실이 만날 때 호기심과 감정은 증폭된다. 호텔 펜션 풍크가 자리한 이 건물은 1895년에 지어졌다고 한다. 내 키의 곱절이나 됨 듯한 둔턱 한 목재문을 열고 들어서니 영화나 책에서 봄직한 19세기말 아르누보풍의 고풍스러움이 펼쳐졌다. 공기마저 100년의 세월을 머금고 있는 것 마냥 어떤 기운이 감돌았다. 높은 층고와 레드 카펫이 깔려 있는 대리석 계단을 마주한 순간 내가 여행자라는 사실을 잠시 잊었다. 비밀스러운 파티에 초대받은 것 같기도 하고, 우연히 시간 여행에 성공해 만년의 괴테를 만나게 되는 건 아닌가 싶을만치의 설렘과 흥분이 혈관을 타고 흘렀다. 어딘가 신비롭기까지 한 그 희열과 짜릿함은 나이가 120세쯤 되었다는 19세기 엘리베이터를 조우한 순간 절정에 다다랐다. 


만지고 싶은 욕구야말로 인간의 근원적 욕구 중 하나다. 빛바랜 검정 철제 엘리베이터 문을 만지고 또 만졌다. 조심스레 그리고 천천히. 엘리베이터는 원한다고 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크디큰 열쇠가 있어야 문을 열 수 있고, 문을 열고 나서 다시 열쇠를 넣고 돌려야 가동할 수 있다. 19세기 엘리베이터를 타고 1.5층인 듯한 한 층을 올라가려니 놀이동산에서 놀이기구를 타는 것만 같았다. 살아본 적 없는 저 먼 과거의 시대를 향한 로망이 실현된 듯한, 이상야릇한 기시감이 들었다. 펜션 풍크에 입성하려면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하나의 의식’으로 디자인한 건 아닐지. 의도가 다분히 반영된 호텔 입성 여정에 나는 기꺼이 감성과 감동을 바쳤다. 그리 아니할 방도가 없었다는 게 더 정확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표현은 적지만 감동에 있어 나는 유난스러운 편이다. 여행에서는 온갖 것에 쉽게 감동한다. 긴 여운이 감도는 장면과 순간에 대해서는 여행을 마치고 나서도 한동안 계속 생각하고 이야기한다. 


어쩌면 내가 잊고 싶지 않은 건 장면 자체라기보다는 ‘그 순간의 나’인 거다. 성심성의껏, 진심으로 감동하는 여행 속 나를 그리워하는 거다. 물론 일상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은 나라고 생각했지만 차이는 제법 아니 분명 존재한다. 여행은 여행이고, 일상은 일상이니까. 나도 별생각 없이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이라고 외쳤던 적이 있었다. 내면에서 비롯된 내 생각이 아니기 때문에 어색했고, 여행의 시간이 쌓일수록 생각이 달라졌다. 여행에선 더 철저히 이방인이자 여행자의 태도를 견지할 때 마음도 편하고 관찰자 모드를 더 유지할 수 있었다. 일상은 대체로 그저 일상이고, 이따금씩 여행의 순간과 비슷하거나 또는 색다르게 즐겁기 때문이다. 타이밍이 절묘하게 들어맞을 때 여행에서 최고의 일상을 보내기도 하고, 일상에서 여행 같은 순간을 만나기도 한다. 이젠 안다. 어느 쪽이든 감사할 일이란 것을. 그리고 그게 삶의 흐름이라는 것도.


호텔 펜션 풍크는 홈페이지도 제대로다. 의미인즉슨,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는 것. 홈페이지 내 환영 메시지를 보면 ‘1920년대 베를린 황금기’의 분위기를 재현했다고 하면서 ‘시간 여행’을 떠난 듯한 경험을 선사한다고 되어있다. 아울러, 체인 호텔과는 달리 ‘차별화된 따뜻한 정과 개성 넘치는 분위기’로 고객님을 맞이한다고 되어있다. 그 ‘정과 개성’은 펜션 풍크 곳곳에 배어 있을 뿐만 아니라 눈치채지 않을 수도 없고 모른 척할 수도 없다. 오랜만에 변신을 한 홈페이지를 보며 ‘말한 대로 지키는 호텔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직접 느끼고 목격한 차별화된 따뜻함과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개성이 여전히 그립다. 모순적인 표현이지만 호텔 펜션 풍크는 작지만 웅장하고, 아늑하지만 우아하다. 이곳을 겪고 나서 더 선명하게 느끼고 또 깨달은 건 아름다움이란 건 꼭 규모나 화려함에서만 배어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귀결해 본다면 그것은 ‘고유함’이다. 


