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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다 Jan 01. 2023

비렁뱅이 같은 글이라도

2023년 첫날의 다짐


 창문을 살짝 열어둔 채, 빈 식탁 위에 앉아 책장을 뒤적였다. 살랑이며 불어오는 봄바람에는 첫사랑과 같은 설렘을 담고 있다고. 그렇게 퍼뜩 깨달음과 동시에 글을 쓰고자 마음먹었다. 어떤 글을 쓸지는 생각지 않았다. 그냥 책상에 앉아 무언가 끄적이는 나의 모습을 그려보니 좋았다. 마지막으로 직장에 다닌 건 3년이 지나있었고, 아직 엄마의 손이 필요한 어린아이 둘이 있었다. 나는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이전에는 한 번도 생각지 않았던 질문이 불쑥 손을 흔들며 단골손님처럼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답을 내놓을 수 없었다. 예전에 하던 일을 다시 시작하기는 싫었고, 그렇다고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었고, 결국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예전에 하던 일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 가장 쉽게 일을 구하는 것인데, 여전히 옛 일을 다시 하긴 싫었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되어 해결되지 않는 고민에게서 회피하려 할 때쯤 질문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나는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질문 어디에서도 직업에 대한 것은 없었다. 그런데 나는 직업에서 답을 찾으려고만 하고 있었다. 그러니 해결되지 않았던 거다.     


 아직도 원하는 바를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하지만, 어렴풋이는 그려볼 수는 있다. 그리고 지금 당장 나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글쓰기라는 걸 알았다. 글은 써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잘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글을 썼다. 뭘 쓰고 싶은지도,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도 모른 채. 마냥 책상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렇게 냉기를 잔뜩 머금은 겨울바람이 불어올 때쯤, 나는 더는 책상 앞에 앉지도 노트북의 전원 버튼을 누르지도 않았다. 머릿속이 하얘지며 글이라는 걸 뭘 어떻게 써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진짜 작가도 아닌 주제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것도 아닌 주제에, 다른 건 몰라도 한 번도 써보지도 않았던 글은 잘 쓸 수 있을 줄 알았다는 게, 그제야 이해되지 않았다. 나의 수줍은 오만이었다.     


 찰나의 글쓰기를 멈추고 긴 한 해가 지나갈 때까지 여전히 나는 글이 쓰기 싫었다. 하지만 쓰고 싶었다. 무엇을 어떻게 왜 쓰고 싶은지도 모른 채, 마냥 쓰고 싶었다. 그래서 글을 쓰지 않는 내내 글을 생각했다. 회피를 잘하는 뇌 덕에 깊이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내 몸에 자잘하게 박힌 가시처럼 손톱 밑에 일어난 거스러미처럼 ‘글에 대한 생각’은 자신의 존재를 지치지 않고 드러냈다. 이쯤 되니 나는 어쩌면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게 ‘그나마’ 글쓰기였던게 아니라, 의식하지 못하는 아주 예전부터 글을 ‘너무나’ 쓰고 싶었던 것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하나 더. 그간 글을 쓰기 위해 손가락을 움직이지 않았던 건, 실패를 싫어해서임을 알았다. 실패하기 싫으니 시도하지 않았음을 수많은 질문을 통해 인정했다. 아이에게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아라. 틀려도 괜찮다. 다음에 잘하면 된다’라며 입버릇처럼 말해왔지만, 정작 나 자신은 그 말을 믿고 행하지 않았다. 그러니 내가 그런 말을 밥 먹듯이 해도 아이가 받아들이지 않았던 이유는 나에게 있었다.


 성패 따위 의식하지 않고, 너무나 쓰고 싶은 글을 마구 써봐야지. 비렁뱅이 같은 글이라도 일단 써야 글이니까. 마침 오늘은 1월 1일 첫날이니, 기분 좋게 끄적인다. 매일의 반짝임이 사그라들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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