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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다 Oct 01. 2022

걸으며 비로소 깨달음

멈추지 않으면 언젠가는 원하는 곳에 도착한다


 생각이 많을 땐 걷는 게 도움이 된다고 어디선가 주워들었다. 걷는 걸 좋아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제대로 걸어본 적은 드물다. 마지막으로 오래 걸었던 게 언제였더라. 10년 전인가? 제주 올레길이 마지막이었다. 그간 생각하고 생각해야 하는 일이 많았는데, 강력하게 탑재된 귀차니즘 덕분에 생각하는 걸 미루고 미루어두던 참이었다. 뇌를 텅 비웠다는 말이다. 내 뇌를 꺼내 보면 아마도 주름이 쫙쫙 펴져 점액질로 뒤덮인 매끈하고 허연 덩어리이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그날은 걷기에 딱 좋은 날이라 생각했다. 햇빛은 따사롭고, 덥지도 춥지도 않은 적당한 기온에, 아이가 방과후를 하는 날이라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그간 미뤄두었던 ‘생각’이란 걸 하고 싶었다. 지도 앱을 열어 현재 있는 곳에서 출발해 집에 도착하는 시간을 확인했다. 거리 4.3km, 예상 시간 1시간 6분. 1시간이 넘는다고? 그렇게까지 걸릴 거리인가? 평소 차를 타면 40km 이하의 제한된 속도로 15분이면 도착하는 길이라 1시간이 넘게 걸린다는건 아주 여유롭게 걸었을 걸음을 예상한 시간이라 여겨졌다. 애석하게도 나에게는 거리 개념이 없었고, 지난 10년간 운동을 전혀 하지 않은 저질 체력이라는 것도 잊고 있었다. 어쩌면 매일 오전 우리 동네에서 호수의 산책로까지 매일 가뿐하게 걷기 운동을 하는 동네 언니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야기를 들으면 그리 힘들지 않아 보였으니까.  


   

평소 손에 쥐고 다니던 핸드폰을 어깨에 메고 있던 에코백 속에 쏙 집어넣었다. 가방 안에 들어 있는 책 한 권의 무게가 걸리적거리긴 했지만, 걷는 데는 크게 불편함을 줄 것 같진 않았다. 살짝 풀린 왼쪽 운동화 끈을 다시 고쳐 매고는 이윽고 걷기 시작했다. 걷다가 카페가 나오면 시원한 음료를 한잔 테이크아웃 해서 가야지라는 생각으로 흥얼거렸다. 몇 년 전 커다란 호수를 끼고 있는 야트막한 산을 깎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곳이다. 나무가 우거지고 호수를 따라 드문드문 카페와 식당이 있는 한적한 곳이었는데, 그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이 고층의 아파트가 우후죽순으로 늘어서 있다. 이 산이 깎여나갈 때, 나는 그린벨트를 풀어 난개발 해대는 시장을 저주했다. 대부분 사람이 그러했을 거다. 그러니 다음 해 그 사람이 재선을 노리고 나왔을 때, 유리한 당의 색깔을 걸치고 나왔음에도 똑 떨어지고 말았으니까. 하지만 사람은 망각의 동물임을 증명하듯, 그다음에 유리한 당의 옷을 입고 다시 나온 그 사람을 사람들이 뽑았다. 그리고 새로 생긴 아파트 값이 오를 때마다 분양받고 들어간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울창하던 나무가 베이고, 단단한 토양이 굴착기에 사정없이 갈려나가는 걸 보며 도심 속 녹지 공간이 사라지는 안타까움에 욕을 해댔던 사람들이 말이다. 나 역시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깔끔한 건물과 울퉁불퉁함 없이 매끈하게 정비된 길과 잔디밭이 깔린 초등학교 앞을 지나며 ‘여유가 있으면 이런 곳에 살아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조금은 했다. 10년간 운동을 전혀 하지 않아 동네 공원으로 올라가는 스무 칸 남짓한 계단을 오르면 헉헉대며 숨을 고르기 바쁜 나의 몸뚱어리를 잊은 것과 같이.



