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Wien), 오스트리아(Austria)
맥스 브라운 7th 디스트릭트 호텔(이하, 맥스 브라운)을 한 문장으로 정의해 본다면? ‘고요하고 우아한 도시 빈에 나타난 싱그러운 새로움’. 이 매력 넘치는 호텔은 도시라는 캔버스 위에 아름답게 흩뿌려진 초록 물감의 향연이다. 온통 클래식으로 가득한 아름다운 빈에 이 시대의 활력과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곳이다. 빈이 맥스 브라운을 만나고 나서 한 10년쯤은 젊어진 것 같은 느낌이랄까. 빈의 전통, 오랜 세월을 머금은 흔적과 우아한 클래식 모두 열렬히 사랑하지만, 맥스 브라운을 만난 순간 빈의 색다른 면모를 발견한 것만 같아 무척 기뻤다. 게다가 전체 면적의 3분의 1이 유네스코 선정 문화 지역구인 7구 노이바우(Neubau)에 위치해서인지 더 특별해 보였다. 건축과 분위기와 공기에 역사와 예술을 잔뜩 머금고 있는 곳에서 맥스 브라운이 어떻게 잘 어우러지고 조화를 이룰지 궁금했다. 빈에 사는 시민도 아니면서 빈의 열렬한 팬으로서 아주 적극적으로 호기심을 불태웠다.
2019년 봄의 끝자락 5월 베를린과 암스테르담, 뒤셀도르프에 이어 빈에서도 새로이 오픈한다는 맥스 브라운 호텔 소식을 접한 건 여행 선물을 미리 받은 것과 다름없었다. 각 도시마다 건축, 인테리어와 분위기, 메인 컬러와 느낌 모두 다른 데다가 사진 속 빈의 맥스 브라운은 그곳만의 매력이 분명 존재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며칠 동안 홈페이지에서 유영하는 시간이 어찌나 즐겁던지. 매거진을 탐독하듯 호텔의 이모저모에 빠져들어 갔다. 종이 잡지를 읽는 기분이 드는 구성과 디자인, 하나하나 읽고 싶은 다양한 콘텐츠가 꽤 흥미로웠다. 비단 여행자들만을 위한 곳이 아닌 듯했다. 로컬을 향해 문을 활짝 열어둔 개방성과 누구에게나 문턱이 없는 접근성을 지닌 곳인 듯한 힌트를 찾을 수 있었다.
여행자들만 스쳐 지나가는 호텔은 결코 가질 수 없는, 로컬 사랑방 호텔 특유의 바이브가 있다.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들락날락거려야만 가질 수 있는 그것, 도시의 활기와 사람들의 기운 말이다. 맥스 브라운이 내게 특별했던 건 바로 그 바이브였다. 노이바우 동네에 서려 있는 문화예술적 정기를 수혈받는 것 같기도 하고, 숨겨져 있는 빈의 젊음을 목격하는 것도 같았다. 도시마다 호텔이 랜드마크인 경우는 제법 흔하지만, 호텔이라는 공간이 도시에 펼쳐내는 힘과 영향력이 작지 않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새로 생긴 호텔이 이토록 빠르게 로컬에 스며들고 사랑을 받는다는 것도 신기했다. 호텔 직원 분들은 모두 캐주얼한 편한 차림에 작업복스러운 에이프런을 두르고 있었다. 이 또한 참 신선하고 흥미로웠는데, 아마도 그들이 일하기 편해서였을까 모든 서비스가 더 자연스럽고 편안했다. 역시 일 하는 사람의 몸과 마음이 편해야 함께 상호작용하며 서비스를 받는 입장에서도 더 즐거울 수밖에 없는 듯하다.
늦은 봄 오픈한 맥스 브라운을 가을의 초입에 찾았을 때의 첫인상을 기억의 서랍에서 꺼내볼까. 먼저는 자연스러움과 푸르름이 떠오른다. 갓 오픈한 지 3개월이 지났을 때인데 그 자리에 오랜 세월 존재하고 있었던 것만 같은 자연스러움이 묻어났다. 왜일까? 첫 만남, 첫 순간의 첫 질문이었다. 지금까지의 여행은 대부분 내가 공간에 먼저 말을 걸고 질문을 건네고 손을 내민다고만 생각했었는데, 나에게 먼저 물음표를 건네준 곳이다. 잊을 수 없는 매력을 여럿 지닌 곳이지만 이 찰나의 순간이 기억에 강렬히 남는 걸 보면 역시 ‘질문’이 긴 여운을 남기는가 보다. 이미 질문을 던졌으니 끊임없이 생각하게 됐고, 그 생각 속에서 나만의 답을 찾아 다시 나에게 답변하게 되니까 말이다. 초록이 무성한 푸르름은 로비에 들어서기 전부터 시작됐다. 호텔 간판에 걸려 있는 넝쿨은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바닥에 무심히 깔려 있지만 빛나는 광을 한 없이 뽐내는 녹색 타일이 흥미로웠다. 재밌게 예쁘다고나 할까. 입구 양옆을 가득 채우고 있는 키도 크고, 잎도 크고 개성도 제각각인 화분들 사이에 서 있자니 ‘이토록 열렬한 초록의 환영을 받아본 적 있던가’ 싶었다. 그 빽빽한 푸르름 사이에 놓여 있는 빨간 철제 의자 두 개에 시선이 닿았다. 어여쁘기도 하지만 다정한 배려 같아서 말이다. 택시 기다릴 때 앉아있기 딱이다 싶었는데 역시 4일 동안 나를 포함 많은 이들이 애용했다. 아직 로비로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호텔이 자꾸 말을 걸어왔다. 체크인 순간부터 체크아웃 순간까지 호텔은 끊임없이 내게 질문을 건네왔다. 호텔 곳곳에 촘촘히 쌓여 있는 디테일을 혹여 내가 놓칠라 싶어 계속해서 물어오는 것만 같았다. “이건 어때요? 저건 어때요? 마음에 들어요? 왜요?” 소리 없는 질문이 계속해서 나를 여기저기로 이끌었고, 질문에 답하듯 호텔의 구석구석을 즐길 수 있었다.