고유함을 지닌 공간을 만나면 나는 흥분한다. 달뜬 마음이 되어 에너지가 치솟고 혹여 디테일 하나 놓칠라 노심초사하며 관찰과 음미에 집중한다. 공간이 나이가 많을수록, 고유한 매력을 선명히 보여줄수록 흥분과 감탄이 격해진다. ‘오직 여기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란 게 분명 존재하는데, 그 감정에 이름을 붙이기가 참 어렵다고나 할까. 그 이름 모를 감정이 온몸과 마음을 한차례 훑고 지나가야 잠잠해진다. 그러고 나면 할 수 있는 한 공간 구석구석을 어떻게 음미하고 누릴지 계획한다. 응접실 구석 예쁜 소파에 앉아 책을 읽거나, 복도에 있는 피아노를 뚱땅 거리거나, 베란다에 나가 한참 풍경을 감상하다가는 라운지에서 술을 한 잔 한다. 꼭 걷고 싶은 계단은 놓치는 법이 없고, 문이 열린 빈방이 혹 있다면 꼭 구경한다. 복도의 그림과 사진은 물론 테이블 위 접시와 커트러리와 냅킨에 이르기까지 눈과 뇌를 총동원해 스캔한다. 그래서 호텔에 머무는 시간이 ‘독립적으로’ 꼭 필요하다. 잠만 잘 수 없고, 아침만 먹을 순 없다. 내게는 그렇다. 진정한 놀이터다. 


방으로 향하는 길은 길고도 길었다. 다름이 아니라 내 발걸음이 툭하면 멈췄기 때문이다. 좁지만 아늑함이 짙게 감도는 복도를 지난다. 카펫과 조명은 은은하면서도 우아하다. 양쪽 벽에 무수히 걸려 있는 한 여인의 사진들에 눈길이 간다. 그 순간, 아! 호텔 홈페이지에서 보았던 그 스토리구나 싶었다. 1차 대전 직후 베를린을 중심으로 유럽 대도시에 극장 건립과 영화 제작이 활발했다고 하는데, 그 중심에 우뚝 서있던 덴마크 출신 배우 아스타 닐센(Asta Nielsen)의 사진이다. 그녀가 이곳에서 몇 년간 살았었다고. 무성영화 시절 영화를 예술의 경지에 올려놓았다는 찬사를 받았다고 하는데 흑백의 사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와 아름다움이 내 피부에 스치는 것만 같다. 전후 시대에 한 획을 그은 멋진 예술가라니. 그가 이곳에서 살았었다니. 내 삶에 또 한 명의 위대한 예술가를 각인하는 순간이다. 아직도 내가 발견하지 못한 예술가들이 유럽 이곳저곳에 얼마나 많을까. 더 많이, 더 깊이 만나고, 알고 싶다. 그 비결은 곧 여행이리라. 


다시 바라보니 더 이상 이곳은 호텔이라기보다 차라리 아스타 닐센의 어여쁜 집이다. 마치 그녀에게 초대받아 며칠 머무르게 된 듯한 기분이었다. 이 상상과 기분은 온전히 나의 것이자 공짜이니 누려 마땅한 것. 색이 바랜 나무 바닥과 역시 나이가 많아 보이는 카펫 및 붉은 벨벳 소파의 조화는 가히 필연적인 듯하다. 이곳에 있어야만 하는 이 사물들의 운명일까 싶게 자연스럽다. 그리고 거기에 피아노가 있다. 완벽한 풍경이 완성된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끽했던 짜릿한 시간여행 느낌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시작된다. 오래된 것들로 둘러싸인 공간과의 본격적이고도 구체적인 교감이 시작됐던 것. 이곳은 분명 처음인데 왜 향수의 감정이 나를 감싸도는 것일까. 어째서 나는 처음 조우하는 공간에서 느끼는 강렬한 감각의 소용돌이를 노스탤지어라 부르고 싶은 것일까. 노스탤지어는 마땅히 기억으로부터 발현되는 것 아닌가. 기억의 지도에선 찾을 수 없지만 마음의 지도에서는 찾을 수 있는 그런 공간이기 때문 아닐까. 아, 내가 베를린에 다녀온 건 과연 현실일까?