아파트 단지를 몇 개 지나고 낮은 상가 건물을 지나면서 카페를 발견하지 못해 도착하면 집 근처의 카페를 갈 생각으로 마지막이었을 슈퍼를 쿨하게 지나쳤다. 아파트 단지를 지나니 호수를 끼고도는 길이 시작되었다. 2차선 도로 위를 달리는 차는 많았지만, 걷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등 뒤에서 비추던 해가 걸어가는 방향이 따라 서서히 왼쪽 측면을 비추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왼손을 들어 손차양을 만들었다. 따스하게 느껴지던 햇살은 몸에서 땀이 배어 나오며 강렬한 태양으로 바뀌었다. 얼마간 걷다 이윽고 마스크를 벗어 소매로 인중에 맺힌 땀을 대충 닦고는 마스크가 부채인 양 얼굴에 바람을 일으켰다. 더워서 생각이고 뭐고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버스를 탈까 싶었지만, 배차 간격이 긴 버스는 오려면 30분을 기다려야 했다. 그 시간이면 걷는데 나을 것 같았다. 버스가 오가는 마지막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등 뒤로 버스가 쌩하니 지나갔다. 거봐, 비슷하게 왔네. 그리고는 신호를 기다렸다. 이 건널목을 건너면 이제 버스는 없다. 택시도 보이지 않는 곳이다. 호수를 뒤로하고 산이 이어지는 길이다. 신호등이 초록색 불로 바뀌고 곧이어 어두운 터널을 걸으며 생각했다. 아, 판단을 잘못했다. 지금부터는 낮은 산을 넘는 길이다. 항상 차로 오가니 오르막이 이렇게 길었는지 몰랐다. 뜻하지 않은 등산 아닌 등산을 하게 되었다. 물론 도로와 인도가 있으니 등산은 아니지만, 산을 깎아 만든 오르막길을 꽤 걸어야 하니 나에겐 등산이나 매한가지로 느껴졌다. 



오르막길을 가는 동안 두 번의 터널이 나온다. 오르막길이 시작되는 초입과 끝나는 마지막에. 첫 번째 터널 내부는 회색의 콘크리트가 그대로 드러나 있고, 조명이 없어 낮인데도 어두컴컴했다. 터널 내부에 좁게 만들어진 인도는 관리가 되지 않아 길이 군데군데 패어 있고, 콘크리트 조각들이 굴러다녔다. 그나마 반대편 출구에서 새어 들어오는 밝은 빛 덕에 무섭지는 않았다. 어둠과 대비되어 눈부시게 보이는 빛을 따라 한 걸음씩 움직였다. 터널 안은 서늘해서 열에 오른 두 뺨을 식혀주었다. 그러니 그리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몇 걸음 걷지 않았을 때, 신호를 받은 차들이 터널로 진입하며 나는 양손을 들어 두 귀를 꼭 막아야 했다. 터널에서 울리는 자동차 엔진음은 갑작스레 치는 천둥소리보다도 크게 느껴졌다. 특히 아직 개발 중인 공사현장을 오가는 덤프트럭이 지날 때면 손가락에 힘을 주어 귀를 더 꾹 막아야 했다. 어두컴컴하고 시끄러운 소음이 가득한 이 공간이, 관리되지 않아 버려진 듯한 이 길이, 꼭 나 같았다. 환한 빛이 이쪽으로 오라 했다. 이 검고 서늘한 구간만 지나면 다 괜찮아질 것만 같이, 그래서 점점 가까워지는 빛만 보고 걸었다. 터널을 빠져나오니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들어찬 시련에 힘들어도 감당해내면 그다음은 좋은 일이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희망을 가볍게 뭉개버리는 일은 인생에서 흔히 있는 일이라는 듯이. 그다음 고비가 눈앞에 펼쳐졌다. 



