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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다 Oct 02. 2022

아이에게서 나를 발견하다

 

- 누나. 잘 자써?


주말 아침, 제일 일찍 일어난 둘째가 꿈속에서 헤매던 엄마를 흔들어 강제 기상을 시키고는 뒤이어 잠에서 깬 누나를 향해 말한다. 비몽사몽으로 비척비척 걸어 나온 딸아이는 대답도 하지 않고 거실 빈백에 웅크려 누웠다. 둘째는 그런 누나 앞으로 다가가 얼굴에 대고 조금 더 큰 소리로 말한다.

- 누나. 내 말 안.들.려? 잘 잤냐구웅~



    

아직 네 돌이 되지 않은 다섯 살 둘째 아이는 또래에 비해 말이 느린 편이었다. 세 돌 직전까지 말하는 단어가 ‘아빠’, ‘엄마’, ‘빼빼(물)’ 뿐이었으니 말이다. 세 돌이 지나도 말이 트이지 않으면 병원을 가봐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던 적도 있었다. 그런 아이가 지금은 제법 자기 생각과 마음을 말할 줄 알게 되었다. 하는 말을 가만히 듣고 있으면, 아이의 말투에서 엄마인 나의 모습이 많이 보인다. 말끝을 올린다든지, 끝에 이응을 간혹 붙인다든지.




얼마 전 동생네 가족이 놀러 온 적이 있다. 아이들이 노는 걸 지켜보던 올케가 말한다.

- OO이는 ‘그래’라는 말을 자주 하네요. 언니네 집 유행어예요? ㅎㅎ

- 그래요? 잘 모르겠는데...


그 말을 듣고는 나도 모르게 우리 가족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누나가 무언가 알려주는 말에 아이는 “구래?”라고 대답했다. 아빠가 이쪽에 더 재미있는 게 많다고 말하니 “구래?”, 자꾸 무너지는 블록에 왜 안 되느냐고 징징대는 아이에게 아래쪽에 블록을 하나 더 넣어 받히면 무너지지 않는다는 말에도 “구래?”라고 대답했다. 아이는 ‘그래’라는 말을 빈번히 사용하고 있었다. 저 말은 어디서 배운 걸까? 우리 가족이 자주 사용하는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며칠 후 의문이 풀렸다. 바로 나에게서 배운 거였다. 저녁을 먹는 중에 남편이 무언가 설명을 하고 있었다. 그에 나는 “그래?”라고 여러 번 호응했다. 그 후에 남편이 의견을 낼 때마다 “그래?”라고 말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이는 나를 보고 따라 한 거였다.  



   

말의 무게가 무거워짐이 느껴졌다. 내가 어떤 말을 구사하느냐에 따라 아이의 말 그릇의 크기와 깊이가 달라짐을 깨달았다.


몇 년 전 첫째 아이의 유치원 선생님께 들은 말이 기억난다.

- OO이는 말을 정말 예쁘게 해요. 친구들이랑 놀다가 의견을 낼 때, “OO하는게 어때?‘, ”우리 OO할까?“ 이렇게 상대방의 의견을 물어주고 배려해 주거든요.

그때도 그 말은 우리 부부가 서로에게 많이 사용하는 말임을 알았다.


이렇게 좋은 예만 있으면 얼마나 훈훈할까.

나는 간혹 일이 잘 안 풀릴 때면 마른세수를 마구 하며 괴로운 듯 ”으아아~~~!“ 괴성을 지를 때가 있다. 아이들 앞에선 최대한 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순간 튀어나올 때가 있다. 정말 안 좋은 습관인 건 아는데, 말 그대로 습관이다 보니 나도 모르게 나올 때가 있는 거다. 그럴 때면 아이들은 깜짝 놀라 엄마가 왜 저러나 싶어 멀뚱히 쳐다본다. 그러다 어느 날 동생과 싸운 첫째가 자그마한 손으로 굴을 마구 쓸며 괴성을 질렀다. 그 모습에 내가 겹쳐졌다. 며칠 후엔 둘째가 그 모습을 그대로 따라 했다. 아, 말과 행동을 진짜 조심해야겠다.   



   

엄마는 가정 내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가졌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엄마의 기분에 따라 가정의 분위기도 달라짐은 명확하다. 그래서 내가 기쁘지 않더라도, 가정의 평화와 화목을 위해 신나는 ’척‘을 해야 할 때가 있음을 알고 실천하고 있다.

최근 하는 것은 퇴근하는 남편을 신나게 맞이하는 거다. 그 전엔 내 기분이 안 좋거나 피곤하면, 들어오는 남편을 보는 둥 마는 둥 하며 ”왔어.”라고 건조에 대하곤 했다. 요즘엔 도어록의 비밀번호 눌리는 소리가 나면 문 앞으로 달려가 ”여퐁~ 왔어? 얘들아~ 아빠 왔어~ 아빵~~~“이라고 호들갑을 떨며 껴안고 환영의 댄스를 춘다. 환영의 댄스는 손발을 엇박자로 움직이며 내 맘대로 흔드는 거다. 엉덩이도 흔들고, 배도 꿀렁꿀렁 움직이면서. 그럼 남편은 나를 못 본 척하며 내 몸뚱어리를 한쪽 팔로 힘주어 밀어내고는 달려와 안기는 아이들을 꼭 안아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를 볼 때까지 남편을 따라다니며 환영의 댄스를 춘다. 처음엔 아빠가 와도 인사도 잘 안 하던 아이들이, 이제는 ”아빵~~~!“하며 나와 함께 환영의 댄스를 춘다.     


며칠 전 첫째가 아빠와 난센스 퀴즈 내기 놀이를 하며 문제를 냈다.

-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빵은?

남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한다.

- 아빵?

- 딩.동.댕!!!

그리곤 두 부녀가 낄낄거린다. 너희가 웃으니 나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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