맥스 브라운의 개방성과 자유로움은 ‘문과 벽’으로 알 수 있었다. 로비 입구의 문은 투명 자동문이고(늘 열려있었다), 벽을 마주한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경험했던 호텔 중에서 물리적, 심리적 장벽이 없는 곳으로 단연 기억에 남는 곳이다. 호텔 스스로는 최소한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여행자와 로컬에게는 최대치의 자유를 허용한 그런 곳이랄까. 호텔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차지하는 물리적인 공간 구분도 최소한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경계를 완전히 허물어버린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언제나 그곳에 있지만 있는 듯 없는 듯 묘하게 존재하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섞이는 그들의 움직임은 부드럽고 친근했다. 제공하는 서비스의 질은 매우 높고 또 빠른데, 전달하는 방식이 편안하다 보니 덩달아 함께 느슨해지면서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몸과 마음 그리고 생각이 자유롭게, 리드미컬하게 둥두둥둥 떠다니도록 디자인된 동선이 감동이었다. 공간의 미감보다 ‘동선’이 그립다니. 추억할수록 흥미로운 곳이다.
맥스 브라운 리셉션은 로비 중앙에 있는 큰 테이블 단 하나다. 어느 방향으로도 통행이 가능한 완전 개방형 리셉션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테이블 뒤편은 무려 통행로로 활용되기도 한다. 그리고 각양각색의 의자, 소파, 벤치가 참으로 많았는데 아늑함은 물론이고 온갖 의자들을 바라만 봐도 마음이 따뜻해졌다. 앉을 곳이 많다는 건 정말 중요하다. 언제든 몸을 앉혀 쉼을 가지라는 메시지이고, 또 시간과 공간을 내어준다는 다정한 배려이기도 하니까. 리셉션 바로 뒤편엔 출입과 통행이 자유롭도록 설계한 듯 양쪽이 널찍하게 열려 있는 세븐 노스(Seven North) 레스토랑이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그곳은 반드시 흘깃 바라보게 된다. 누구나 오라며 따스한 시선으로 손을 건네는 듯한 온기가 배어 나왔다. 저곳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내 모습을 금세 상상해 보게 되는 호기심을 강하게 불러일으키는 마력을 지닌 곳이었다.
체크인을 마치고 방으로 향하기 전 세븐 노스 레스토랑을 구경한 건 정말 잘한 일이었다. 맥스 브라운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간인데 놓칠 뻔했기 때문이다. 레스토랑 문은 없지만 ‘토마토 장’은 있었다. 무엇인고 하니 멋진 원목 장에 유기농 토마토를 잔뜩 채워둔 거다. 지나다니면서 언제든 먹으라는 말을 듣고는 바로 집어 먹었는데 놀랍게도 토마토에서 다디단 과즙이 터져 나왔다. 몇 발자국 옮겨 안으로 들어섰다. 살며시 탄성이 새어 나왔다. 스팀펑크 메탈, 초록 타일, 코발트블루, 원목의 완벽한 조화를 태어나 처음 목격했다. 중앙에 큼지막하게 ‘ㅁ’ 자로 둘러진 바(bar)가 공간에 대한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사방으로 열려있고, 좌석마다의 가용 공간이 넓은 데다가 눈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색감들의 절묘한 조화까지. 여행자든 로컬이든 모두를 끌어당기는 곳이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꼭 식사도 하고, 술도 한 잔 곁들이며 대화하면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순간을 만끽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을 안겨주는 곳이라는 느낌이었다.