뜨거운 햇살을 피해 작은 그늘이라도 만나고 싶어 수풀이 우거진 길 가장자리에 바짝 붙어 그 밑으로 숨어들고자 했다. 계속되는 오르막에 멈춰서고 싶었지만, 멈추면 다시 걷기 어려울 것을 직감으로 알았다. 두 다리는 물을 잔뜩 먹은 솜처럼 무거웠지만, 멈춤 기능이 없는 기계처럼 느리게 움직였다. 제한속도를 지키며 여유롭게 옆을 스쳐 가는 차들을 보며, 새삼 그들 눈에 내가 어떻게 보일지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야트막하지만 긴 오르막을 산소가 부족한 에베레스트에 오르듯 오르는 모습이라니. 차를 타면 금방일 거리를 나는 느리고 힘겹게 걸었다. 내가 걷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결국 나도 저들처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 오래 걸리더라도 포기하지만 않으면, 언젠가는 도달하게 된다. 그 순간, 미루고 미뤄왔던 고민이 아무렇지 않아 졌다. 고민은 마음을 다잡을 한주먹의 따뜻한 무언가가 되어 스며들었다.



두 번째 터널이 다가올 때쯤, 반대편에서 등산스틱을 등 뒤로해 양손에 가로로 쥐고 허리에 걸쳐 여유롭게 걸어 내려오는 70대가량의 할머니를 마주쳤다. 길을 걸었는지 40분 만에 처음으로 만난 사람이다. 할머니 뒤로 보이는 저 터널을 지나면 긴 내리막이 시작된다. 즉, 반대편에서 오신 할머니는 나에게 내리막일 길을 거슬러 올라오신 거다. 그런데 힘든 내색이 하나도 없다. 평지를 걷듯 유유자적 마실을 나온 모양새다. 굽이치는 인생길에 이 정도 고비는 아무것도 아닌 양 노련함이 비쳤다. 이 고단함도 반복되는 경험을 통해 익숙해지면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



드디어 두 번째 터널 입구에 다다랐다. 이 터널만 지나면 긴 내리막이 시작된다. 터널은 이전 터널과 달리 길이가 짧고 둥근 천장에 푸른 하늘과 구름이 그려져 있어 밝다. 이 터널만 건너면 집까지 쭉 내리막길만 있다. 터널을 지나며 한숨 같은 깊은숨이 내쉬어졌다. 안도의 한숨이었을 수도. 내려가는 길은 무겁던 다리에 속도를 붙여주었다. 멈추지 않으니 결국 목적지에 도착했다. 집 근처에 와서는 다시는 저 길을 걷지 않겠다 다짐하며, 가장 먼저 보이는 카페로 들어갔다. 시계를 보니 20분 후 아이가 하교할 시간이다. 테이크아웃으로 시원한 미숫가루를 주문한 뒤 야외 테이블에 철퍼덕 앉았다. 안쓰던 근육이 뻐근했다. 심지어 발등 근육이 아파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멍하니 10초쯤 있었을까, 핸드폰 진동이 울린다. 둘째 아이의 어린이집 선생님이 떠있다. 아이가 기침을 한다며 데려가라는 전화였다. 아...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시작되는 느낌이다. 도저히 아이의 어린이집까지 걸어갈 수가 없어 집으로 가 차를 끌고 나왔다. 투명한 플라스틱에 담긴 얼음 가득 고소한 미숫가루를 빨대로 휘져어 마시며 새로 시작할 고난을 위로했다.  


   

그날, 나는 그 길을 걸으며 머릿속에 가득 들어차 꺼내보지 않은 고민을 생각하며 하나씩 풀어나가고 싶었지만 결국 걷기의 힘겨움에 정신이 팔려 고민 자체를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걷다 보니 뿌옇던 머리와 답답하기만 했던 마음이 사그라들었다. 어디선가 주워들은 그 ‘걷기의 효용성’은 나에겐 꽤 효과적임을 깨달으며.

멈추지 않으면 언젠가는 원하는 곳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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