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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다 Jan 05. 2023

나의 고백



 있잖아. 나는 나를 잘 모르겠어. 내가 무얼 할 때 행복해하는지. 좋아하는 음식은 뭔지. 어떤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하는지 말이야. 분명 알고 있거든. 그런데 그건 ‘예전에’야. 예전에 뭘 하면 행복한 감정이 솟아났는지, 예전에 어떤 음식을 즐겨 먹었는지, 예전에 꿈은 뭐였는지. 사실 이것도 얼마 전에 기억났어. 마치 그런 일인랑 없었다는 듯 새카맣게 잊고 있었지 뭐야. 스쳐 가는 사물을 보고 문득 깨달은 거야. 아! 나 저거 좋아했었는데. 그걸 깨닫자 예전의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줄줄이 떠오르기 시작했어. 드라마에서 보면 사고로 기억상실증에 걸렸다가 우연한 계기로 기억이 주르륵 돌아오는 것처럼 말이야. 아, 나는 그런 사람이었구나. 그런데 거기서 끝이었어. 더는 생각의 줄기가 뻗어 나가지 않고 10년 전의 ‘나’에서 멈춰버린 거야. 10년 전의 내가 어떤 사람인지 기억이 났다고 해서, 지금의 내가 어떤지 알 수는 없겠더라고. 나는 어떤 사람이지?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살아지는 게 아닌, 살아가는 인생을 살고 있는가. 

    




 며칠 전에 아이가 학교에서 A4 용지 한 장을 가져왔어. 가족 중 한 명을 소개하는 숙제래. 종이에는 해당 가족을 인터뷰하는 질문이 적혀있었지. 아이는 엄마를 소개하고 싶다고 했어. 우리 둘은 책상에 마주 앉았지. 아이는 사뭇 진지한 얼굴로 질문지를 읽어주었어. 이름이 뭔가요? 생김새는 어떠한가요? 어렸을 적 꿈은 무엇이었나요? 여기까진 무난하게 답을 했지. 그 뒤부터가 문제였어. 하루 중 어떤 시간이 가장 행복한가요? 가장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성격은 어떠한가요? 꿈은 무엇인가요? 말문이 턱 막혔어. 나에 대한 질문들인데, 내가 답을 모르겠더라고. 세상에나, 그럼 누가 알겠어. 이름, 나이, 생김새 등은 어려움 없이 답할 수 있지만,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꿈을 꾸는 인간인지는 알 수가 없더라. 답을 못하고 버벅거리고 있자니 아이가 대신 말을 해주었어. 엄마는 이럴 때 이렇지 않아? 이거 좋아하잖아. 엄마 혹시 이렇지 않아? 아이는 나에 대해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나열하기 시작했지. 줄줄이 나오는 문장 사이에서 멍하니 듣고만 있었어. 그런가? 내가 그런가? 들으면서도 긴가민가하다가, 딱히 이거다! 하는 말이 없었어. 이걸 어쩌지. 나는 당황스러웠어.


그래서 아이에게 잠시만 시간을 달라고 했어. 엄마가 무얼 좋아하는지 생각해 볼게. 아이는 좋아하는 걸 오래 생각까지 해야 말할 수 있는 거냐며 의아해했어. 그러게. 나도 의아하다. 나는 지금까지 뭘 하고 살아온 걸까. 나는 살고 있는 게 아니고, 살아지고 있었던 거구나.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나 자신과 흐르는 시간이 두렵게 느껴졌어. 나를 에워싼 공기가 무겁게 압박하는 듯했지. 


눈을 감고 생각했어. 나는 하루 중 어떤 시간이 행복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 성격은 어떻지. 꿈은 뭐야. 그러자 조금씩 느껴졌어. 나를 조금은 느낄 수 있었어. 아이를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할 수는 없어서, 대략 생각나는 대로 말해주었어. 하지만 그거로는 부족했어. 아이의 숙제는 간단하게 한두 줄의 문장으로 끝맺음을 지어가고 있었지만, 내 머릿속은 끝맺어지지 않고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어. 나 자신이 너무도 낯설어서 모든 감각이 어색해지기 시작했어.    




 

 떠오르는 것들을 흰 종이에 연필로 반듯반듯하게 적어보았어. 구부러지고 쭉 뻗은 글자를 들여다보며 나에 대해 생각했어. 여전히 모르겠는, 이 선명하지 않은 머릿속에 느껴지는 흐릿한 둔통을 체감하며 하나씩 해보자 마음먹었어. 해보면 알겠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사람인지. 나를 둘러싼 둔감한 표피들이 깎여 내려가 속살을 볼 수 있을지도 몰라. 어쩌면 나를 끌어안아 줄 수도 있겠지. 내가 이런 인간일 리 없다며 무언가를 더 알아내려 하지 않고, 이 상태 그대로를 한없이 보듬어 끌어안을 수 있을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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