각인된 강렬함과 확신을 저버릴 수 없어 다음날 아침 계획엔 없던 조식을 먹기 위해 향했다. 빈에서의 새날을 여는 의식으로서 탁월한 선택이었다. 분명 공간에 불과한데 숲 속에서 커피를 마시고 빵을 먹는 기분이었다. 숲에서 아침을 열었다면 아늑함이 한도초과인 오두막에서 밤을 보냈다.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를 보고 돌아온 어느 날 밤 늦었지만 저녁을 먹고 싶었다. 이미 마음속에는 ‘우리에겐 세븐 노스가 있어’라는 든든함이 있었기에 호텔로 바로 돌아왔다. 창문 틈새로 새어 들어온 햇살을 받아 반짝이던 공간이 조명의 활약으로 밤의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신나지만 시끄럽지 않은 음악, 로컬 사람들과 여행자들이 섞여 뿜어내는 활기, 테이블 위에 무심히 놓여 있는 노랗고 빨간 유기농 토마토 모두 밤을 완성시켜주고 있었다. 사그라들 길 없는 오페라의 여운을 대화로 풀어내고, 허기도 채우며 충만한 밤을 보냈다. 통째로 오븐에서 구워 나온 콜리플라워는 감칠맛이 일품으로 여느 스테이크보다도 맛있었다. 꽃다발처럼 플레이트 없이 가져다주는 모습은 또 어찌나 재미있던지. 화덕에서 테이블로 옮겨진 마르게리따 피자와 칵테일 페어링은 시차적응과 하루의 피로를 모두 잊게 해 주었다.
그런데 가장 맛깔났던 건 다름 아닌 세븐 노스에 흐르는 ‘공기’였다. 오픈 키친에서 요리를 하는 사람들도, 홀과 바에서 술과 음식을 나르고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도 모두 리듬에 맞춰 춤을 추고 있는 거 아닌가. 모두가 웃고 있고, 모두가 흥에 겨워 있었다. 주문을 하는 동안에도 다정한 스몰토크와 농담이 오고 갔다. 무엇이든 물어볼 수 있었고, 무엇이든 말할 수 있었다. 로컬들에게는 하루의 일과를 마친 후 에너지를 충전하는 시간으로, 여행자들에게는 흠모하는 이 도시 속으로 더 깊이 스며드는 시간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일하는 사람들의 즐거움이 공간 전체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 공기를 느끼며 마시고 있는 나와 이 많은 사람들이 즐겁지 아니할 도리가 없지 않은가. 그루브를 멋지게 타던 강렬한 눈매의 키친 스탭과 눈이 마주쳤는데 그는 눈빛으로 춤을 권하고 있었다. 순간 몸을 흔들어야 하나 고민했지만 늘 제때 발현되는 수줍음에 미소로 화답했다. 사실 나도 몰래 그루브를 타고 있었다, 마음속에서. 시간이 멈추길 바랐던 아름다운 밤을 보냈다.
지지직 거리는 기분 좋은 바늘 소리로 시작해 루이암스트롱의 블루스가 흘러나오는 어느 한가로운 오후는 다정했다. 정갈하고 어여쁜 호텔방 창가에 앉아 차를 마시며 쉼을 가졌다. 방에 귀여운 턴테이블이 있는 덕분으로 레코드샵 알트 & 노이(ALT & NEU)에서 보물찾기 하듯 건져낸 루이 암스트롱과 마일스 데이비스를 듣는 호사를 누렸다. 그 순간 행복감이 잔잔히 피어났다. 여긴 빈이고, 또 맥스 브라운이니까 맛보고 만질 수 있는 행복감이라는 생각이었다. 오전 동안 내린 사랑스러운 비는 창밖 세상을 더 짙은 초록의 향연으로 만들어주었네. 살며시 내다보니 새가 두 날개를 힘차게 내젓는 것처럼 푸르름이 공기 중에서 퍼덕였다. 맥스 브라운의 브라운이 자연과 나무의 빛깔을 상징하는 게 아닐지 상상해보았다. 자연이 인간에게 안겨주는 특유의 포근함을 호텔 로비와 레스토랑, 방과 정원 어디에서나 느낄 수 있었으니까.
포근함과 따스함이 단연 돋보였던 건 거듭 강조하지만 ‘사람들’이었다. 나흘 내내 친구처럼 다정한 친절과 섬세한 도움을 건네주었던 제이콥을 잊을 수 없다. 환한 미소와 차분함을 지닌 그는 모자란 내 독일어를 불굴의 인내심으로 끝까지 기다리며 들어주었고, 무려 연습까지 시켜주었으며, 우산을 빌려주고, 택시를 불러주고, 공간 구석구석을 소개해주고, 출퇴근길 길에서 우연히 마주칠 땐 오래된 친구처럼 인사를 건네주었다. 단 며칠이지만 제이콥과 친구가 되지 않을 방도가 없었다. 공간과 제이콥의 긍정적인 관계가 마치 내게 투영된 것처럼 그 덕분에 맥스 브라운과 나의 관계 맺음도 수월하게 이루어진 것은 아닐는지. 호텔이 내게 마음을 활짝 열어주니 나도 덩달아 활짝 마음을 열 수 있었던 듯하다. 호텔은 도시의 축소판이자 때때로 도시를 대신하는 곳이어야 함을 이곳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고작 나흘간에 불과했지만 단 한 구석도 남김없이 내 마음 문을 모조리 열어젖힌, 내게 찾아온 맥스 브라운의 매직. 그 마법 같은 순간에 또 뛰어들고 싶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