살아본 적 없는 어느 과거의 아름다운 시절을 상상하며 그리워하는 것. 여행 속 SF적 묘미랄까. 이제 복도를 미로처럼 지나 깊숙한 곳에 자리한 방으로 향한다. 이미 호텔 펜션 풍크라는 공간이 내게 건네준 자극과 물음에 충분히 반응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극히 사적인 공간인 방으로 들어가려니 결이 다른 설렘이 솟아났다. 있어야 할 것들만 있는 심플한 방이지만 모든 게 갖춰진 것만 같은 방에 들어섰다. 침대와 옷장 그리고 테이블과 의자가 전부인데 이 모든 것들의 오래된 호흡이 느껴졌다. 짙은 갈색톤의 가구, 하얀 침구와 커튼 그리고 선홍빛 노란 조명이 마침 매우 알맞은 자리에서 각자의 아우라를 뿜어냈다. 나는 미니멀리스트도 맥시멀리스트도 아니지만 이런 공간을 만날 때마다 반성을 한다. 꼭 필요한 것들이 딱 맞는 자리에 있을 때의 그 완전함을 꼭 경험해 보자는 반성, 그 궁극의 정돈된 느낌을 닮아보자는 다짐과 함께(효력은 없었다고 한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호텔 매니저가 건넨 말은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나의 바람대로 가장 조용하고 아늑한 방이라는 것과 다른 하나는 테이블 위 전화기가 작동되는 것이니(장식용 골동품처럼 보였다) 본인이 필요할 시에는 꼭 전화를 달라는 것이었다. 전화기를 바라본 순간 짧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사랑스럽고 신기해서. 테이블 끝자락 조명 아래에 수줍은 듯 놓여 있는 어여쁜 전화기를 과연 쓸 일이 있을 것인가 의문이 들었지만 바라볼 때마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마치 이 방의 정체성은 이 어여쁜 전화기로 대변한다는 듯 모두를 제치고 주인공이 된마냥 뿜어내는 멋짐이 느껴졌다랄까. 결국 따스한 차 한잔이 간절해진 어느 서늘한 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다이얼을 돌렸고 매니저는 찻물과 함께 나타났다. 프런트 데스크는 1번이라 다이얼을 단 한 번 밖에 돌리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그 한 번의 다이얼링으로 물을 끓인 주전자를 들고 성큼 나타나 찻잔에 따라주고 가는 매니저의 퀵서비스 덕분으로 흐뭇한 티타임을 가졌다.


머무는 내내 가장 흠모하던 곳은 다이닝룸이었다. 그윽한 조명 빛 아래 새하얀 식탁보 위 가지런히 놓인 잔과 접시 그리고 밝고 산뜻한 붉은색의 생화 몇 송이. 짙은 녹색빛의 냅킨이 강렬한 포인트가 되는 영화 속 장면이 정지된 느낌. 구석진 곳 단 두 명 만이 아침 식사를 즐길 수 있는 원탁 자리와는 슬프게도 한 번도 연이 닿지 않았다. 액자 속 그림과도 같았던 자리. 그 그림 속 주인공은 되어볼 순 없었으나 어느 노부부가 찬찬히 아침 식사를 하던 모습을 힐끔힐끔 바라보며 되려 내 자리가 아니었던 게 더 행복했다. 부디 그 장면이 언젠가 건너갈 저 너머 세계의 내 모습, 미리 만나 본 나의 미래이길 기원하며. 새하얀 식탁보는 미래의 나에게 양보하고, 회색빛이 은은히 감도는 거뭇한 대리석 테이블에서 며칠 간의 조식을 즐겼다. 여행 속 조식을 흠애하는 여행자들과 함께라면 정말이지 밤을 지새우며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이다. 아, 호텔과 조식이여! 


공기 중에 감도는 화기로운 부드러움을 벗 삼으니 모든 게 아름다운 아침이었다. 진한 커피와 투박한 빵 그리고 빵에 얹어 즐길 수 있는 모든 것들로 인한 완벽한 하루의 시작. 펜션 풍크에선 아침의 정신을 아주 천천히 깨웠다. 조바심 낼 것 없이 진득하니 나와 어울리는 자리에 앉아 마치 공간과 대화를 나누듯 오래 머무르고 싶었던 것. 시간이 더디 가는 것만 같은 그 순간의 느낌은 세상이 마치 내 편인 것 같더라. 그래, 이렇게 여행으로 세상과 친해지는 거다, 란 생각도 들더라. 어느 날엔 가엔 아침 식사를 마쳐갈 즈음 누군가가 복도에 있는 피아노를 연주했다. 아, 내심 누군가 제발 한 번쯤은 피아노에 앉아주길 바랐는데 마음이 통했다. 늘 조식을 준비해 주셨던 직원분이었다. 투박하지만 경쾌한 연주를 듣노라니 여행의 묘미를 또 실감했다. 

인생 뭐 별 거 있냐고들 하지만 여행이란 게 인생의 그 별 거다. 아침 커피도 새하얀 식탁보도 피아노 연주도 너무 특별해서 가슴속을 파고드는 어떤 순간을 만날 수 있으니 말이다. 어차피 어김없이 흘러갈 세월이니 그 ‘어떤 순간’을 자주 만나야 하지 않겠나. 그래야 종종 녹록지 않을 그 나이 듦과 삶의 여정 앞에서 결코 단념치 않고 미소 지을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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